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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웰컴 투 효자4동’(입선)

Written by. 이종우   입력 : 2019-11-25 오후 1: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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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해외의 반응
 “So what will you be doing?” ‘그럼 무엇을 하게 되는 거야?’라고. 내 복무 사실을 밝혔을 때 주변해서 했던 말이다. 학생의 거의 절반이 복무를 하게 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 있는 내 학교에서는 징병으로 휴학하게 된 내가, 한적한 소도시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는 학생에게도, 교수님들에게도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육군이야? 해군이야?’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사회복무요원’이라고 답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이 제도에 다들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 표정을 뒤로 하고 무더운 여름날, 훈련소에 들어가며 복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소문이 잘못 전해져 옛 명칭의 약칭인 ‘공익’이 와전되어 내가 ‘공군’에 갔다고 생각한 중국인 친구들도 있었다는 걸 안 것은 나중이지만.

이심전심이 연민을 싹틔우다
 전주의 주민센터에서 복무를 시작하게 된 나는 곧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이 주민센터는, 관할지역에 꽤 많은 원룸단지를 끼고 있었고,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방문한다는 걸. 한국어가 아직 서투른 외국인들이 주민센터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 내가 미국의 관공서에서 겪은 어려움들을 겹쳐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회보장번호 (Social Security Number)를 받기 위해 방문한 미국의 관공서에서 겪은 경험은 나에게 있어, 내 나라인 한국의 주민센터를 방문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유학생으로서 미국에 갔었기에 비록 말은 통하였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른 법, 행정 체계, 제도, 외국이라는 압박감이 마음을 옥죄여 왔다. ‘말은 통했지만’ 보다는 ‘말만 통했다’라고 말하는 게 나을 정도로. 낯선 부서들의 이름과, 건물 밖에서 펄럭이는 성조기는 나에게 지금 나는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업무가 다 끝나 사회보장번호가 적혀있는 카드를 손에 쥐고 건물을 나와서 일행의 자동차에 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 경험으로 인해서 나는 주민센터에서 복무하면서 외국인 민원인들을 볼 때마다 미국의 관공서에서 쩔쩔매던 나를 겹쳐 보게 되었고, 이는 나로 하여금 ‘도와주자’, ‘외국인 거주자들도 전주, 나아가서 이 나라의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중 하나다’ 라는 생각을 갖고 외국인들을 도와주게 했다.

 연민의 싹은 도움의 줄기를 뻗다
 처음으로 도와주게 된 사람은 어느 중국인 아저씨였다. 민원실에 오시자마자 한국어가 서툴러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중국어로 우선 앉으시라고 말씀드렸다. 처음에 자신이 정말로 중국어를 들은 것이 맞는지 반신반의하시다가 몇 초 뒤 안심하고 웃으며 벤치에 앉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 그분의 차례가 되자 옆에서 거주지 이전 신고를 하나하나 도와드렸다. 민원 처리가 끝나자 원어민 같은 중국어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도와준 나에게 그 아저씨는 몇 번이나 쎼쎼(谢谢)를 말하며 악수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무력감을 느꼈었던 나를 겹쳐 보게 된 대상을 내 손으로 도와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뿌듯한 경험이었다. 이 뿌듯함을 느끼며 이를 되돌아볼 때, 나는 그 아저씨를 도와드리면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들에게는 명확한 지시사항이 외국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한국이라는 문화적 공동체 속에서 사회화되어 여러 맥락을 학습한 사람들이 쓴 서류의 지시사항들은 그 맥락이 부재하는 외부인들에게는 한없이 배제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성’과 ‘이름’ 칸마저도 채울 때 나에게 어떻게 기입해야 할지 다시 묻던 그 아저씨가 여지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나에게 행정의 포용성(inclusiveness)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내 특기를 살려서 적어도 이 주민센터에서라도 엄연한 이 동의 주민인 외국인들에게도 이곳이 열려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졌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우선 주민센터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겪는 불편이 어떤 것이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 계속 외국인들을 도와주면서 그것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알게 된 것은 바로 언어의 장벽은 민원실 입구가 아니라 그들이 사는 집 문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표준 계약서에 집주인이 임의로 볼펜으로 찍찍 그어 이름이나 날짜를 바꿔놓아 규정에 맞지 않게 된 계약서를 가지고 오거나, 행정구역에 변동이 있었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해 엉뚱한 민원처리 기관을 방문하거나, 또는 외국인으로서 아니면 갓 성인이 된 사람으로서 법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인한 실수로 임의로 실 거주자를 변경하는 등의 실수로 이 외국인들은, 어렵게 찾아온 주민 센터에서 허탕치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는 우연히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이 주민센터에 오게 되어 일일이 통역을 하는 표상적인 해결 방법보다는 나의 복무 기간이 끝나더라도, 내가 모르는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이 와도 도움이 지속될 수 있는 체계적인(Systemic)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2년 내로 이 주민센터를 떠난다는 것이 단편적인(piecemeal) 도움의 한계를 체감하게 되는 계기였다.

 체계로서 뿌리내리다
 한두 달 동안 주로 어떤 나라 사람들이 주민센터를 방문하는지 봤더니 근처의 학교에 유학하거나 교환교수로 오게 된 사람이 많아서 중국인과 베트남인들의 수가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카자흐스탄이 이었다. 이를 취합해서 외국인용 통합신고서를 중국어, 베트남어, 그리고 러시아어로 번역을 했다. 모르는 언어는 기존의 아는 언어들로 번역기를 사용해 결과가 일치할 때까지 다듬고 마지막으로 해당 모국어를 사용하는 친구들에게 검수를 받았다. 러시아 사람은 온 적이 없지만, 카자흐어보다 러시아어가 번역기를 사용했을 때 더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의 또 다른 공용어인 러시아어를 골랐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전에는 외국인이 올 경우 의사소통의 문제로 인해 15분 이상은 너끈히 걸려 대기하는 민원인 수가 금방 많아졌다면, 번역본 비치 후 외국인들의 거주지 변경 민원은 처리시간 5분 이내로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이로 인해 외국인, 특히 유학생들의 주소 이전이 잦은 신학기에도 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외국인 민원인들의 반응
 내가 처음 복무를 시작했을 때나, 다국어로 된 서류 작성 예제 및 안내를 뿌리내리게 했을 때나 외국인 민원인들이 내 도움이 필요했던 경우 직접 도와드리곤 했다. 내가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많은 외국인들이 대개는 주민센터를 찾아올 때, 마음 한 구석에 두려움을 묻히고 온다.

 그 두려움을 닦아 줄 때 나오는 반응들은 나로 하여금 도움을 주기로 한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하며, 내가 이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특히 생각지도 못했던 언어를 들었을 때 몇 초 정도 자각하지 못하다가 한껏 풀어진 얼굴로 반갑게 얘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가끔 거주지 변경 등 통합신고서를 사용하는 민원이 아닌 다른 일로 방문한 외국인 민원인들도 있었는데, 그 때에는 내가 바로 도와 드릴 기회가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주민센터에 온 방글라데시인 부부는 내가 영어로 안내를 시작하자 그제야 배시시 웃으며 자동차등록원부를 신청했던 것과, 일본인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일본어로 문화누리카드 재발급을 도와드렸을 때 처음에 자신이 일본어로 안내를 들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내가 일본어로 질문드린 걸 한국어로 답하곤 몇 초 뒤에 놀라셨던 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도움을 주다 보니 어느덧 나를 ‘주민 센터의 어느 직원’이 아닌, ‘나에게 다가와 도와준 사람’으로 마음에 남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 새 민원실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내 자리에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도 생겼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느 날 어느 베트남 학생이 내게 다가와 “형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던 것과 주민센터 외부에서 무거운 물품들을 옮기고 있을 때, 한 걸음에 달려와 날 도와주었던 전주학교에 다니는 유학생들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행동이 그들에게 주민센터가 갖는 심적 위치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켰다는 그 사실이 복무 중 제일 보람찼던 것 같다. 가장 낮은 권한을 갖고 있지만 나는 이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그 성취감이 마치 국적을 초월해서, 그냥 마땅히 이웃을 도와주는 것처럼 나의 행동이 그들에게 다가갔고 자연스레 그들의 도움이 나에게 왔던 것이다. 이웃 간의 정이요, 사랑이다. 그러고 보니 주민센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아이린(Irene)아파트다. 아이린은 중국어(爱邻)로도, 일본어(あいりん) 로도, 이웃사랑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종우(전주 완산구청 효자4동)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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