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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호국영웅 ‘故 김홍일 장군 35주기 추도식’

학술세미나 병행 ‘김홍일 장군 독립운동과 한강방어 전투’ 재조명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5-09-23 오후 3: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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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들의 발굽아래 정의가 유린되고 민족으로서 혹은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말살되는 이 마당에서 우리가 취할 길은 오로지 투쟁에 의해 국권을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나는 판단한 것이다. 또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파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제 일차적인 과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자면 한국인 스스로의 군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느꼈던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의 내가 장차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를 확실히 깨달은 셈이다.” (김홍일 장군의 회고록 ‘대륙의 분노’ 중에서)

 일제치하에서는 독립운동가로 6·25전쟁 간에는 지휘관으로 맹활약한 호국영웅 ‘故 김홍일 장군 35주기 추도식’이 23일 오전 용산 전쟁기념관 중앙홀에서 평안북도 성우회(김홍일 장군 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렸다.

 ▲ ‘故 김홍일 장군 35주기 추도식’이 23일 오전 용산 전쟁기념관 중앙홀에서 평안북도 성우회(김홍일 장군 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렸다.ⓒkonas.net

 이날 행사는 장정열 평안북도 성우회장을 비롯한 회원 및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이영계 전쟁기념사업회장, 광복회 회원, 육군종합학교전우회 회원과 학생 등 약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안북도 성우회장의 개식사와 추도사, 추모사, 헌화, 묵념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추도식 후에는 김홍일 장군의 독립운동과 한강방어 전투를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전쟁기념관 뮤지엄웨딩홀에서 진행되었다.

 김영철 김홍일 장군 기념사업회 사무총장(前 목원대 교수)는 ‘김홍일 장군의 생애와 광복군 활동’ 제하 주제발표를 통해 1948년 8월 고국 땅을 밟기까지 중국에서 중국군과 광복군으로 활동한 사례를 소개하며 “김홍일은 북벌전과 중·일전쟁에서 지휘관으로 활동한 실전 경험을 가진 대표적인 군인이었다”며 “이와 같은 활동을 한·중 공동항전의 중요한 사례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남정욱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김홍일 장군의 한강방어전투와 전사적 평가’에 대해 ‘대한민국을 기사회생시킨 일’이라고 칭송한 이승만 대통령의 말을 사례로 들며 “매우 고무적”이라면서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최대의 위기인 6·25전쟁에서 구국의 애국적 역할을 수행한 장군으로 높이 평가할 위업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강방어전투는 남침 이후 대한민국에게 몰아닥친 국가존망의 위기를 김홍일 사령관을 비롯한 국군 장병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에 의해 극복한 구국의 전투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 추도식 이후 전쟁기념관 뮤지엄웨딩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는 김홍일 장군의 독립운동과 한강방어 전투에 대한 평가가 재조명 됐다.ⓒkonas.net

 김홍일(1898. 9. 23 ~ 1980. 8. 8일) 장군은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인 1918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귀주 강무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국민혁명군 장교로 임관했다.

 1921년 대한의용군사회의 참모로 동참, 본격적인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는 등 중국내에서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하였다.

 특히 1931년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위해 도시락형 폭탄 제조를 지원하는 등 행동하는 애국애족정신을 보여주었다.

 1940년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 1944년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을 역임했으며 광복 후 1948년 8월에 귀국하여 국군에 몸을 담은 후에는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참모학교장, 시흥지구전투사령관, 육군 제1군단장, 육군종합학교장 등을 거쳐 1951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6·25전쟁 개전 초반에는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서울 함락으로 와해된 2, 3, 5사단과 수경사의 후퇴하던 병사들을 전투부대로 재편성시켜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참전과 아군의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 무려 6일 동안 한강방어전을 치렀다.

 이후 1군단 사령관을 맡아 낙동강 지연전까지 성공해 맥아더 원수가 인천상륙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도 했다.

 예편 후에는 외교관과 정치인으로서 대만대사, 외무부장관, 재향군인회장, 광복회장 등을 역임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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