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②] 그리웠던 대한민국에서 후회 없는 ‘한’ 결정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우수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Korea. 대한민국. 나의 고향, 나의 집, 나의 소속인 한국이라는 나라는 몇 년 전만 해도 가깝고도 멀기만 했던 단어였다.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친근하고 익숙한 “한국어”가 재외국민인 나에게는 어렵고 낯설기만 한 언어였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중남미의 과테말라에서 살았다. 누가 들어도 “어디 라고?”라는 답이 먼저 나올 정도로 생소한 나라이다. 나는 그런 과테말라에서 9년 정도의 긴 시간을 보냈다. 그 후 2016년 3월 28일, 내 나이 23살에 처음 한국에서 군 입대라는 내 인생 후회 없는 한 결정을 하였다.
내가 과테말라에 있을 때, 2013년 어느 봄에 한국에서 할머니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할머니가 그러셨다. “순모야, 어떡하니 징병검사 통지서가 나왔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징병검사 통지서가 사형선고인 듯 제일 받기 싫어하는 우편물 중 하나일 텐데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었다. 나는 그냥 무덤덤하게 내 일이 아닌 듯 할머니에게 전화너머로 말씀드렸다. “할머니 그냥 버려주세요 저한테는 상관없는 우편물이에요.”
그 때는 몰랐다. 저 우편물이 아주 상관있는 편지였단 걸. 왜 그땐 몰랐을까? 그렇게 몇 개월 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대학을 결정하는 시기가 되었다. 한국, 미국, 과테말라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지 나는 아주 신중히 고민했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가 그러셨다. 어차피 과테말라로 돌아올 거면 과테말라에서 대학을 다니던지 한국에 가서 한국문화와 한국말을 배워오라고 하셨다. 나도 그 당시 아버지와 같은 생각이었기에 아버지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 그 다음날 나는 바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사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나는 한국의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그 누구보다 신나고 알차게 대학생활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사실 하나가 있었다. 1학년 2학기를 시작으로 남자 동기들이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학년이 시작되자 모든 남자 동기들이 사라졌다. 인형 뽑기를 하듯 누가 내 동기들을 학교에서 군대라는 곳으로 이동시켜 놓은 것이다. 어차피 나는 과테말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군대에 안 간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속편한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하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속편한 게 아니었다. 군대 안 간다고 자랑하고 입대한 동기들 놀리는 맛으로 살면서 웃는 나였지만 속으로는 뭔가 불안했다. “어라? 나만 군대 안가네. 내가 저 친구들보다 못한 점은 없는데.” 이 생각을 반복하면서 내 자존심은 바닥을 쳤고 속은 타들어만 갔다. 결국 상황이 역전 되었다.
전에는 내가 군대 안 간다고 자랑하면서 놀렸지만 이제는 동기들이 나만 군대 안 간다고 놀려댔다. 그래서 나는 결심하였다. 어차피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딱 한번 가는 군대 나라고 못 갈 듯싶으냐. 나도 충분히 이겨내고 당당하게 전역해서 어깨 올라간 재외국민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입대를 하게 되었다.
2016년 3월 28일.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나는 난생 처음 삭발을 하고 논산훈련소에 들어섰다. 이리 봐도 빡빡머리 저리 봐도 빡빡머리, 훈련소에 들어갔더니 처음 본 풍경이었다. 하지만 슬펐던 건 나조차도 빡빡머리 였다는 사실이다. 2시가 되자 나는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연병장으로 내려갔다.
조교들이 아주 착하게 웃으면서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라며 상냥한 멘트와 제스처로 나를 한 부대에 넣어주었다. 입소식을 하면서 나와 같이 입대한 친구들이 어색하고 흐트러진 자세로 부모님, 친구, 애인에게 경례를 하였고 우리가 떠나가면서 울음소리와 이름들이 울려 퍼졌다. 우리는 입영심사대에 도착하였고 그렇게나 상냥했던 조교들이 하나같이 전부다 샤우팅을 하기 시작했다. 조교들의 떠날갈 듯한 목소리에 나의 멘탈도 같이 떠나가 버렸다.
논산훈련소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했던 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물론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포함이다. 내 생각에는 훈련소에서 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운다고 말하고 싶다. 끈기, 인내, 참을성, 복종, 배려 등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근 1달 동안 훈련소에서 배우고 깨우친다.
대학생 때 식욕이 왕성했던 나는 70kg에서 87kg이 되었고 아주 포동포동하게 오른 살과 같이 입대를 하였다. 구보와 행군을 통해 살이 빠졌고, 평생 멸치 소리만 듣던 나는 처음으로 어깨가 벌어졌다는 말을 훈련소에서 들었다. 내 생각이지만, 사람은 최소 한번 단체생활을 해봐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게 된다. 물론 군 생활 중 훈련소 생활은 한달 밖에 되지 않지만, 그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자신의 군 생활이 달라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2016년 5월 4일, 대망의 수료식 날이었다. 가족을 볼 생각에 설렜다. 엄마는 과테말라에서 가게 때문에 못 오시고 아버지만 출장을 내 수료식 날에 맞추어 귀국하셨다. 훈련소 동기들한테는 시크한듯 무덤덤하게 신난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앞에서 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료식 때 부모님을 뵈면 가슴이 벅차리라 생각은 했었지만 울 거라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수료식 행사가 시작 되었고 나는 차렷 자세에서 절대 움직이지 않았으며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 보고 싶은 내 부모님을 찾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부모님이 보이지 않으셨다. 아 뒤에 계시겠구나 하며 행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행사가 끝나자 부모님들이 아들을 찾아갔고 나도 가만히 부모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그러자 세 발자국 앞에서 아버지가 나타나시더니 내가 말 한마디 하기도 전에 성큼성큼 오셔서 나를 끌어안아 주셨다. 안아 주시면서 등을 쓰다듬어 주시더니 계속 “고생했다. 미안하다” 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뭐가 그리 미안하셨는지, 내가 원해서 자원입대를 한 것인데 아버지는 그래도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안아 주시자마자 나는 아주 서럽게 울었다. 그깟 훈련 받는 게 뭐 힘들었다고 나는 세상 모든 게 억울한 듯 아버지한테 안기며 대성통곡을 했다.
내 인생 초등학교 이후로 아버지한테 처음 안기는 순간이었다. 훈련소 한 달이 뭐가 그렇게 길다고 찡찡댔으며, 한 달 먹고 싶은 것 안 먹는다고 어찌 그리 죽을 표정 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좋은 추억인 것 같다.
2016년 5월 9일, 나는 나의 집이 될 곳인 2군단 102정보통신단에 배치되었다. 중대에 오자마자 선임 분들이 모두 같이 전입 온 신병 2명과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세상 모든 관심을 우리가 받고 있는 것 같았고 무서웠다. 우리는 생활관에 배치되었고 소대 선임 분들이 한 명씩 찾아와 인사를 하면서 악수를 건넸다. 요즘은 선진 병영이라고 선임 분들이 이등병들한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눈치껏 선착순 부르면 뛰어가고 나서서 선임 일도 같이하며 선임들이랑 친해졌다.
이등병은 힘든 것이 당연한 것이다. 처음 들어와서 편하게 있으려고 아무것도 안하면 나중에 후임이 와도 분명 인정을 못 받을 것이다. 아무리 선진 병영이지만 선착순으로 뛰어가 일하면서 중대 분위기도 알아가고 선임들 얼굴 익히면서 친해지는게 올바른 이등병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구타나 가혹행위가 있으면 보고를 하여 조치를 받는 게 맞다.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이등병은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시키는 것만 하면 선임들에게 아주 예쁨 받는 이등병이 될 것이다. 정말 진지한 Tip이다.
전입 후 3주 뒤 쯤 내게 첫 야외 훈련이 찾아왔다. 2시간 거리에 있는 야전으로 나가 3박4일 훈련을 받았다. 나는 통신병이다 보니 훈련기간 동안 망 개통이 최우선 목표였다. 선임들 모두 작계지역에 도착하자마자 통신장비들을 내려 바로 통신망 개통에 들어갔다. 장난 끼 가득했던 선임들도 훈련 기간만큼은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서로서로 말 안 해도 눈빛으로 선임들은 움직였다. 처음으로 군인이 멋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잘 몰랐지만 한 무선망이 개통이 안 되어 선임들이 몇 시간 동안 일한 기억이 난다.
저녁시간이 되었는데도 밥 먹기를 거절하며 먼저 망 개통해야 된다고 막내들 먼저 먹으라고 하였다. 그 당시에는 막내들 배려하는 줄 알았지만 지금 내가 선임이 되어서 생각해보니 선임들이 빠르게 작전을 완료하는 게 수월해서였다. 선임들은 새벽까지 일 해서 결국 망 개통에 성공하였다. 미션 완료 후 선임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웠고 멋있었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내가 선임이 되어서도 저렇게 할 수 있을지. 당시 이 훈련을 통해 내가 느꼈던 점은, 빨리 내 주특기를 배워 훈련 나가서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는 일 없이 훈련 내내 구경만 했던 내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처음으로 내가 남들에게 피해주기 싫어 열심히 공부를 해봤다. 주특기 교범도 열심히 읽고, 개인정비 시간에도 몇몇 선임들을 찾아가 내 주특기를 배웠다. 내가 일병일 때 정말 열심히 배우고 준비했던, 대망의 TOP노드가 개최 되었다. TOP노드는 여러 통신 소대가 출전해 1시간 이내에 필요한 모든 통신망을 개통하는 것이다. 우리 중대에선 내가 속해있던 소대가 출전하게 되었다. 소대에서 나는 막내였지만 주특기에서는 조장이었다.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준비하고 훈련하였지만 너무 큰 대회라 떨리고 걱정되었다. 대회 날 작계지역에 도착하고 바로 망 개통을 시작하였다. 나는 내 손이 떨리는 것도 보았고 속으로 혼자서 “제발 제발 제발”이라고 속삭이며 성공하길 빌었다. 다른 선임들은 전부 망 개통에 성공하였고 나 혼자만 남았었다. 그 당시 나에겐 10분 정도 남아있었고 정말 미친 듯이 움직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전원을 켰고 바로 종료 휘슬이 울렸다.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선임들 얼굴 보기가 미안해 고개 숙이며 정렬해 있었고 선임들이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며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가관이 다행히도 1시간 이내에 모든 통신망들이 개통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소대는 신나서 소리 지르고 뛰어다녔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성취감이란 걸 느껴봤다. 정말 이 대회는 내게 있어서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기억이고 경험이었다.
군대는 참으로 좋은 곳이다. 운동, 공부, 독서, 국가자격증, 대학교 학점 등 다양한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해준다. 나는 부대에 와서 양식조리기능사를 준비했다. 필기시험비도 무료고 교범 같은 것도 부대 따라 다르겠지만 제공된다. 나는 태어나서 책을 거의 읽어 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강제로 읽게 하는 책 외에는 내가 직접 책을 구입한 적이 없다. 하지만 군대에서 나는 좋은 습관을 들였다. 매일 시간이 나면 책을 읽는 것이다. 예전의 나에게 책이라면 수면제였지만 지금은 좋은 취미 활동이 되었다. 내가 벌써 구입하고 읽은 책만 해도 30권이 된다. 내 목표는 전역 전까지 50권의 책을 읽는 것이다. 부대에서 누릴 수 있는 제일 좋은 혜택은 운동이다.
남자라면 한번쯤은 좋은 몸을 갖고 싶은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군대가 운동하기에 완벽한 곳이다. 군대에서는 매일 2시간씩 전투체육시간을 주는데 이 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하면 된다. 운동기구도 필요한 것은 다 있다. 다행이도 나는 친한 선임중에 스포츠학과인 선임이 있어서 매일 같이 배우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도 이제 욕심이 나서 개인정비시간에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군 생활을 정리하자면, 한번쯤은 다녀와야 할 중요하고 필요했던 곳이라 생각한다. 부대에서 나는 단체생활을 통해 인내와 배려를 배웠으며 훈련을 통해 전우애와 성취감을 느꼈다. 일 ․ 이병일 때는 간부님들과 선임들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몸에 습관화 하였고 내가 선임이 되고는 후임들을 통해 리더십을 키웠다.
전투체육을 통해 건강한 몸을, 개인정비시간 때는 책을 읽어 건강한 뇌를 기르고 있다.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는 곳이 군대이다. 어른들이 매일 같이 하시는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진짜 남자가 된다.”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군대에서는 사회생활을 경험할 수 있으며 사람 보는 눈을 기르게 된다.
나는 대학졸업 후 내가 살던 과테말라로 다시 돌아가 군대를 안 갈 수도 있었지만 내 선택으로 입대를 하였고 전역까지 200일 정도 남아있다. 만약 누가 나에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입대여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난 고민 없이 입대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장난으로 군대에 재입대 하라고 하면 나는 도망가겠다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진지하게 임하고 생각해 보면 입대 후 얻는 것이 더 많아 나는 내 군 생활이 후회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어느 누가 군 입대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나는 당당히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한번 사는 인생 군인신분으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지키며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꾸미며 전역 후 새 출발하는 것은 정말 나쁘지 않다.
(2군단 102정보통신단 722통신대대 2중대 1소대 1분대 상병 안순모)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img_data/article/260923/260923_6300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