남과 북,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남과 북의 판문점 회담을 두고 뒷이야기가 무성합니다.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회담이 북측의 요청으로 개최되었고, 회담에 참석한 네 사람이 스트레이트로 우선 10시간 넘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계속하였다는 보도를 접하고, “이게 무슨 꿍꿍이속인가” 수상하다고 느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30분만 이야기 해 보면 남과 북의 입장 차이는 밝혀졌을 텐데, 만일 황병서와 김양곤이 “반동분자들과는 더 이상 대화를 못하겠습네다. 우린 당장 평양으로 돌아가겠습네다”라고 한 마디 던지고 떠나면 그만인데 그들은 왜 몇 날을 끈질기게 판문점에 나타나 되지도 않을 회담을 붙잡고 늘어진 것일까? 그리고 ‘유감의 뜻’을 표명한 것으로 피차에 만족하고 웃으며 헤어진 것일까? 미스터리 탐정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남한의 머리 좋은 사람이 이렇게 상상의 날개를 펴고 ‘극적 타결’의 경위를 나름대로 그려 보았습니다. “서로가 기진맥진 했을 때 황병서가 김관진 귀에다 대고 매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형, (두 사람은 동갑내기라고 하지만) 나 이 회담 파투내고 가면 장성택이처럼 김정은에게 맞아 죽어요. 형, 날 좀 살려줘요”라며 통사정을 하였다는 겁니다.
‘유감의 뜻’은 사과는 아니지요. 회담을 마치고 돌아간 황병서가 기고만장하여 인민 앞에서 양측의 합의사항과는 동떨어진 수작을 지껄이고 있었지만 김관진과 청와대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그저 조롱하기만 했습니다. “동갑내기들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나도 혼자 생각하고 남모를 미소를 지었습니다.
6‧25를 겪고도 살아남은 이 노인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죽어라 하고 미워하지만 황병서, 김양곤은 그렇게 미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면 어폐가 있지만, 평양에 돌아가서 김정은에게 맞아 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생긴 게 아닐까요?
김동길 (<사> 태평양시대 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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