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전 세계 각국이 기념하는 국제적인 기념일인 국제연합의 날(UN Day)을 기억하는 우리 국민들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6·25전쟁 이후 국제연합일을 중요한 국가기념일의 하나로 여겨 법정공휴일로 지정하고 1975년까지 대통령이 직접 기념사를 낭독할 정도로 기념식의 위상을 높였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UN이 막중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UN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평화를 유지하고 각 나라 사이의 우호를 다지며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인도적 문제에 대해 서로 협력하기 위해 창설된 기구다. 1945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합국 회의에서 옛 국제연맹의 정신을 계승하는 헌장이 조인되고 같은 해 10월 24일 UN이 창설됐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UN은 총회·안전보장이사회·경제사회이사회·신탁통치이사회·국제사법재판소·사무국 등 6개의 산하 기구와, 국제노동기구(ILO)·세계보건기구(WHO)·국제부흥개발은행(IBRD)·국제통화기금(IMF)·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16개의 전문 기구가 있다.

 우리에게 UN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우선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을 국제적으로 승인했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남북이 분단되어 각각 독자적인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 UN은 유엔한국위원단의 참관하에 총선거를 치룬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했다.

 뿐만 아니라 UN이 처음 평화유지군을 결성해 파견한 사례가 바로 6.25 전쟁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UN은 북한의 남침을 ‘국제 평화 파괴 행위’로 규정하고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적대 행위의 즉각 중지와 북한의 38선 이북으로의 즉시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6월 29일 ‘UN 회원국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 침공을 격퇴하고 이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미국, 캐나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영국, 프랑스, 그리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타이(태국), 터키,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 연방까지 총 16개 회원국이 195만여 명의 전투병력을, 38개국은 물자와 재정지원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이렇듯 유엔군의 한국전쟁 파병은 국제기구가 집단적으로 '평화의 파괴자'에 맞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계급을 다섯 단계나 낮춰 UN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도 있었다. 라울마그랭-베르느레(Raoul C. Magrin-Vernerey)는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무려 18번의 상처를 입었고 18번의 훈장을 받은 3성장군이었으나, 60세에 스스로 계급을 중령으로 낮추고 한국전쟁에 참전해 1951년 2월 미 육군 2사단 23연대에 배속되어 지평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는 출정을 앞두고 아내에게“아버지로서 태어날 자식에게 자유를 위해 UN군으로 싸웠다는 자랑스러움을 물려주고 싶소”라고 말했다.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다리를 전 그는 지휘봉대신 지팡이를 짚고 격전지 참호를 일일이 돌며 장병들을 격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군인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UN의 역할은 파병에만 그치지 않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UN은 통일한국의 건설과 민간구호를 목적으로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 1950년 10월)을 설치해 1951년부터 1956년까지 약 4억6천만 달러에 달하는 물자를 지원했고, 유엔한국재건단(UNKRA, 1950년 12월 조직)은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약 1억 2천만 달러 이상을 원조했다. 이 기구는 구호물자 조달과 함께 산업, 교통, 통신시설 및 주택, 의료, 교육시설 등의 재건과, 전쟁으로 인한 부상병과 민간환자의 치료 및 의사와 의료요원의 훈련·양성을 위해 국립의료원 건립을 지원하였으며,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아울러 UN군은 한국민간구호계획(CRIK)을 통해 전쟁중 긴급구호를 실시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UN은 복구사업과 경제재건을 위해 1953년부터 5개년 동안의 경제재건계획을 수립했다. 주요 내용은 국민총생산 40% 증가, 전력공급 3배 수준 확대, 주택재건 60만호 건설 등이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1948년 한국정부 수립 직후부터 유엔기구로서는 제일 먼저 한국 어린이들을 지원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난민들에게 식량제공, 전염병 예방접종, 피난지에 구호물자를 제공했다. 우리나라가 6.25전쟁 직전인 1950년 6월 14일에 가입한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1951년 6월 한국재건단(UNKRA)과 공동으로 교과서 인쇄공장(후일 '국정교과서주식회사')을 설립하였고, 외국어 교육을 위해 서울대학교에 한국외국어학원을 설치하였으며, 1954년에는 농촌지도자 양성을 위해 '신생활교육원'을 설립하고, 광주‧목포‧서울‧부산‧대전에 직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기술교육에도 힘을 쏟는 등 한국의 교육재건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약 127억 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받았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발판으로 우리는 전후복구와 경제재건에 박차를 가해 1995년 세계은행의 차관국에서 졸업하고 수혜대상국에서 개도국에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한국의 UN가입은 1991년에야 이루어졌다. 1949년과 ’56년,  ’57년 세 차례에 걸쳐 UN가입을 신청했으나 소련(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가, 1991년 9월17일 북한과 함께 국제연합의 161번째 회원국이 되어 지금은 UN 평화유지군 파병 등 경제규모에 상응하는 국제적 책임을 수행하고 있으며, 2006년 12월에는 유엔 8대 사무총장에 반기문 씨가 취임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지금 우리는 자유와 평화 등 많은 소중한 것들을 누리고 있다. 지구 총면적의 0.042%에 불과한 한반도, 지구 인구 약 76억 중 0.0065%인 5천만 명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오늘날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국제적으로 외교 지평을 넓히게 된 것은 UN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UN군의 희생은 어떤 의미로든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될 소중한 희생이었다. 오는 24일, 적어도 이날 하루 만큼은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어 준 UN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