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2월의 전쟁영웅에 마리누스 덴 오우덴 육군 중령, 독립운동가에 김규면 선생

한국전 자원 참전해 ‘라운그업’ 작전에서 전사…중국·러시아 누비며 무장투쟁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8-01-30 오전 9:51:54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마리누스 덴 오우덴’ 네덜란드 육군 중령을, 김규면(金圭冕, 1880. 3. 12.~1969. 2. 2.)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마리누스 덴 오우덴 중령은 네덜란드 왕립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1932년 7월 31일 네덜란드 왕립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1950년 6월 한국전에 참전하기 위해 조직된 유엔군의 네덜란드 대대에 자원하였다.

 오우덴 중령은 당시 소령 계급으로 네덜란드 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1950년 10월 26일 한국으로 출발, 1950년 11월 23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전선의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 오우덴 중령과 그의 대대는 부산에 도착한지 1주일 만에 전선으로 파견되어 12월 중순의 혹한 속에서 미2사단(인디언헤드 사단) 38연대에 배속, 전선 후방으로 공격하는 북한군과 중공군을 방어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오우덴 중령의 대대는 1951년 2월 5일 북한군과 중공군을 북쪽으로 밀어내기 위한 ‘라운드업 작전’에 참여, 후퇴하는 국군을 엄호해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유엔군에게 반격의 기회를 갖게 함으로써 이후 전쟁의 양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오우덴 중령을 포함하여 15명이 전사하였다.

 오우덴 중령이 참전한 주요전투는 인제 전투, 대우산 전투, 평강-별고지 전투, 횡성전투 등이다.

 한편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김규면 선생은 중국과 러시아를 누비며 무장투쟁을 한 대한신민단 단장이었다.

 1880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선생은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운영하는 육군무관학교 속성과에 입학했으나 1904년 일본이 강제로 체결한 한일의정서에 근거하여 육군무관학교를 통제하자 무관이 되어 조국 부강을 염원했던 선생의 꿈이 좌절되고 말았다.

 1907년 중국 훈춘으로 망명한 선생은 민족종교 단체인 대한성리교를 만들었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에 포교규칙(布敎規則)을 공포하자 이에 반발하며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무관이 되지 못한 선생은 청년들을 독립전사로 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1914년 이동휘와 함께 중국에서 설립한 동림무관학교가 대표적인 것이다.

 이후 독립전쟁을 통해서 독립을 달성하고자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을 결성해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여기서 보여준 그의 헌신은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1924년 윤자영과 함께 상해에서 조직한 상해청년동맹(上海靑年同盟)을 통해서 중국 학생계와 연대를 구축하고자 했으나 이 과정에서 피습당해 부상을 입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 활동 전개에 한계를 절감한 선생은 연해주로 건너가 1933년 빨찌산위원회에서 항일운동을 하였지만, 소비에트 연해주위원회의 탄압대상이 되었다.

 선생은 러시아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귀국을 하지 못한 채 1969년 88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정부는 2002년 김규면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6.10.11 일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한미연합연습 축소에 따른 우리 군의 대책
1. 들어가기2026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습적인 지..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공소청·중수청 시대 오늘 개막…
이재명 정부의 검찰 개혁으로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