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기념] (13) 대전 윤옥춘 전공비
대전 보문산 한편, 이정표 하나 없는 외진 길 끝에 한 군인의 전공비가 서 있다. 이 기사에서 다룰 인물인 윤옥춘 이등상사의 전공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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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춘 이등상사는 1929년 충청남도 대전시 문화동에서 태어나 조선경비대에 입대해 제1사단 제11연대에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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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연대는 1949년 1월 12일 문산에서 38도선 경비작전 임무를 수행했는데, 당시 북한군이 38선 주도권 장악을 목적으로 5월 3일 기습남침해 송악산 일대의 292고지, UN 고지, 155고지 및 비둘기 고지를 점령했다.
이에 연대장은 제1대대의 제3, 제4중대를 제2대대에 재배치하는 한편, 연안 방면으로 행군 훈련을 나간 하사관 교육대를 개성으로 복귀시켜 5월 4일 반격 작전을 감행했다.
그러나 고지의 경사가 급해 공격이 어려웠고, 10개 소의 토치카(콘크리트로 만든 고정 기관총 진지) 에서 기관총 사격이 쏟아져 공격부대는 7부 능선에서 더 이상 진출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연대장은 적의 토치카를 파괴하기 위해 특공대 투입을 결심하고, 하사관 교육대 특공대장인 서부덕 이등 상사와 이희복 하사, 윤옥춘 하사 등 9명의 특공대를 편성했다.
육탄 공격조는 81mm 박격포탄에 수류탄을 결합하여 만든 육탄공격용 포탄을 들고 정오를 기해 목표 지점을 향해 출발했으며, 후방에서는 57mm 대전차포로 특공대의 전진을 엄호했다.
적의 기관총 사격이 집중되는 가운데, 특공대는 포복으로 전진해 각자 목표 진지에 돌입했고, 자폭을 통해 토치카를 격파했다.
또한 특공대 조직 전에 박창근 하사가 292고지의 적 토치카를 수류탄으로 단독 공격하여 분쇄함에 따라, 제11연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적을 공격하여 292고지 등을 탈환함으로써 송악산 지구의 38도선 아군 진지를 모두 회복시켰다.
윤옥춘 일등상사를 비롯한 특공대의 고귀한 희생으로 송악산 지구의 주요 고지를 모두 탈환하여 국군의 위용을 과시함은 물론 개성 지역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전투 이후 당시 이범석 국무총리는 담화를 통해 “국군의 과감 민첩한 행동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개성지구의 일대 혼란과 다수 양민의 피해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생활 재산을 북한군의 위협으로부터 구출했고, 국제적으로는 대한민국이 능히 자력 방위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특히 우리 10용사는 전술상 필요를 통감하고 자진해 살신성인한 것이니, 그들의 충용한 행동이야말로 국군의 모범이며 조국 수호의 정화라고 할 것이오, 세계만방에 자랑하여 대한 남아의 기백을 선양해야 할 것이다.”라며 육탄 10용사의 의의를 높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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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춘 전공비의 비문에는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꽃다운 젊은 목숨을 나라에 바친 자랑스러운 민족정기의 한 넋을 이 빗돌에 새긴다.
당시 육군 참모총장 채병덕 소장은 이를 국군 전 장병의 귀감이라 하여 표창하였고 1952년 10월에는 국방부 장관이 을지무공훈장을 주었다.
그때 육탄으로 함께 전사한 열 사람의 전우를 일컬어 육탄 10용사라고 부른다.
그가 뿌린 피는 이 강산 무궁화로 이어서 피어나고 그가 바친 얼은 이 겨레 가슴 속에 영원히 살으리라.”라고 적혀있다.
육탄 10용사 중 서부덕 이등상사는 중위로, 윤 하사를 포함한 9명은 일등상사로 특진했으며, 이들이 소속된 제11연대(현 육군 제11보병여단)는 ‘육탄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2001년부터 육군은 전투부대 중 모범 부사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육탄 10용사상’을 제정하여 이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으며, 매년 5월 4일마다 파주 통일 공원에서 육탄 10용사 추도식을 열어 그들의 군인정신을 기억하고 있다.
보문산 야외 음악당 옆에 마련된 전공비는 바로 옆에 마련된 대전지구 전적비보다 더 찾기 어렵다. 본 기자 역시 지도 앱을 이용하여 전공비를 찾아갔지만, 실제 위치와 지도상 위치가 맞지 않아 혼란이 있었다. 지도 앱 정보만으로는 찾기 어려워 길을 헤매는 방문객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지도 앱에 등록된 위치가 아닌 대전광역시 중구청 홈페이지나 국가보훈부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등의 위치 정보를 확인한 후 방문할 것을 권한다.
스물한 살, 꽃다운 나이에 그의 몸은 폭탄과 함께 산화됐지만, 얼과 정신은 이 땅 위에 여전히 남아있다.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을 기억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보훈이라고 생각한다. (konas)
향군 인턴기자 주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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