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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⑱ <입선> 돌이켜보니, 모두 사랑뿐입니다

편견'의 눈이 아닌 협력'의 눈으로
Written by. 정홍규   입력 : 2018-10-15 오전 11: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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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찬바람이 불던 밤

 "이순덕 할머니, 2014년 1월 23일 오전 12시 81세로 운명하셨습니다.ˮ
급히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오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였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너무 슬프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아 그저 우두커니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스무 살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중풍이라 불리는 뇌졸중이 7번이나 찾아와 긴 투병생활을 하신 뇌병변 2급 장애인이셨습니다. 할머니는 그 영향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으셨고, 부축 없이는 제대로 걸으실 수조차 없으셨습니다.

 그러한 할머니를 위해 어머니는 병원에서 머무르시며 병수발을 드셨고, 저는 주로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드리거나 이동 시에 부축하는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빨리 죽어야 너희들이 고생을 안 하는데...ˮ 한탄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괴로웠습니다. 사회복지, 특히 장애인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때 즈음부터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를 전공하던 저는, 전공 과목으로 특수교육학개론을 수강하는 등 특수교육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지금껏 한 번도 해 본적 없던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께 미처 다 드리지 못한 사랑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는 작은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근무지를 선택하던 날, 수많은 근무지들 중 제가 선택한 곳은 북구장애인주간보호센터'였습니다. 목록에서 북구 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할머니였습니다. 장애로 인해 힘들어하시던 할머니와 같은 분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도 있었습니다. 특히 앞서 사회복무요원을 경험했던 사촌형은 "구청이나 학교에서 복무하게 되면 일도 쉽고 개인적인 여유시간이 많다. 그 여유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자기개발시간을 갖는 게 좋지 않겠냐.ˮ며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결정은 쉬웠습니다. 평생을 고생하시던 할머니를 그리면서, 장애로 인해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2년 동안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북구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1순위로 자원 신청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서

 "쌤님, 안냐쎄요!ˮ오전 9시 30분, 이용자분들이 센터로 오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비록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저 조차도 그 순수함에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여러분, 어제는 집에 가서 뭐 하셨어요ˮ한 이용자가 대답 대신 손을 앞뒤로 움직이며 수영하는 흉내를 냅니다. 저도 그 모습을 흉내 내 봅니다. "아 수영! 슉슉! 이렇게? 이제 수영 잘 하겠는데요? 또 다른 분들은 어제 뭐 하셨어요ˮ복무한 지 약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이러한 대화가 참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북구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 왔을 때, 이런 모습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근무지로 향하던 첫 날, 저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풍겨나는 악취는 저의 코를 괴롭혔고, 이용자 분들은 제가 말을 걸거나 도움을 주려고 다가가면 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하거나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욕설이었습니다. 혼자 외투를 벗는데 어려움을 겪는 한 이용자는 제가 다가가 옷을 벗는 것을 도와줄 때마다 욕설과 함께 고함을 지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도와주려는 건데 왜 욕을 먹어야 해'라는 생각에 많이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러시는 대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나름 준비를 많이 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더욱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고충을 알고 계셨다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센터에 다니고 있는 이용자분들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이 넘게 다니신 분들이에요. 그동안 수많은 사회복무요원을 겪어봤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을 거예요. 마음을 열고 이제 좀 친해지려하면 가버린다는 걸 다들 알아요.ˮ아! 그제야 이용자분들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참 가슴 아팠습니다. 우리가 장애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떠날 사람', 우리에게 관심 없는 사람' 이렇게 말입니다. 그 편견을 깨어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조금 서툴지만, 사회복무요원도 이용자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이용자분들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등을 상세히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앞에서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임으로써 관심을 끌기도 했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친절히 대하며 저에 대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퇴근 후면, 장애관련서적을 읽으며 하루하루의 저의 행동을 돌이켜보고 올바른 대처법과 개선할 점들을 공부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러한 저의 모습에 이용자분들은 조금씩 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저를 피하던 모습과 달리, 이제는 저에게 먼저 다가와 생글생글 웃으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가끔 제가 피곤해 보일 때면 어깨를 주무르며 시원한 안마를 해주기도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이러한 변화를 매일 보고 느낄 수 있어,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나'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편견'의 눈이 아닌 협력'의 눈으로

 북구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사회적응훈련이라는 야외활동을 진행합니다. 사회적응훈련이란, 센터 이용자분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비장애인들과 잘 동화될 수 있도록 영화관, 공원 등의 공공 문화시설을 체험해보고 버스, 지상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는 외부활동입니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갖기 드문 이용자분들은 일주일 중 이 날을 가장 기다릴 정도로 사회적응훈련시간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용자분들과 함께 밖으로 나갈 때면, 사람들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습니다. 흠칫 놀라며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혀를 끌끌 차기도 합니다. 정말 이들은 편견처럼 그저 부족하기만 한 존재일까요? 저의 대답은 아닙니다.'입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이용자 분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그들의 예상치 못한 뛰어난 면을 보고 놀랄 때가 참 많습니다.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K씨는 절대음감의 달인입니다. 옛날 노래부터 최신 노래까지, 도입부의 한 소절만 듣고서도 정확하게 노래제목과 가수를 맞출 수 있습니다. 센터 이용자들 중 막내인 H씨는 조용한 평소 모습과는 달리 음악에 맞춰 즉석에서 춤을 잘 춥니다. 몸치인 저로서는 그저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입니다. 이용자들 중 가장 엘리트인 J씨는 신문 읽기, 그 중에서도 주식 란과 TV채널편성표 란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J씨에게 어떤 주식을 사는 게 좋을지 추천해 달라고 하면 시세가 오른 주식을 손으로 짚기도 하고, TV채널편성표를 외워두었다가 정확한 시간에 보고 싶은 TV채널을 틀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Y씨는 소리를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누가 오는지 알아채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쏜살같이 달려 나가곤 합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키가 큰 사람과 키가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 운동을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등 각자 저마다의 다른 점 차이'가 존재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역시 이러한 차이를 가진 사람들일 뿐입니다. 차이를 가진 사람들은 협력'을 통해 서로를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이 운동을 잘 할 수도 있고, 노래를 잘 못하는 사람이 춤을 잘 출 수도 있습니다. 사회의 시선이 편견'의 눈이 아닌 협력'의 눈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선생님, 계속 남아주세요

 고민 많은 20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문득 지금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당시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스로도 만족할법한 보람찬 복무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하나둘 사회인으로서 성장해가는 친구들을 볼 때면 왠지 모를 회의감과 불안감에 한숨이 늘어갔습니다. 나는 여기에 서 있는데 다들 나를 앞서 가는 듯한, 혼자만 멈춰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건, 바로 이용자분들의 어머님들이셨습니다. 학부모간담회 행사 도중, 한 어머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소집해제 후에도 계속 계시면 안 될까요 매달 캠프도 같이 가시고 선생님처럼 사회복무요원이 지금까지 이렇게 신경써주시는 경우가 없었어요. 선생님께서 다들 아껴주시는 게 느껴져요.ˮ

 다른 어머님께서도 "우리 애가 선생님을 참 좋아해요. 집에 오면 맨날 선생님이랑 오늘은 같이 뭐 했다고 자랑하고...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ˮ 어머님들께서는 제 손을 잡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씀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뭐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이 감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내가
잘 하고 있었구나.' 정말 감사했습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소중한 자식분들을 맡겨주셔서, 이렇게 사회복무요원으로서는 정말 최고의 찬사를 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

저는 영원한 사회복무요원입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군복무기간 동안 2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저에게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2년의 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이 시간은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더욱 발전해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자,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시기이며, 앞으로 경험하게 될 사회생활을 미리 겪어보는 하나의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다가오는 1월, 저는 사회복무를 마치고 소집해제 하게 됩니다. 아직 6개월의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정이 든 이들과 작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합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복무를 끝마친 후에도, 저는 자주 센터를 방문해 저의 새로운 가족이자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저는 영원한 북구장애인주간보호센터 사회복무요원 정홍규입니다.(konas)

북구장애인주간보호센터 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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