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㊾ 부산 광복기념관
부산시 서구에 위치한 부산광복기념관은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상과 그에 항거한 부산지역의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적 유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기념관은 우리 선인들의 숭고한 민족정신과 광복 활동을 길이 선양 전승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의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기 위해 시민의 뜻을 모아 2000년 8월 15일 개관했다.
기념관 1층에 들어서면 부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6인을 만날 수 있다.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장건상 선생, 백산상회를 이끌며 독립운동 자금조달에 힘쓴 안희제 선생, 의열단 단원으로 부산경찰서를 폭파한 안재혁 의사, 여성의 몸으로 중국에서 무장항일운동을 전개한 백차정 의사, 승려의 신분으로 범어사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김법린 선생, 한국광복군의 군가인 ‘독립군가’ 등 음악활동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한형석 선생 등이 그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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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가면 부산지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1907년 3월 10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국채보상운동’ 관련 자료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제가 우리나라에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빌려준 차관 1300만 원을 상환하여 경제적 독립을 이룩하고자 한 것으로, 뒷날 의병 전쟁과 함께 독립운동 발전에 기초적 원동력이 되었다.
부산에서도 <좌천리 감선의연부인회>, <영도 국채 보상 부인회>가 조직되었으며 동래상업회의소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다. 상공회의소와 같은 상인단체에서부터 학교, 신문사, 승려, 주민까지 많은 사람들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며 독립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부산지역의 3·1 독립운동은 학생층과 부르주아 층의 주도로 노동자, 상인 등 광범위한 계층의 참여하에 이루어졌다. 부산의 3·1 독립운동에 참가한 인원과 시위 횟수는 전국에서 경기도와 황해도 다음으로 높았으며, 사상자와 관공서 파괴 등이 가장 많았던 것은 근대 이후 일제의 침탈이 가장 극심했던 관계로 항일정신이 다른 어떤 지방보다도 높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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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물들 속에는 일신여학교의 3·1독립운동 모형과 부산항일학생운동(일명 노다이사건) 모형이 있다.
일신여학교의 3·1독립운동은 1910년 일제 강압에 의해 주권을 빼앗긴 역사적 배경 속에서 교육받고 자란 일신여학교 소녀들이 부산상업학교 등과 연락을 취하고 일신여학교 교사들과 규합해 일으킨 독림운동으로, 부산, 경남 3·1독립운동의 효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상 그 의의가 높다.
노다이사건은 1940년 경남학도 전력 증강 국방경기대회에서 일본학교를 우승시키기 위해 민족 차별적 심판을 한데 대한 불만이 계기가 된 사건이다. 부산학교 학생들은 민족적 차별에 울분과 의분을 참지 못하여, 폐회식 마지막 식순인 일본 국기 하강식 때 일본 국가 대신 애국가와 아리랑을 불렀고, “노다이 죽여라!.” “왜놈 죽여라!”라고 절규했다. 노다이사건은 불과 1일간의 항일 투쟁이었으나 엄중한 일제의 보도 통제 속에서도 우리 학생들의 민족정기는 전국에 널리 메아리쳐 갔다.
부산에서 전개되었던 독립운동을 살펴보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애국, 애족정신과 나라사랑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설치한 ‘부산 독립운동가 위패봉안소’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는 순국선열 43위, 애국지사 413위 등 총 456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처럼 부산광복기념관은 부산의 독립운동 역사를 모두 살펴볼 수 있다. 박재혁 의사의 부산 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사건을 보도한 부산일보 호외신문, 안중근 의사 공판 속기록 번역서, 친일 경찰에 의한 반민법 위반 사건에 관한 증인 소환장 등 역사 교과서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사건들의 기록물이 실물과 복제물로 전시되어 있어 학생들이 역사의식과 애국심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광복은 光(빛 광), 復(회복할 복)으로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았음을 뜻한다. 학생, 부녀자, 농민 모두 성별, 연령, 나이 구분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 하나로, 대한민국의 빛을 되찾기 위해, 광복을 위해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현재 우리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숭고한 헌신 덕분에 자주독립국을 선언하고 세계 경제 10위국으로 고속 성장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이었다. 우리가 주연 배우로 세계 역사의 무대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라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나의 소원 중 한 구절을 떠올리며 지금 우리의 성장 뒤 누구보다 광복을 염원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생각해 본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신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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