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업경영 노하우로 ‘1000만 예비역 결사체’ 재정난 극복할 것”
<이 자료는 문화일보 2022년 07월 15일자 [인물] M인터뷰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70년 역사상 비(非)장성 출신으로 회장에 처음 당선된 신상태(71) 제37대 회장은 향군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예비역 대위 출신인 신 회장은 지난 4월 13일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3번 도전 끝에 70.19%의 압도적 지지로 예비역 대장 출신인 김진호 회장의 연임을 막고 당선됐다. 신 회장은 “1000만 회원의 세계 최대 안보단체인 향군 수장으로 당선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출신·계급·나이·성별 등 모든 것을 초월해 ‘원팀 향군’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신 회장은 취임 3개월째인 13일 서울 서초구 향군회관 집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올해 창설 70주년을 맞아 창설 이래 처음으로 전국 시·군·구와 해외지회, 읍·면·동회 회장 등 1만여 명의 회원을 총결집시켜 향군의 재정위기,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화합의 마당으로 만들겠다”며 개혁 청사진을 제시했다.
―취임 3개월째를 맞았습니다.
“제 평생 이렇게 일이 많았던 것은 이번이 2번째입니다. 30대 초반에 밑천도 없이 사업에 뛰어들어 젊은 시절을 정신없이 보냈는데, 70줄에 향군회장을 맡고부터 그때만큼 바빠졌습니다. 3개월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향군 회원 모두 뼈를 깎는 아픔을 각오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비장성’ 출신으로는 첫 향군회장인데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향군에 대한 회원들의 ‘변화’ 의지가 표출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70년 향군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예비역 대장·중장이 대다수였던 역대 회장과 달리 저는 대위로 전역했습니다. 생존 위기의 향군을 위해 강도 높은 개혁으로 재정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안보 단체인 향군의 역량을 극대화해 1000만 향군의 자부심을 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영관급 회장도 없었던 상황에서 위관급 회장은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됩니다.
“기본적으로 제 이전 21분의 회장님은 모두 군 장성이란 점 외에 향군회장을 맡기 위해 향군에 들어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울시지부장, 본부 부회장 등을 오래 맡은 뒤 회장이 됐습니다. 저만큼 향군에서 오래 활동하고 애정이 많은 회장은 드물 것입니다. 저는 10년 전에 이미 향군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향군은 앞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서 재정을 충당해야 하는데, 군에서 장성을 지낸 전직 회장님들은 모두 유능하고 훌륭한 분이지만 돈 버는 일만큼은 구멍가게도 운영해 본 적 없는 분이 대부분이었지요. 과거 군 출신 대통령들이 여러 네트워크로 향군에 도움을 줬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는 등 여러 이유로 오늘날 향군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됐습니다.”
―향군회장에 3번이나 출마할 정도로 큰 애착을 보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변에 회사 경영도 잘되는데, 여행 다니면서 여생을 즐기면 되지 빚더미에 앉은 향군으로 가서 뭔 고생이냐며 말리는 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향군에서 오랫동안 봉사하면서 조직에 대한 애정도 커졌고, 향군은 어떤 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국가자산’이니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제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특히 지금 이 시대의 안보 상황, 향군이 처한 정체성의 혼란과 재정 위기를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회장 선거에 출마했고, 취임 일성으로 ‘변화와 혁신’을 제시했습니다. 향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 버리고, ‘1000만 예비역 결사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이라는 목표가 필요합니다.”
―지금도 5개 기업체를 운영하는 경영인이신데 경영에 차질은 없습니까.
“아들이 회사의 빈 공간을 메워 주고 있습니다. 저도 아침에 일찍 회사로 가서 교통정리를 해준 뒤 향군에 출근하고, 퇴근하면 회사 마무리 일을 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사회에 나와서 많은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고 사업(5개 중소기업체 운영)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초적 동력은 군에서 익힌 인내심과 군인정신에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부모 의존적이고 독립심이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군대 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과 리더십은 사회 진출에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며, 언제나 경쟁 속에서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 생활 속에서 도약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합니다.”
―국가 안보가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가 큽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향군의 운영 방향이 궁금합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이 고도화되면서, 우리나라의 정권 교체기를 틈타 안보 불안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국민과 군은 반미 감정을 경계하며 국가안보의 기본 축인 한·미 동맹을 더욱 튼튼하게 강화하고 확고한 군사대비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올해 창설 70주년을 맞는 1000만 향군 회원은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각오로 미래 70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안보에 관련된 사안만큼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대로 얘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향군에 어떤 측면이 부족했다고 보십니까.
“향군이 가장 미흡했던 부분은 향군의 브랜드가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안보에 관해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적극적으로 향군 고유의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 어민 강제북송, 서해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 관련 월북조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론을 통해 북송 당시 사진을 봤습니다. 북으로 가지 않겠다고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저항하는 사람들,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절규를 그대로 무시한 채 눈을 가리고 북한에 넘겨줬다는 건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고 여야와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향군의 문제점 중 하나로 재정을 지적하셨는데 이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입니까.
“세계적인 고금리 추세 속에서 재정위기 극복과 향군 창설 70주년 준비 등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아직 출발선에 있지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향군의 재정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각 사업체를 대상으로 긴급 회계감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항아리의 물이 새 나가는 구멍부터 틀어막은 다음 다시 물을 채울 방안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또 향군의 전 임원과 사장이 연봉의 10%를 자진 삭감하며 재정난 극복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습니다. 향군의 재정 회복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향군의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 슬림화 등 개혁을 단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산하 기업의 손실을 방지하고, 수익 증대 대안을 제시하고, 종합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본부를 슬림화하고 비용을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를 위한 재정 위기 해소 방안을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문제는 금리 인상입니다. 금리 때문에 발생하는 연간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의 60%를 차지하는 이자 부담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10년 전 향군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제안을 하셨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송파구 잠실 향군타워를 건축할 때 저는 쌍둥이 건물을 세울 것을 제안했지만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부지 5000여 평의 절반을 판 돈으로 향군타워를 세웠지요. 제 제안을 수용했다면 향군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금리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향군타워를 2개 세웠으면 어느 정도 지금의 재정위기 해소가 가능했을 겁니다.”
―회장 취임사에서 개혁 청사진을 발표하셨는데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제가 가장 중점을 둔 분야는 향군의 정체성과 관련된, 강력한 한·미 동맹 기조하의 튼튼한 안보지원입니다. 안보의 기반은 굳건한 한·미 동맹이지요. 미국은 6·25 전쟁에서 3만7000여 명의 자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 우리나라를 지키는 데 동참해 준 나라 아닙니까? 나라가 없으면 향군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하게 본 것은 전문 경영인 체제 개편에 의한 성과위주 경영추구입니다. 향군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 체제입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의 경영실패로 재정상태가 어려워졌습니다. 안보활동, 친목활동, 참전용사지원활동, 국제활동 등 예산 소요가 많습니다. 최대한의 긴축과 구조조정을 하고, 새로운 사업을 개발할 것입니다. 마지막은 정의롭고 화합된 향군 문화 창출입니다. 단결하면 못할 일이 없고, 분열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원팀 향군을 만들어 나가는 데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오는 10월 향군 창설 70주년 행사의 준비 상황이 궁금합니다.
“향군이 1952년에 창설됐으니 올해 칠순을 맞네요. 창설 70주년 행사의 콘셉트는 화합된 향군의 조직력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창설 이래 처음으로 전국의 13개 시·도, 222개 시·군·구, 22개 해외지회, 3052개 읍·면·동회 남녀 회장 등 1만여 명의 향군 회원을 결집하려고 합니다. 향군 창설 70주년 행사에서 새로운 향군 70년의 비전을 발표하고, 각오를 다지며 위상을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국민께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십시오.
“향군은 1000만 예비역들의 결사체입니다. 과거 국가안보의 주역들이고, 미래 국가안보의 기둥들이지요. 이 소중한 국가 자산을 사랑으로 키우고 보존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회장인 제가 솔선수범하겠습니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향군이 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미국 재향군인회처럼 회장이 사심 없이 봉사하고, 임기를 마치고 나갈 때는 국가에 봉사했다는 자부심 하나 안고 박수 받고 떠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30대에 맨주먹으로 사업 뛰어들어… 안보 칼럼니스트로도 활약>
신상태 제37대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회장은 향군 70년 역사상 첫 ‘비(非)장성 출신’이다. 예비역 육군 대위인 신 회장은 대의원 359명 가운데 252표를 얻으며 4성 장군을 꺾어 화제를 모았다. 신 회장은 30대에 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 숱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자수성가형 전문경영인이다. 지금은 한국 PLA, 상원무역과 송현산업 등 5개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육군3사관학교 6기생인 신 회장은 포병장교로 군 생활을 하고 대위 때 일찍 사회로 나왔다. 전역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건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부동산학 석사 및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돈이 없어 못한 공부에 한이 맺혔다”는 신 회장의 좌우명은 지재유경(志在有逕).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이 좌우명은 사업체 운영 중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비롯한 수차례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몸에 밴 철학이다. 또 신 회장은 “매 순간 신뢰가 없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신념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향군 이사와 서울시재향군인회 제27·28대 회장, 향군 제34·35대 부회장 등을 지냈다. 그는 투철한 안보관을 갖고 국방 현안에 대해 글을 쓰는 안보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재정난을 겪고 있는 향군에서 각종 혁신과 개혁에 나설 구원투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경영학 박사 △시흥유통관리 대표 △현 송현산업 회장, 천우기업 회장, 상원무역 회장, 한국PLA 대표이사, 에프디인더스트리 대표 △육군3사관학교 총동문회장 △사단법인 충효예 실천운동본부 부총재 △서울시재향군인회장 △서울시 안보단체협의회 회장 △재단법인 3사발전기금 이사장△대한민국재향군인회 부회장 △국민훈장 목련장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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