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가난의 피해자 기지촌 할머니들
유달리 덧버선을 잘 만들던 13세 소녀가 있었다. 이웃 동네에까지 소문난 손재주 덕에 물레질할 때 고리를 만드는 것도 늘상 소녀 차지였다. 그러나 소녀는 6·25전쟁과 함께 부모를 잃고 고향을 등졌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소녀는 미군 기지촌으로 향했다. 덧없는 세월과 풍파 속에 소녀는 어느새 일흔을 바라보는 백발 할머니가 됐다. 평생 씻지 못할 한을 가슴에 가득 담은 채….
경기도 평택시 안정리 미군부대 ‘캠프 험프리’ 주변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서글픈 인생 역정이다. 아픈 상처를 저마다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기지촌 할머니들을 위해 사역하는 ‘햇살센터’ 우순덕(52·여) 원장. 감신대를 졸업한 그녀는 2001년 여름 기지촌 할머니들을 알게 됐고 이듬해 자비로 지하에 방을 얻어 햇살센터를 열었다. 올해로 개원 3년째인 햇살센터는 안정리 인근 기지촌 할머니 70명을 대상으로 찬양예배, 공동식사, 의료·법률상담, 미술·심리치료, 입양자녀 찾아주기, 이·미용·빨래 서비스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과 교회들의 도움으로 햇살센터는 50평 규모의 다세대주택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대부분 병든 몸을 이끌고 혼자 살고 있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평생 ‘양공주’라며 손가락질을 받아온 할머니들은 좀처럼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할머니들의 소망은 죽기 전에 입양을 보낸 자녀들의 얼굴이라도 한번 만져보는 일. 할머니들 중에는 젊은 시절 기지촌 생활을 하면서 혼혈아를 낳아 해외로 입양을 보낸 경우가 많다. 34년만에 입양을 보낸 아들을 찾은 박모(75) 할머니와 같은 ‘기적’이 벌어지기를 기도한다. 미국에서 건축가로 성장해 결혼한 박 할머니의 아들 이야기는 오래도록 화제가 되고 있다. 연락하던 가족도 등을 돌리는 현실에 이같은 일은 말 그대로 기적이기 때문이다. 이 모(70) 할머니는 “클럽에서 일하며 도저히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며 “엄마를 알고 나면 실망할지 모르니 그저 잘 살고 있는지만 알았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지었다.
햇살센터의 가장 큰 과제는 할머니들을 위한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2008년까지 평택으로 미군기지가 이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 낡은 건물들이 헐리면서 할머니들이 갈곳을 잃고 있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게 주는 20만∼30만원의 정부지원금으로 생활하는 할머니들이 월 5만∼10만원 하는 월셋방을 떠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김 모(67) 할머니는 “20여만원 받아서 월세 10만원과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낡아도 좋으니 그저 몸 하나 편히 뉘일 곳만 있으면 좋으련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 원장은 “지나온 세월이 힘들었던 탓에 내면치유가 쉽지 않다. 할머니들이 복음으로 치유 받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길 바란다”며 “전쟁과 가난에 희생된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햇살이 비추길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했다(031-618-6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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