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㉛ 연희104고지 전적비
우리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순국하신 선조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로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104고지 전적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조들을 만나기 위해 연희동을 방문했다.
연세대학교를 지나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단지의 골목 마지막 부근 작은 공원에는 지난 1950년 9월 21일부터 23일까지의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전적비가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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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고지 전적비. 1982년 9월 28일 국군 해병대 사령부는 104고지 탈환 작전 중 전사한 해병대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연희동 104고지 인근에 전적비를 건립했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갔던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서울 탈환작전을 시작했다. 이 당시 북한군은 서울사수의 최후방어선으로 연희동 104고지 일대를 요새화하여 강력 방어하고 있었다. 서울탈환의 제일선 부대인 한국 해병 제1대대는 9월 21일 미 해병 제5연대와 함께 서울 북서쪽 외곽에 진출했다. 이들은 수색방면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도로와 철로를 따라 서울탈환작전을 전개했다. 한국해병 제1대대는 서울 도심으로 진출하기 위한 첫 번째 공격작전으로 서울 모래내의 104고지를 점령하기로 했다. 이곳은 전면에 하천과 개활지가 있어 방어하는 북한군에게 지형적으로 유리한 곳이었다. 대대는 제3중대를 주공으로 9월 21일 오후 2시경 104고지를 공격하여 치열한 백병전 끝에 오후 6시 30분경 고지를 완전히 점령했다. 대대는 22일 새벽4시에 120mm 박격포의 지원을 받은 약 600여명으로 추산되는 북한군에게 역습을 받았으나 3시간 동안의 전투 끝에 이들을 격퇴하여 고지를 지켜냈다. 3일간의 혈전으로 1개 중대 중 26명만이 생존한 치열한 접전이었다. 이 고지의 점령으로 한미 해병대는 서울 시내로 돌진하는 매우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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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희생끝에 지켜낸 104고지 탈환이 있었기에 9월 28일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었다. 연희104고지 전적비를 방문하면 서울탈환의 결정적인 기여를 한 104고지 탈환작전의 상세한 내용과 참전군인 등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매년 9월 23에는 해병대 전우회를 중심으로 참전용사들이 함께 모여 서울수복기념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평소에는 시민들이 연희산 내 산책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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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장에서 만난 연희동 주민 남길안 씨(52)는 “연희동에 거주하며 운동을 하기 위해 자주 방문하면서 104고지에 대해 알게 됐다”면서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을 목숨 바쳐 지키신 참전용사들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마음을 늘 가다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전용사들에 대한 복지강화와 지원이 확대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연희104고지를 오가며 바라보는 서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950년, 이곳 104고지에서 총성과 아비규환이 일어난 일주일 후 중앙청에는 태극기가 걸렸다. 그렇게 우리의 역사는 흐르고 있다. 6.25전쟁의 처절한 상흔을 딛고 일어나 번영의 오늘을 일구고 희망의 내일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70년 전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을 기리며 숙연한 마음으로 묵념했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박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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