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있는데, 못가는 '길'... 통일여정 시작됐다!
1번 국도를 달리는 내내 차창 밖으로는 때 아닌 거센 빗줄기가 세차게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아직은 초록의 신록처럼 보이지만 머지않아 저 건너편 산자락 수풀도 붉게 물든 단풍으로 채색 되리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2일 오후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들 통일교육원 교육생 일행(재향군인회 임직원)은 분단비극의 현장이자 우리민족의 아픈 생채기요, 한반도 비극의 상징으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된 판문점을 향했다.
초가을로 들어선 날씨는 지난여름 내내 밤잠을 설치게 했던 무더위를 저만치로 물러가게 하고, 내리는 빗줄기는 선선함을 더해 주면서 서울을 떠난 차량은 1시간20여분을 달려 개성공단을 오가는 기업인들로 북적대는 남북 간 왕래와 교류의 출발점이 되는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일정은 남북출입사무소를 들렸다 도라산역을 경유해 판문점으로 가는 순서. 도라산역에 도착하자 마침 서울을 출발한 관광열차가 북한의 가장 가까운 역 봉동역을 가고자 기관실 시동을 끄지 않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으나 아직은 역부족, 여기서 잠시 멈췄다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드디어 판문점을 향한다. JSA 판문점 경비대대에 도착하자 검은 선글라스로 멋을 낸 늠름하고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는 대한민국 최정예 국군용사가 차에 올라 일행을 확인한다. 간단한 출입절차(출입승인서 서명, 신분 확인)를 거쳐 좀 전과는 사뭇 진지하고 긴장된 마음을 곧추 세우며 공동경비구역 제1관문 초소를 통과한다.
얼마 달리지 않아 나타나는 곳,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다. 육안으로 직접 보이지 않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비바람에도 끄덕치 않고 휘날리는 대형 태극기다. 우리나라 국기 대 중 가장 높은 100미터 길이에 태극기 폭도 가로18미터, 세로 12미터란다. 하지만 그도 잠시, 대성동 마을과 불과 1.8km 떨어진 거리의 북한 선전마을 기정동에 서 있는 국기 대다. 우리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160미터의 국기 대라고.
거기에 걸린 인공기는 30미터 곱하기 15미터라고 하니 오죽했으면 그런 것에서 대한민국을 앞지르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쓰레한 미소가 감돌뿐이다. 세찬 바람에 우리도 헤지고 찢겨지는 태극기를 2,3개월에 한번 정도 교체한다고 하는데, 저 큰 인공기를 시시때때로 바꾸기 위해 북한 당국은 또 얼마큼의 미화를 쏟아야 할까 하니 측은지심마저 감돔을 어찌할 수 없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머금어서인가, 아니면 튼실한 알곡을 껴안아서인가? 길옆 양편 넓은 논에서 고개를 숙인 채 익어가는 벼이삭이 올 가을도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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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1950. 6.25. UN은 북한 김일성 집단의 불법남침이 확인되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한 UN 안전보장이사회를 개최해 유엔군의 한국전 개입을 결정했다. 그리고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수개월 후부터 유엔군과 북한은 회담에 나섰다.
6·25전쟁 발발로부터 1129일, 동족간의 사투(死鬪)는 끝이 났다. 하지만 수많은 희생자와 국토의 피폐, 열거하기조차 힘든 상처를 남긴 채 성립된 것은 전쟁 종식이 아닌 휴전이었다. 언제 어떤 도발을 가해올 지모를 불안감을 안은 채 한반도의 허리는 155마일, 248km에 걸친 ‘군사분계선’ 팻말과 함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남북 600에서 800미터 장방형 구역으로 세계인의 눈과 귀를 모으게 하며, 북한은 지금까지 3,040여회 정전협정을 위반한 도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8월4일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을 침범해 목함지뢰를 설치, 아군 장병 2명에게 중상을 입힌데 이어 20일엔 포격도발을 자행해 우리 군 당국이 김정은의 아킬레스로 확인된 대북확성기방송을 전 전선에 걸쳐 시행하자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케 한 남북 최고위급 회담이 열린 곳도 이곳 판문점 평화의 집이었다.
그렇듯 적막감이 깃든 판문점에 고요는 있으나 ‘평화’와는 전혀 거리감이 있는 지역이었다. 1976년 8월18일 미루나무 가지치기에 나선 미군과 아군장병에게 도끼를 휘둘러 4명의 장병을 살해한 8.18도끼만행사건은 6.25전쟁 이후 다시 전쟁 일보직전까지 가게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명언을 남기게 한 곳도 이곳이요,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전격 단행한 포로석방에서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있어 명명됐으니 바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아군 4초소 초입에서 역사적인 그 날의 현장을 증언해 주는 곳도 이곳이다.
지금은 먼지만 날리고 있지만 남북 간 장성급회담이 열린 군사회담 장에 들어섰다. 이곳에서만은 남과 북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유엔기를 연해 이어진 마이크 선이 여기는 남쪽이요, 저기는 북쪽 지역임을 표시하고, 회담장 밖 폭 1미터 넓이의 콘크리트 시멘트 선으로 남북의 경계를 구획하며 판문각에서 남쪽을 응시하는 북한병사도, 우리군 JSA 병사도 방탄조끼에 실탄을 소지한 채 긴장 속에서 서로를 지켜보고 있으니, 겉으로의 내색지 않는 평화로움은 있으되 진정한 평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아군 3초소를 통과하자 적 초소와는 불과 25미터, 기침소리는 물론 서로의 눈동자 움직임까지도 포착할 수 있는 거리다. 눈을 들어 북쪽을 응시하자 드넓게 펼쳐진 우거질 대로 우거진 수풀 사이로 새떼들이 넘나드는 모습이 들어온다.
올해는 분단70년에 휴전협정 62주년이 되는 해다. 비무장지대를 노니는 학이며, 백로, 고라니는 자유롭게 군사분계선을 오가지만 철조망으로 드리워진 한반도의 허리는 언제 걷힐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우리민족은 고래로부터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통일국가를 구축해 왔다는 사실이다.
비록 오늘 현재 각기 다른 사상과 이념의 혼돈 속에 분열 상태에 놓여있지만 통일의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이다. ‘통일은 벼락처럼 올 수 있다’는 전직 대통령의 말이나 ‘통일은 대박’이란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그 날을 위해 우리 각자가 통일시대의 주역이요, 준비요원이라는 점 잊어서는 안 된다.
통일은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게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길이 있는데, 못갈 이유가 없다. 통일대장정은 이미 시작되었다.(konas)
이현오(코나스 편집장. 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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