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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19-11-29 오전 9: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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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윤봉길(1908.6.21~ 1932.12.19) 의사를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1930년 3월 의사는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비장한 글을 남긴 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중국 상해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거행할 예정이다”라는 ‘상해 일일신문‘의 보도를 접하고 의거를 결심했다. 

 의거 3일 전인 1932년 4월 26일, 의거가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사를 대변한다는 점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백범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했다.

  의거 당일 1932년 4월 29일 홍구공원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하였고 경계가 삼엄한 가운데 단상 위에는 시라카와(白川) 대장과 해군 총사령관인 노무라(野村) 중장, 우에다(植田)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 상해총영사 무라이(村井) 등이 도열해 있었다.

 오전 11시 40분경 축하식 중 일본 국가 연주가 거의 끝날 무렵, 의사는 앞사람을 헤치고 나아가 단상 위로 수통형 폭탄을 던졌고,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은 사망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 등은 중상을 입었다.

 이후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감격해 하며,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다시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체포된 의사는 가혹한 고문 끝에 1932년 5월 25일 상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일본 오사카로 호송된 뒤 1932년 12월 19일 가나자와(金澤)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십자가 형틀에 매어 총살, 25세의 젊디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의사의 유해는 1946년에 조국에 봉환되어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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