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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①〕남을 향한 첫걸음

Written by. 이병철   입력 : 2016-09-02 오후 2: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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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이 지난 4월부터 2개월 동안 사회복무요원을 대상으로 체험수기를 공모해 채택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집을 9월2일 발간했다. 30편의 우수작을 중심으로 편찬된 수기 내용을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아래 게재한다. 아래 내용은 병무청이 이 날 발간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최우수상’ 글임.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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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그림’이란 ‘나는 여태 무얼 그려왔는가?’ 사회복무를 하며 든 생각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엔 선생님에게 칭찬받을만한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 들어선 교수님을 만족시킬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는 좋은 그림은 남을 위한 그림이라 배웠고, 그래서인지 그런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마인드를 갖고 그림 그리는 수많은 날 동안 저의 그림은 낮은 평가를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못하고 있거나 저의 그림이 틀렸다’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싫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회복무를 하면서 저에게 그림의 의미는 달려졌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저에게 ‘그림’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저는 어느 누구와 어색함이 있는 그 순간을 싫어합니다. 싫다기보다는 그런 기분이 찝찝하고 괴롭습니다. 처음에 낯도 많이 가리고 말주변도 없는 편인 저는 이럴 때면 저만의 비장의 무기인 ‘그림’을 꺼내곤 합니다.

 재미있는 캐릭터들을 그려주며 처음에 만난 동기와 어색함을 깨뜨렸고, 기관 직원분들의 캐리커쳐를 그려주며 사이가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걱정했던 저의 사회복무는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꼬마 아이 두 명이 기관에 찾아왔습니다. 치료 받으러 온 10살 여자아이와 동생인 8살 남자아이였습니다. 치료는 여자아이만 받지만 혼자 있기가 싫어 누나를 따라 기관에 찾아온 것입니다.

 결국 여자아이는 치료를 받으러 들어갔고, 남자아이와 저는 놀이방에 단둘이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침묵 속에서 아이를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친조카도 없었던 나로 서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항상 어색하고 귀찮기만 한 일에 불과했습니다.

 그때 놀이방 한쪽에서 종이와 색연필을 발견했고, 저의 비장의 무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선뜻 아이에게 뭘 가장 좋아하냐 물었을 때, 아이는 공룡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흰 종이에 공룡을 뚝딱 그려 넣었습니다.

 처음엔 그 아이도 어려워했지만 금방 얼굴이 미소가 번지며 좋아하였고, 또래 아이처럼 장난기 많은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놀다가 어느새 시간이 흘러 아이의 누나가 치료가 끝이 났습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 동안 무사히 아이를 돌봤다는 것이 뿌듯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매번 아이들이 올 때마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흰 종이 위에 그려 넣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은 제가 아이와 놀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같이 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루는 간사님 업무 보조 차원에서 처음으로 직접 현장에 나간 날이었습니다. 근무시간에 기관 밖을 나선다고 생각하니 들뜬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소풍 가기 전날의 설렘과도 비슷했습니다.

 출발하기 전 간사님은 저에게 “생각보다 힘들 거야.”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살짝 떨떠름했지만, 그때까지 설레는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드디어 사례 아동이 거주하고 있는 주공아파트 정문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차에서 내리면서 보이는 싸늘한 풍경과 분위기, 말없이 한동안 쳐다보시는 주공아파트 주민들의 시선이 저를 공격했습니다. 그것들이 간사님 옆에 있던 저를 점점 뒤쪽으로 물러나게 했습니다. 사례 아동의 집 현관문 앞에 서서 간사님은 멈칫한 뒤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저의 긴장감이 아무렇지 않은 간사님을 긴장한 모습으로 보이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잠시 뒤에 현관문이 열려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들이 펼쳐졌습니다. 집 안은 매우 지저분했고, 기분 나쁜 냄새들이 코를 찔렀습니다. 간사님이 아동의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동안 지적 장애인이신 어머니는 혼자서 소리를 지르시고 똑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시곤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기관에서 함께 그림 그리며 놀던 아이를 이유 없이 어두운 얼굴을 가진 아이처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2시간 같은 20분이 흐르고, 차를 타고 도망치듯 주공아파트에 빠져나왔습니다. 저의 설레는 마음은 단 몇 분 동안의 풍경과 분위기, 시선, 냄새에 의해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그 후로 치료를 위해 기관에 찾아오는 아이들과 그림 그리며 놀 때마다 ‘이 아이도 지금은 웃고 있지만 상처가 많겠지’라는 생각이 매번 듭니다. 그럴 때면 내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이게 낙서에 불과한 그림 이외엔 무얼 했는지,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여태 ‘그림’만 그려왔고, ‘그림’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없는데 무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우연찮게 디자인대학 학생으로 다니던 때에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러브하우스’는 실내디자인과 학생들이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의 집에 찾아가서 벽지부터 장판까지 새것으로 바꿔 깨끗한 공간을 만드는 봉사 프로그램입니다.

 이런 경험 갖고 있는 저는 아이들이 치료받기에는 딱딱하고, 차가운 치료실 공간을 원활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따듯한 공간으로 꾸며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대상자는 다르지만 제가 하고자하는 의지와 의도는 그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연 관리자님과 센터장님이 허락해 주실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모두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센터장님은 저와 함께 여러 계획안을 평가해주시고 고민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수정을 통해 결정안을 뽑고, 그에 필요한 페인트, 붓, 스티커, 선반 등등 필요한 도구들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릴 틈도 없이 사회복무요원 동기의 도움을 받아 치료실 안에 있는 가구와 짐들을 정리하고, 먼지들을 제거하는 등 준비 작업하였습니다.

 준비 작업을 마치고 흰 벽에 첫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저는 첫 페인트칠을 하는 그 순간의 걱정과 설렘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을 옷에 페인트를 묻히고, 먼지투성이가 되어가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작업 도중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이들이 새로워진 치료실을 보며 좋아하고, 친근한 치료실이 되어 아이들의 치료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설레고 기대될 뿐이었습니다.

 페인트칠하고, 스티커와 폼브릭을 붙이고, 선반을 다는 등 약 2주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치료실은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센터장님과 간사님들은 저의 작품에 감탄하셨고, 아이들 또한 변화된 치료실을 보며 신기해하고 좋아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선 이제 어색한 공간에서 치료받지 않아도 될 거란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이제는 상처받은 수많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치유받길 바랠 뿐입니다.

 저는 가끔 아이들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곤 합니다. 그 중 한 아이의 대답이 기억납니다. “그림 그릴 땐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림에선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동생도 웃고 있거든요.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아요.” 이 대답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이들은 그림이 단순히 재미있어서, 좋아서가 아닌 그들의 진심이 담긴 세상을 작은 종이 위에 그려 넣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태 무얼 그려왔지?’ 그 순간 든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여태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저에게 좋은 그림이란 남을 위한 그림이었지만, 나의 윗사람, 선생님, 교수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그림들만 그렸습니다.

 정작 그림이 필요한 사람들이 한순간만큼이라도 다른 세상으로 느낄 법한 그림을 그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남을 위한 그림을 배워왔고,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었지만 단지 나를 위한 그림을 그려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늘 그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진정으로 좋은 그림을 그리리라 약속합니다.(Konas)

이병철(전북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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