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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기념] (20) 맥아더 장군 동상

Written by. 인턴기자 주민우   입력 : 2025-09-16 오전 1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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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인천 앞바다에서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상륙작전이 전개됐다. 1/5000의 확률을 뚫고 성공한 이 작전을 추진한 인물은 바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그의 동상이 인천 앞바다에 있는 자유공원에 세워져 있다.

 ▲ 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그를 추모하기 위해 1957년 건립되었다. ⓒkonas.net

 

맥아더의 생애

더글러스 맥아더(1888~1964)는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미국 육군참모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에 미국군과 연합군 지휘관으로 활동하였다.

 ▲ 맥아더 장군 동상 건립문. 건립 취지와 그의 업적이 한글과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konas.net

 

그는 1937년 퇴역했다가 4년 뒤 육군 대장으로 복귀한 후, 1944년 육군 원수 계급을 받아 진급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연합군 점령하 일본 최고사령관으로 일본에 주둔하다가 한국전쟁을 지휘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군 사령관으로 참전하였으며,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진격했으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반격의 계기를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전개

맥아더는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취임하였다. 그의 인솔하에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워싱턴 등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 전쟁의 양상을 뒤바꿔 놓았다. 최측근들은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위험하다며 군산으로 상륙 지점을 변경할 것을 제안했지만 맥아더의 신념은 확고했다. 

서해 어느 항구에 미군이 상륙한다는 정보는 북한군에게도 알려졌지만, 북한군은 이미 보급선이 길게 늘어져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돌릴 군사력이 부족했고 김일성은 정보 자체를 크게 믿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작전 돌입 단계에 이르러서 주요 간부끼리 'Go/No go(작전 실행/중지) 회의'를 했다. 당시 주한 미 해군 사령관이 반대했지만, 맥아더는 "이건 내 고집대로 해야겠으니 따라와 달라."라고 말하며 인천을 선택했다. 

한미연합군은 9월 15일 새벽 2시 상륙작전을 개시, 월미도를 점령한 후 인천항까지 확보하며 반격의 계기를 조성했다. 이 작전과 이후 서울 탈환은 국군과 유엔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북한군의 사기 저하에 크게 일조했다. 맥아더의 작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북한군은 이 작전으로 인천을 빼앗긴 이후 1·4후퇴 때까지 패배를 거듭했다.

이러한 맥아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자유공원에 1957년 인천 상륙 후 한미연합군이 태극기를 꽂았던 자리에 동상을 세웠으며, 동상 건립과 함께 공원 이름도 기존의 만국공원에서 자유공원으로 바꿨다. 맥아더 장군이 북한군을 몰아내고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했다는 의미를 녹여낸 것이라고 한다.

동상 옆에는 미 해군 장병 기념비도 세워져 있는데, 6·25전쟁에 참전한 모든 미 해군 장병을 기리기 위해 미국 해군 기념재단에서 헌정한 기념물이다.

비문에는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21개국의 병력과 함께 싸웠다”라고 적혀 있으며, 부조물에는 해군 장병과 전투기, 상륙정이 그려져 있다.

 ▲ 맥아더 장군 동상 옆에 있는 미 해군 장병 기념비. 미국 해군 기념재단에서 자유를 위해 싸운 모든 미 해군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2000년 6월 헌정했다.ⓒkonas.net

 

동상 부조물 논란과 정비

그런데 동상 하부에 있는 상륙작전 형상화 부조물이 몇 년 전까지 논란에 휩싸였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아닌 1944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레이테만 상륙작전의 사진을 참고하여 만들어져, 철거 논의와 함께 소유권을 둘러싼 정부와 지자체 간의 분쟁이 이어졌다. 결국 기존 부조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신규 부조물을 2024년 9월 추가로 설치했다.

 ▲ 맥아더 장군 동상 하부에 있는 부조물 제작 안내문. 기존 부조물의 문제와 신규 부조물 설치 이유가 적혀 있다. ⓒkonas.net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라는 맥아더 장군이 남긴 명언처럼, 자유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을 찾아 감사함을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 맥아더 장군 동상 하부에 있는 부조물. 논란이 된 기존 부조물(좌)과 신규 부조물(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konas.net

 

올해는 광복 80주년, 정전 72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전쟁의 흐름을 바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개시일도 함께 기억한다면, 맥아더 장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주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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