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55) 이름모를 자유전사의 비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 입구를 지나 언덕을 조금만 오르면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를 찾을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여 수도 서울의 최후방어선인 미아리고개를 돌파하고 창경궁 앞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는 1천여명에 달하는 일반환자와 부상자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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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내 의사와 간호사들은 전세가 악화되어 북한군의 서울 함락이 목전에 있는 상황에서도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오직 치료에만 전념했다.
6월 28일 새벽, 국군 경비소대가 병원 주위를 철통같이 방어하며 완강히 저항하자 북한군은 1개 대대 병력을 투입했고, 당시 부대를 지휘했던 조용일 소령과 소대장 남 소위, 선임하사였던 민 하사를 비롯해 소대원 전원이 비가 세워져 있는 이곳의 뒷산에서 결사항전했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조용일 소령과 소대장 남 소위가 전사하고 선임하사인 민 하사와 소대원 전원도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이곳 동산이 함락되자 북한군은 병원에 난입하여 입원한 국군 부상 장병들과 병원에 입원한 일반 환자 등 9백여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등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현재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당시 전사자들의 이름과 나이, 전사자 수 등에 대해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한다.
2022년 12월 현재, 당시의 처참했던 역사 현장에 서서 다시금 자유의 존귀함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시민이 맨처음 울부짖은 소리 있었노라
..(중략).. 겨레여 다시는 이땅에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게 하라’.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는 안보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호국을 위해 힘쓰고 있는 국군장병의 노고를 기억해야 한다. 또한 선배 용사님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희생·헌신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그에 따른 보훈도 필히 챙겨야 할 것이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설날·현충일·6월 28일·추석·순국선열의 날에 추모제가 열린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헌신한 호국영령과 자신의 목숨보다 환자들의 치료를 우선시했던 당시 의료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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