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함께한 133년의 파노라마(Panorama)
태극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많은 사람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태극의 물결을 떠올릴 것이다. 또는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자랑스럽게 휘날리던 전국의 태극기나, 매년 국경일에 게양되는 태극기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현충일의 조기(弔旗)를 생각하고, 천안함 용사를 감싼 영구용 태극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즉 태극기는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공히 느끼도록 해주는 매개물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는 태극기가 대한민국의 표상(表象)이자 국가를 대체하는 상징물로써, 대한민국의 모든 중요한 일에 관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태극기의 133년 역사를 회고해 보면 부침을 거듭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파노라마(Panarama)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1883년 3월 6일 정식 제정된 태극기는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장정 체결 시 국기의 부재로 겪었던 불편을 계기로 제작되었다. 특히 동 장정 체결 시 청나라는 조선이 자신의 속국임을 들어 청나라 국기를 사용할 것을 강요했음에도, 임시 국기를 제·사용한 점은 쇄국정책에서 벗어나 국제관계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과 청의 속국이 아닌 독립국으로서의 조선의 존재를 세계에 공표했다는 점은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한편 대내적으로도 나라를 상징하기 위하여 그 나라의 표지로 정한 상징물이 만들어짐에 따라, 국민에게 국가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향후 맞이할 시련에서 국가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태극기의 탄생은 그 자체로 크게 기뻐할 일이지만 향후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시련의 역사는 태극기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을사늑약에 항거해 거병한 고광순 의병장은 1906년 ‘머지 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불원복(不遠復) 기를 만들어 의병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또한 1909년 단지동맹 결성 시 안중근 의사는, 건곤감리(乾坤坎離)의 사괘에 대한독립을 새긴 ‘혈서(血書) 태극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독립군이 사용한 진군기(進軍期),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한인애국단 가입 맹서(盟誓)의 순간 등 36년 간의 독립운동에는 언제나 태극기가 함께했다.
이렇듯 항일운동의 구심점의 기능을 수행한 태극기는 일본에 의해 금지되었고, 이에 따라 순국선열에게 자행된 탄압이 태극기에도 행해짐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편 광복과 정부수립에 따라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는 1949년 10월 15일 대한민국의 정식 국기로 제정·공포돼 향후 국가수호의 상징물로 기능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6·25에 참전한 학도병은 위국헌신의 맹서를 태극기에 기입했는데, 특히 ‘재일학도의용군 서명 태극기’는 凡대한의 국가수호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51년 9월 27일 중앙청 옥상에 게양된 태극기는 서울수복의 감격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한편 1987년 6월 항쟁 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국민들의 행진은 자유민주주주의의 내적 수호를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듯 ‘대내외적 근대 국가체계 형성의 계기-항일운동의 구심점-국가수호의 상징’으로서 태극기는 우리와 1세기 이상을 동고동락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주경기장과 1991년 대한민국의 국제연합 가입으로 유엔본부에 게양된 태극기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격상된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서두에서 언급한 한일월드컵과 서울G20정상회의 당시의 태극기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태극기는 대한민국이 빛났던 순간을 더 영광되게 해 주었고, 시련의 시기에는 극복의 의지와 희망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왔다. 태극기가 이토록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대한국인의 역사와 정체성 및 굳건한 기상을 축적해, 이를 애국심이라는 고결한 가치로 승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극기를 생각함에 처음에는 대한민국 그 자체를, 두 번째에는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세 번째에는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떠올린다고 하면, 혹자(‘或’者)에게는 고차원적 선진의식으로, 또 다른 혹자(‘惑’者)에게는 고루한 국가주의로 들릴 것이다. 물론 태극기와 함께한 133년의 파노라마(Panarama)를 존중하는 대한국인이라면 혹자(‘惑’者)는 없을 것이다.(konas)
오제호 / 경기북부보훈지청 선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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