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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83) 태극단 반공 유적지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양혜린   입력 : 2024-12-18 오전 10: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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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단 반공 유적지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덕이동에 위치해 있다.

 ▲ 태극단 반공 유적지 전경 ⓒkonas.net

 

태극단 묘역은 1957년 9월 파주 지역에 가매장되어 있던 45위의 유해를 일산구 덕이동 현재 위치로 합동 이장한 것이다.

비의 모형은 일반적인 묘비형태이며 “조국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 쓰러진 젊은이들 45위 이곳에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다.

 ▲ 태극단 반공 유적지 비문 ⓒkonas.net

 

태극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집단의 불법남침으로 고양, 파주지역이 적 수중에 있을 때 경의선 열차 통학생을 주축으로 한 240여명이 ‘태극단’이라는 반공지하결사대를 조직하여 애국청년들과 반공투쟁을 하였다.  1957년 9월 20일 경 생존단원들이 그 당시 투쟁하다 체포되어 세 곳에서 무참히 학살된 故안영근 외 44명의 영령을 이곳에 모셨고, 1961년 8월 정부에서 반공유적지 제1호로 지정하였다. 그 후 한국일보사에서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의 휘호를 받아 비를 건립함으로써 그 빛나고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영령들을 위로하게 되었다. 지금은 당시 북파 공작원으로 참전한 단원 5위를 포함하여 태극단 유공자 등 54위가 모셔져 있다.

 ▲ 태극단 반공 유적지 비문과 태극단 묘역 ⓒkonas.net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서울수복때까지 3개월간에 걸쳐 태극단의 활동은 적 치하에서 적의 보급로 차단, 의용군 강제소집 방해, 삐라살포, 격문부착, 애국인사구출 등 저항활동으로 북괴군의 후방을 교란시켰으며 1950년 12월 8일, 10여명의 단원은 국방부 정훈국에 파견되었으며 40명의 단원은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 8정보 연락장교단(정보학교)에 입대하여 특수무장훈련을 받고 참전하여 특수임무수행을 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렇게 태극단은 6ㆍ25전쟁을 맞아 애국청년 240명은 태극단을 조직해 서울 수복에 지대한 공을 세웠으며 1ㆍ4후퇴 이후에는 국방부 정훈국 등에 편입되 실전에서 활약하였다.

고양시현충공원 내에 잘 조성이 되어 있으니 주변을 둘러보며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에게 고개숙여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면 좋겠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양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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