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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기념] (4) 파리 프랑스군 대대 참전기념비

Written by. 인턴기자 김민   입력 : 2025-05-26 오후 3: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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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에게 “파리”라고 하면 대부분 에펠탑이나 노트르담 대성당 등 프랑스의 유명 랜드마크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파리 한가운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지나치는, 6.25 전쟁의 흔적이 세워져 있다. 파리 14구의 센 강변에 위치한 “파리 프랑스군 대대 참전 기념비”가 바로 그것이다.

길이 약 2m에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비석은,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부로 참전한 프랑스군 대대를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다.

 ▲ 파리 14구 센 강변에 위치한 '프랑스군 대대 참전 기념비' 전경  ⓒkonas.net

 

얼핏 보면 꽤나 단순한 기념비 같지만, 사실 이 기념비에는 많은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프랑스군의 6.25 전쟁 참전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쟁 개전 직후, 프랑스 내부에서는 6.25 전쟁에 병력을 파병하는 것에 대해 격렬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프랑스 국토 전체가 유린당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대규모 전쟁에 참전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과의 분쟁에 이미 군을 투입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파병을 결정할 권한이 있던 프랑스군 국방차관 막스 르젠은 파병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때 나선 것이 라울 샤를 마그랭 베르느레 중장(Raoul Magrin-Vernerey, 1892~1964)이었다. 가명인 랄프 몽클레르로 더 잘 알려진 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노르웨이와 아프리카의 에리트리아 등에서 프랑스군을 이끌며 맹활약을 펼친 이름있는 장교였는데, 그는 르젠 차관에게 지속적으로 프랑스 역시 6.25 전쟁에 병력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르젠 차관이 현재 대규모 병력 파견은 어렵다고 반박하자, 몽클레르 중장은 기존 부대들과 대신 세계 대전에서 우수한 활약을 선보인 병사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대대를 창설하여 한국에 파견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나아가 자신이 해당 대대의 대대장을 맡겠다고도 제안했다. 

이는 실로 엄청난 결단이었다. 당시 미군 기준으로 대대장에는 중령 계급의 장교가 부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몽클레어 중장은 무려 자신의 원 계급보다 여섯 계급이나 낮은 중령 신분으로 전쟁에 참전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한 르젠 차관이 정말 괜찮겠냐고 묻자, 몽클레어 중장은 “곧 태어날 제 자식에게 제가 최초의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는 자긍심을 물려주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창설된 프랑스군 대대(Le bataillon Français de Corée, ONU)는 미군 제2 보병사단 23연대 휘하로 6.25 전쟁에 공식 참전하였다. 이 대대의 프랑스군 총원은 1,050명이었고, 여기에 이들을 지원할 국군 중대 하나가 추가로 배속되어 있는 구조였다.

비록 이는 다른 참전국들에 비해 작은 규모였지만, 몽클레어 중장을 비롯한 대대 구성원 대부분이 제2차 세계대전과 인도차이나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던 덕에 이들의 전투력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들이 맹활약을 펼쳤던 대표적인 사례로는 1951년 2월 벌어진 경기도 양평에서 벌어진 지평리 전투가 있다. 당시 프랑스군 대대가 소속되었던 미군 23보병연대는, 밀어닥치는 중공군을 유엔군의 화력 지원 범위 안으로 유인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때 프랑스군 대대는 기지를 발휘했다. 먼저 사이렌을 크게 틀어서 중공군이 상호 통신용으로 사용하던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가려버렸고,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되려 소총에 검을 장착한 채로 돌격을 실시해 중공군의 연이은 공세를 모조리 패퇴시키는데 성공했다.

프랑스군 대대는 이후 1952년 10월 철원에서 나흘간 벌어진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해 중공군 5,400여명을 사살하고 7,20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활약을 펼쳤다. 비록 당시 프랑스군도 47명이 전사하고 144명이 부상당하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이들의 분전 덕에 아군은 화살머리고지를 사수함은 물론이오, 해당 고지의 바로 동쪽에서 벌어지고 있던, 6.25 전쟁을 통틀어 제일 치열했던 전투인 백마고지 전투의 승리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렇게 여러 전투에서 활약한 프랑스군 대대는, 1953년 10월 모두 한국을 떠나 베트남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던 인도차이나로 파견됨으로써 한국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다시 기념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프랑스군 대대 참전 기념비는 지금도 센 강변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래는 한반도 모양의 비석만 세워져 있었지만, 2024년 프랑스 국방부의 주도로 전쟁에서 전사한 프랑스군 대대 장병 268명과 국군 중대 장병 24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  전쟁에서 전사한 프랑스군 대대 장병 268명과 국군 중대 장병 24명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konas.net

 

끝으로, 현대에는 많이 잊혀졌지만, 6.25 전쟁은 단순히 대한민국과 북한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무려 세계 16개국이 전투병력을 파병하고, 6개국이 의료진을 파견한 대규모 국제전이었다. 

프랑스군 대대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민족과 역사를 초월하여 오직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유엔군의 깃발 아래 한국으로 파견된 용사들이었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스스로를 여섯 계급이나 낮춰 가면서까지 유엔군의 일원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참전했던 몽클레르 중장과 프랑스군 대대원들의 의지를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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