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배운다
“바둑에서 배운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저 노인은 언제 바둑을 배웠을까?” 의아하게 느낄지 모르는데 나는 바둑을 전혀 모릅니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바둑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한 마디로 하자면 바둑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바둑의 ‘수’를 나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대국하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판세를 가늠합니다. 기사의 표정이 약간 굳어지면 그가 수세에 몰린 것을 내가 압니다. 기사의 표정에 자신감이 감돌면, “아아, 이쪽이 우세하구나! 단박 알게 되는 겁니다. 명인들의 손끝은 하나 같이 세련돼 있어서 바둑알을 하나씩 바둑판에 놓는 솜씨가 예술입니다. 한 수도 잘못 두지 않으려고 시종여일 긴장한 그들의 모습에서 진지한 인생을 느낍니다.
지난 4일에는 한국기원이 주최하는 ‘맥심 24강전’에서 조훈현 9단과 박지은 9단의 대국을 TV 생중계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도 재미가 있어서 2시간 쯤 보고는 다른 일 때문에 자리를 떠서 누가 승자인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녁 때 내 조카 지순이에게 “누가 이겼니?”라고 물었습니다. 지순이는 자기의 스마트폰을 몇 번 두들기고 손끝으로 이리저리 그어보더니 “조훈현 9단이 이겼어요!”라고 대국의 결과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 대국은 여러모로 매우 의미심장한 대국이었기 때문에 장시간 내가 지켜본 것입니다. 조 9단은 1953년생이고 박 9단은 1983년생이라 그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30년이나 됩니다. 조훈현 기사는 회갑을 지난 초로의 인생이라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박지은 기사는 30을 갖 넘었다지만 단발머리의 묘령의 처녀처럼 보였습니다. 새끼손가락에 작은 금반지를 하나 끼고 있는데 기혼인지 미혼인지 나로서는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25년쯤을 한 세대라고 하는데 이는 가히 한 세대를 넘어선 대결이었습니다. 박지은 9단의 단아하고 당당한 표정을 보면서 초반에는 그가 우세하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조훈현 9단이 약간의 미소를 지으면서부터 판세가 달라졌다고 나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책을 100권이나 쓴 저술가라면 저술가인데 한 ‘수’만을 고집했습니다. “글을 쉽게 쓰자”는 원칙 하나를 고집하였습니다. 나는 90이 되기까지 강연·강의·설교를 여러 만 번 하였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사시절까지 합치면 한 5만 번은 단 위에 서서 또는 자리에 앉아서 말을 했을 겁니다. 나는 청중 앞에서 말하는 비결을 토스카니니나 번 슈타인 같은 세계적 지휘자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음악에는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앞에서 지휘봉을 들고 춤을 추는 멋진 지휘자 노릇을 한 번도 해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나의 간절한 꿈이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기원의 기사들에게서 늘 배우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들에게서 꾸준히 배워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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