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사회복무요원 수기 ‘복숭아나무 곁으로 가는길’(우수상)

Written by. 백준영   입력 : 2019-11-18 오후 3:56:41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들어가며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모를 것이다. 어제 전철역에서 오랜 친구와 마주칠 줄도 짐작 못한 일이고, 또 시시각각 휴폰을 타고 들어오는 여기저기 소식도 상상 못한 일들이다. 하다못해 오늘 출근길에 흐드러지 게 핀 맨드라미에 시선을 빼앗겨 버스 놓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구도자가 읊조렸듯 과연 사람의 일이란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입김의 향기처럼 ‘알 수 없다’라 하기에 충분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지역아동센터를 근무지로 배정받은 것이 우연이라면 우연으로, 인연이라면 인연으로 여겨진다. 구내(區內)의 수많은 곳 중에 왜 이름도 생소한 동네의 시설로 가게 되었을까? 의미를 부여하려 해도 다시금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 근무지와의 만남을 단지 ‘우연’ 두 글자로 이야기할 밖에. 다만 조금은 특별한 인연 또한 그 속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릴적 자기소개서 한 귀퉁이에 쓰던 나의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며 함께 호흡하기를 좋아했기에 - 비록 진로 설정의 핸들은 위 희망과 다른 쪽으로 틀어버렸지만 - 근무지 지정이 퍽 흡족했다.

 하지만 관공서에서 별똥별처럼 쏟아지는 민원을 받으며, 학술회에서 한여름 아스팔트마냥 이글거리는 비판을 들으며, 배치를 받을 때의 신경은 예민하고 표정은 굳어있던 차였다. 뭐랄까, 인적 드문 골목에 뚱하니 앉아 있는 가게 주인 같다고나 해야 할까. 적당히 요령껏 근무하려는, 심드렁한 모양으로 첫 출근길에 접어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사람의 일이란 자욱한 안개와도 같다는 것을. 아동센터로 가는 길이 복숭아나무 곁으로 걸어가는 길일 줄은 당시로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 첫 출근과 첫 질문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소회를 써내려가는 이 시점에 꽤 묵직한 추억의 가방을 열어보니 이렇게 시작하는 시가 들어 있었다.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푸근히 적셔주고 풍성하게 해주는, 나희덕 시인이 초년에 지은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라는 작품이다. 낯선 대상에 대해 느끼는 시인의 선입견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까닭 모를 불안감이라고 해야 하나. 나의 첫 출근에 떠오른 숱한 감정들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했듯 당시 나의 심리상태는 상당히 피폐해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게 되리란 기대감은 이미 복지시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덧칠돼 있었다. 센터 내에서 벌어질 천만 사건들(?)을 피해의식이라는 도화지에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건드리기만 해 보아라, 벌에게만 침이 있나, 내 혓바닥에도 하나 있다, 이런 못된 심성이 눈앞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센터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버겁게 느껴진 이유가 단지 체중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시설 관계자분들과의 짧은 면담을 뒤로 하고 제일 먼저 아동 학습에 투입(복무 시작 후 얼마 간은 투입으로 인식했다. 지금은 만남으로 인식하지만 적어도 당시에는…….)되었다. ‘적당히, 요령껏’이라는 구호가 교실까지 따라 들어왔다. 처음 만난 이 시커먼 아저씨를 아이들은 꼭 들녘의 허수아비 보듯 했다. 나도 허수아비이고 싶었다. 소집이 해제되는 그 날까지 허수아비이고 싶었다.

 그 순간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가 곁으로 다가와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언제까지 여기 계세요?” 꿀밤이었다. 꿀밤도 보통 매운 꿀밤이 아니었다. 이곳을 떠날 생각은 나만의 전유물로 여기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되레 아이들 쪽에서 그 말이 나오니 한동안 멍할 수밖에 없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클라이맥스처럼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건 왜요?” / “여기 오시는 선생님들은 얼마 안 있으면 또 가시거든요.” 저 말 한 마디 속에 그간 아이가 겪었을 헤어짐에 대한 아픔, 상처, 이런 것들이 농축돼 있었다. 아니, 응축돼 있었다. ‘(……) 그 나무는 아마 /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과 떠안아야 할 상처는 내게 큰 그늘이 될 것으로 보였다.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멀리 멀리 지나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의 순진한 질문이 들어오자 단단히 수리해둔 내 마음의 성벽에 금이 쩍 가기 시작했다. 하이데거가 말했던가. 어차피 우리는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라고. 내게 주어진, 예상도 못했던 2년여의 지역아동센터에서의 사회복무. 이것을 훌륭히 완수하리라 확신은 못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게는 해주어야 도리 아니겠나 싶었다. 나는 이 인연의 끈을 보다 세게 붙잡고 아이들과 발맞추어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 수천의 빛깔 : 오해에서 이해로

 마음먹은대로 줄기차게 실행에 옮겨 길이 나고 꽃이 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작심삼일이면 썩 괜찮은 성과라는 것이 내 평소의 소견이다. 삼일이 뭔가. 삼십 분도 계속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것이 보통사람의 속성이고 나 또한 보통사람 아닌가. 총총한 아이의 눈을 보며 다짐했던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자기 헌신성은 출근이 거듭될수록 어째 시뜻해졌다. 확실히 첫날에 비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고,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라면 첫날 충격적인 질문을 받은 이후 줄곧 녹색등 상태였다. 문제는 조화에 있었다. 아이들과의 앙상블을 이루기 어려웠다.

 제 시각에 센터 등원도 안 하고, 숙제도 안 하고, 학습하라고 했더니 문제집 귀퉁이나 찢고 있고. 게다가 그들의 달아나는 솜씨란 지진 해일조차도 맥을 못출 수준이었다. 아이들의 태도와 행동을 보고 이해와 납득이 안가는 데서 오는 답답함은 어느새, 또다시 나를 뚱한 가게 주인 모양으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단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그림 같은 점심, 나는 울적한 기분으로 한 단출한 카페에 들어가 홀로 앉았다. 유리창 너머 빗물에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 꽃잎들이 보였다. 저마다 다른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고운 빛깔과 매끈한 표면이라는 공통점만 빼면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문득, 이따금 추억하던 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한 구절이 다시금 입에서 솔솔 새어나왔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혹시 그간 내가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 희망 기준만 들이민 건 아닐까. 성품도, 기질도, 심지어는 식습관까지도 제각각인 아이들을 깎아놓은 알밤 진열하듯 했던게 아닐까. 그에 놀란 아이들이 방어적 차원에서 청개구리 소리를 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흰색과 분홍색 두 가지 만으로 ‘너 복숭아나무지? 내 그럴 줄 알았다.’와 같은 편견 그득한 태도로 일관해온 나였던 셈이다.

 센터로 돌아와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그간의 일들을 비교적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되짚어보았다. 빗속에서 보내온 꽃잎들의 메시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연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녹아든 시의 탁월함 덕분인가. 나 자신을 비우고 그 자리에 아이들을 채우려는 시도가 있었던 날, 센터의 웃음소리가 한층 더 선명해짐을 느꼈다. “선생님, 아이들을 그냥 있는 그로 봐 주세요. 지금 그대로를 보듬어주세요.” 근무지에서 꼭 선생님으로 불러주시는 - 학생, 청년, 회원님, 주임님……. 무수한 호칭 속에 지내왔건만 선생님이라 불리면 아직도 어색하지만 - 센터장님의 이야기. 그게 쉬운가 하고 시큰둥하게 들었던 위 이야기가 꿍 하고 마음의 밑동을 울려왔다.

나오며

 다시 시로 돌아가서.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문자 그대로 참 오래도 걸렸다. 복숭아나무 곁으로 가는 시인의 길만큼이나 내가 아이들에게 가는 길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도롱뇽 알 구하기도 여의치 않은 이 시에 아이들의 마음을 구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출근을 준비하며 거울 앞에 서서 마음을 비우자, 그래야 그 속에 아이들을 왜곡없이 채울 수 있다, 하고 수차례 다짐했다. 말하기보단 들어주고, 지시하기보단 공감해 주자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아이들을 공감하는데에는 매일 아침 묶는 구두끈처럼 바짝 조인 긴장감도 필요했다. 물론 앞서 나온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혹 예전의 오해와 편견으로 얼룩진 나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렇게 소금누룩을 열 번 정도 만들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나 자신, 이제는 아이들과의 경계선 없는 만남을 지속하고 있단 느낌이 든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이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근무(아이들과의 호흡의 장(場)인 복숭아나무 그늘, 아니, 이 지역아동센터에서의 일을 근무 두 단어로 표현하기에 께끔한 감은 있다.)하다니. 계획에도 없었고, 상상에도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며 아이들과 다시없을 하루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직분이 만들어진 취지에도 맞고 또한 순리라고 믿는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마음가짐에 큰 지침을 내려준 소중한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각. 돌계단, 첫 출근에 더할 나위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올랐던 그 계단에서 아이들의 경쾌한 발걸음이 들려온다. 그 발걸음에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로 나를 울고 웃게 해주려나. 훗날 내가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 지금과는 또 다른 무엇으로 살아갈 때, 이따금 이 발걸음 소리를 추억의 가방 속에서 꺼내보고 싶을 것이다.

백준영(해피엘지역아동센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0.9.21 월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그 날의 영광, 인천상륙작전
9월의 호국인물에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첩..
깜짝뉴스 더보기
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불면증’ 예방하려면?
현대인의 발병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질병인 ‘불면증&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