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32) 뉴질랜드 전투기념비
헝가리 사람 우르반이 개발한 대포가 없었다면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할 수 있었을까? 나폴레옹도 포병 예찬론자였고 스탈린은 “포병은 현대전의 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포병의 위력은 전시 사상자 발생 규모와 전장의 주도권 장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6.25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 뉴질랜드가 파병한 포병부대의 활약은 지금까지도 가평지역의 전설로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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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4월 22일, 중공군의 춘계 1차 공세가 시작됐다. 당시 영국군 제27여단은 자체 포병부대가 없어 미군 포병부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때 뉴질랜드 제16 야전포병연대가 배속되면서 제27여단은 효과적인 화력지원을 받게 되었다. 뉴질랜드가 참여한 대표적인 전투 중 하나가 가평전투다.
중공군이 사창리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의 방어선을 뚫고 남하해오자 영연방 제27여단은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가평의 북면 일대에 방어선을 편성했다. 중공군이 가평을 점령해서 서울과 춘천을 잇는 국도를 따라 남하해오면 서부전선의 유엔군이 측면에서 협공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군 제16야전 포병연대는은 이 지역의 방어를 위해 영국의 미들섹스연대 보병대대, 캐나다 보병대대, 한국군 제6사단에 대한 화력지원으로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1만여 발을 사격하여 중공군에게 막대한 인명피해를 주었다. 이로써 가평전투는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중부전선의 유엔사령부가 돌파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후 뉴질랜드군은 이후 마량산 전투, 후크고지 전투, 제임스타운선 방어 작전 등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뉴질랜드는 포병 이외에도 해군 병력을 보내 유엔작전에 기여했다. 극동함대에 배속된 프리깃함 2척(Pukaki, Tutira)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제7기동함대에 편성되어 상륙작전에 투입된 대형 함정들을 엄호하는 등 다양한 작전을 수행했다. 뉴질랜드는 6·25전쟁에 연인원 5,144명이 참전하여 전사 41명, 부상 111명의 손실을 입었다. 북한군의 포로가 된 사람은 1명이었다.
뉴질랜드 전투기념비는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북배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호주 전투 기념비와 마주 보고 서 있다. 뉴질랜드군의 참전과 가평전투의 공적을 기념해 1963년 4월 24일 유엔한국참전국협회와 가평군민이 북배산 입구에 건립했다가 기념비가 노후되자 가평군은 1988년 9월 23일 재건립했다. 커다란 자연석의 중앙에 참전을 기념하는 동판이 있고, 이 동판에는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은고사리잎과 “유엔 헌장의 숭고한 원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복무한 모든 뉴질랜드 용사들의 공헌을 기념한다.(1950-1958)”는 내용의 비문이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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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수교 이전부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온 우방국이었다. 뉴질랜드군이 참전 과정에서 보여준 용맹성과 자유수호 의지는 우리나라의 존립에 원동력이 되었다. 정갈한 초록잎들 사이에 위치한 전투기념비를 보고 있자니 청정지역 뉴질랜드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들이 6.25전쟁에서 보여준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냈다. 그들을 기억하고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에 감사하며 미래지향적인 안전한 나라로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청년들이 가평지역에 와서 가평전투와 영연방 국가들의 활약을 기억하고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konasnet)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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