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30)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기념비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보통 ‘베네룩스 3국’으로 통칭되며 작지만 강하고 부유한 유럽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제국의 이합집산과 1, 2차 세계대전에 휘둘리며 천신만고 끝에 오늘날의 영광을 가꾼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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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작은 중립국을 표방하던 두 나라는 양차대전으로 국방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6.25전쟁에 파병은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유엔과 미국이 참전요청을 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양국은 협의를 통해 1950년 7월 22일 지원병을 모집하고 통합된 대대를 편성해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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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벨기에군 700명, 룩셈부르크군 48명의 통합부대인 ‘제1벨기에 대대’를 편성해 1951년 1월 31일 부산에 도착했다.
세계 최소국가의 하나인 룩셈부르크는 1개 소대 병력을 벨기에군에 포함시켜 유엔 참전국 중 가장 작은 규모였으나, 인구비례로 따진다면 자유우방 참전국 중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군대를 보낸 셈이 된다.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미군 제3사단에 배속되어 임진강 북쪽 금굴산 전투(1951.4.22.~25.)에서 중공군 공세를 2일에 걸쳐 저지하여 영국군이 철수로를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철원 학당리 전투(1951.10.11.~13.) 등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또한 ‘임진’, ‘학당리’에 이은 ‘잣골전투’는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에서 거둔 가장 값진 승전으로 기억되고 있다.
참전 기간 동안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총 3,598명의 인원을 한국으로 보냈고 1개 보병대대 규모의 병력인원은 600~900명으로 유지됐다.
이들은 여러 전투와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101명이 전사하고 349명이 부상당하는 등 치열한 전투 가운데 자신들의 전투력과 헌신을 입증했다. 벨기에·룩셈부르크대대는 휴전 후인 1955년 6월에 철수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경기도 동두천시에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 참전기념비를 세워 전공을 기리고 있다.
기념비는 동두천시 소요산 역 건너편에 있으며 모형은 곡선으로 처리한 철근 콘크리트 기둥 3개를 하부로부터 상층으로 모아지는 형상으로 세우고, 정면으로 향한 기둥의 벽면에는 태양을 의미하는 원형 철재 조형물을 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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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에는 “자유와 평화의 신념으로 공산군들과 싸우던 벨기에, 룩셈부르크의 용사들! 고귀한 피를 흘린 448명의 전사상자들의 이름 위에 하느님의 축복이 계실 것이요! 우리는 그들의 업적을 찬양하며 여기에 비를 세운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돌에 새겨진 이러한 비문 뿐이지만, 참전국의 전투기념비 앞에 설 때마다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기여를 되새기며 세계평화와 자유수호에 대한 우리 모두의 공통된 책임을 되새기게 된다.
너무 큰 개념이라 생각했던 평화, 자유, 전쟁 이런 것들이 사실은 우리 주변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깨닫는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편안한 일상에서 참전용사들의 공헌에 대한 존중과 기억은 계속 이어가야 한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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