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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칼럼] 한국전쟁의 양상을 바꾼 장진호전투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20-12-24 오전 8: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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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에 개봉해 1천4백만 명의 관객을 울린 영화 ‘국제시장’은 흥남철수작전을 배경으로 시작해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고단했던 일생을 보여준다. 흥남철수작전은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2주 간의 장진호전투 끝에,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 동안 압록강 유역 혜산진과 두만강 유역까지 진출했던 미 제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이 함경남도 흥남에서 배편으로 철수한 작전이다. 1950년 9월 15일 국군과 UN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실시하여 북한군의 배후를 차단한 뒤 낙동강 방어선을 넘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그 결과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고, 38선을 넘어 북진을 계속해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미 제10군단은 동부전선을 맡았고, 배속 받은 한국군 제1군단은 동해안을 따라 북진하고, 미 제1해병사단과 제7보병사단은 인천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원산상륙작전을 추진했으나, 한국군 제1군단이 10월 10일 파죽지세로 원산을 점령하면서 10월 29일 원산에 상륙한 미군은 압록강 유역인 혜산진과 두만강 유역까지 진출했고, 미 제1해병사단은 김일성 정부의 임시수도인 강계를 공격하기 위해 개마고원의 장진호(長津湖) 방면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북한의 지원 요청을 받은 중국공산당 정부가 1950년 10월 19일 26만 명의 병력을 1차로 압록강 너머로 파병하고,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을 창설해 북한군과 연합사령부를 구성하고 그날부터 전투에 참전했다.

 맥아더 사령부는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해 11월 24일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 총 공격명령을 내렸다. 이른바 「크리스마스 공세」였다. 그러나 11월 11일 국경을 넘어 한반도로 건너온 중공군 제9병단 소속의 3개 군단(7개 사단) 12만 병력은 산지를 따라 은밀히 이동해 11월 27일 밤부터 인해전술로 장진호 일대의 미군을 완전 포위하고 전면 공격을 가해, 미 10군단 해병1사단 병력 12,000명은 전멸될 위기에 빠졌다. 맥아더 총사령관은 11월 30일 철수를 결정했고, 미 10군단장 알몬드 중장은 중공군에 포위된 미 해병1사단 병력을 구출해 내고, 미군과 한국군 10만 명의 병력과 수십 만 톤의 물자를 배편으로 철수시키기 위해 함경남도 흥남부두로 집결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미 제1해병사단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 3만여 명은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추위를 뚫고 함흥으로 철수하는 작전에 돌입한다.

 중공군에 포위된 미 해병1사단의 섬멸을 막기 위해 미 육군 7사단 31보병연대가 시간을 벌었지만 이 과정에서 연대장 앨런 맥클레인 대령이 숨지고 장교단만 90% 이상 전사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또한 장진호 우측에 주둔하던 페이스 특수임무부대는 3천여 명의 부대원 가운데 385명만이 부상을 입지 않은 상태로 중간 목적지인 하갈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진호전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을 비롯한 유엔군은 1,029명이 전사하고, 4,582명 부상, 4,894명 실종, 비전투 손실 7,338명 등 17,843명의 손실을 입었다. 부상자 1/3은 동상 환자였다. 이러한 피해는 미군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어서 당시 언론들은 장진호 전투를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이 겪은 최악의 패전으로 평가했다. 중공군의 피해는 더욱 심했다. 전투로 인한 사상자가 19,202명에 이르렀고, 4천명의 동사자와 28,954명의 동상환자 등 참전자의 절반에 가까운 약 52,156명의 큰 손실을 입었다. 이 전투로 인해 중공군 12만 명의 남하는 2주 간 늦어지게 됐다.

 미 제1해병사단을 비롯한 유엔군과 국군은 혹한과 눈보라를 뚫고 12월11일 흥남에 도착했다. 이후 15일부터 24일까지 193척의 함정이 사람과 물자를 실었다. 흥남 앞바다에서는 미주리호를 비롯한 13척의 미 항공모함이 중공군 진지와 집결지를 향해 함포사격을 했다. 함재기들은 하늘에서 중공군에게 폭격을 퍼부었으며, 흥남 시가지에 늘어선 곡사포는 북쪽과 서쪽을 향해 쉴새없이 불을 뿜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미 해병 1사단에 이어 미 10군단 본부, 국군 1군단 순으로 군인들이 승선했다. 유엔군과 국군을 따라 피난민도 38선 이남 지역으로 내려왔다. 피난민 구출작전은 당시 미 10군단 알몬드 장군의 민사부 고문으로 흥남부두에 와 있던 한국인 의사 현봉학 박사와 1군단장 김백일 장군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일부터 민간인들의 승선이 시작됐는데, 1,000명이 타도록 설계된 상륙정들은 5,000명까지 승선시켰다. 특히, 군수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SS Meredith Victory)의 선장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1914.1.14.∼2001.10.14.)는 군수물자를 모두 버리고 60명 정원(이미 47명의 승무원 탑승 중)의 배에 1만4천 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3일 간의 항해 끝에 성탄절인 12월25일 경상남도 거제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항해 중 배 안에서 5명의 생명까지 태어난 이 일화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단일 선박으로 '가장 많은 인원을 구조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부모님이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거제도로 피난했다고 밝힌 바 있다. 흥남철수작전으로 미 10군단과 한국군 병력 105,000명, 피란민 10만여 명이 북한지역을 탈출했다. 차량 1만7,500대, 연료 2만9,000드럼, 탄약 9,000여 톤 등 35만 톤의 장비도 수송했다.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은 한국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다. 미 10군단은 병력과 화력을 보존함으로써 후일 중공군의 대공세를 막아 내는 주력부대가 됐다. 중공군 제9병단은 미 해병 1사단의 포위망 탈출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어 3개월간 작전에 투입되지 못했고, 이로써 동부전선에서 미군을 섬멸한 뒤 곧바로 서부전선의 미 8군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중공군의 계획은 불발됐다.

 장진호전투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적 뿐만 아니라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미국의 종군 사진기자 데이비드 던컨은 흥남으로 퇴각하는 미 제1해병사단의 한 병사에게 “만약 내가 하나님이라면, 당신은 크리스마스에 무슨 선물을 받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병사는 동상이 걸린 손으로 꽁꽁 언 통조림통 속의 콩 한 알을 꺼내기 위해 숟가락으로 콩 주위의 얼음을 깨뜨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던 병사는 모기소리 만한 목소리로 “내게 내일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던컨 기자는 당시 상황을“지옥을 들여다 본 병사들의 눈을 나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도, 증오의 표정도 없었다. 살아남겠다는 일념에서 묵묵히 반격에 나설 뿐이다.”라고 표현했다. 장진호전투에 참전했던 한 미군 노병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추위 속에서 독일군에 포위됐던 아르덴대공습(벌지전투) 보다도 더 혹독했고 절망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십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이었던 장진호전투 참전자들은 지금 모두 90대를 넘겼고 그 수는 해마다 급격히 줄고 있다. 70년 전 뼛속까지 스며드는 머나 먼 타국의 칼바람 속에서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했던 미군 병사의 간절함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듯, 지금 우리에게는 남남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2020년과 함께 시작한 코로나19가 해가 다 가도록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그 여파로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 지난한 바이러스와의 싸움도 끝이 날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 전쟁이란 지옥을 겪고도 살아 남아 이제는 하나 둘 역사 속으로 묻혀가는 유엔군과 국군 참전용사들이 후손들에게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하며 한 해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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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해방직후...로스께 군인들이...북한 사람들의 손목-시계를 빼엇어~ 한팔뚝에 시계를 한 10개씩 차고 다녀다고~ 합디다~!!ㅎㅎ

    2020-12-24 오후 1: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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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해방직후~ 저희 할머님도...평양에서의 김일성 군중집회에 참여하셨엇는데... 당시에 사람들이~~?? "저건 가짜 김일성장군"이라고들 수군~수군들 햇다고 하더군요...!!

    2020-12-24 오후 1:27:41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대개~ 우파-성향들은... 38선 들어서기전에 이미~ 남하햇고~!!ㅎ (백장군님도, 저희가족도... 그전에 남하해오셨고~!!ㅎ) @ 근데~~ 그후 1.4후퇴이후에 온 사람들중엔...좌파성향들이 많다고들 햇죠~!!ㅎ

    2020-12-24 오후 12:52:34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공산당이 싫어서...똑같은 배를 탓엇으나...좌/우로 갈리는 현실은~???ㅎ

    2020-12-24 오후 12:46:09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이 당시에 저배로 피난 나오신 이후...목회자가 되신분도 잇지요~!! 항상~ 철저한 반공-설교로 유명하셨던 분~!! vs. @ 이 당시에 저배로 피난온후...철저한 용공-민족주의자도 나오고...!!ㅎ 영혼은 좌/우가 정말 다른것 같습니다~!!

    2020-12-24 오후 12:40:25
    찬성0반대0
1
    2021.4.21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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