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편지보내 헤어진 오빠 찾은 집념의 할머니
전후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지난 1947년 16세 때 헤어진 한 살 위의 오빠를 찾으려고 35년 동안 세계 각처에 편지를 써온 집념의 헝가리 할머니가 마침내 호주에서 꿈에 그리던 오빠를 찾아냈다.
오빠와 헤어진 지 58년 만이었고 꽃망울로 부풀어 오르던 청춘은 어느 덧 7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2일 집념의 할머니 카탈린 쿠르벨(73)이 미국 백악관을 비롯해 세계 각처에 오빠 이스트반(74)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편지를 35년 동안이나 써오던 끝에 며칠 전 시드니에서 할아버지가 된 오빠와 만나 뜨거운 재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신문은 노인이 된 남매의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는 카탈린 할머니의 포기할 줄 모르는 편지쓰기가 무엇보다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여러 국제기관과 호주 적십자사의 끈질긴 노력도 한몫을 했다고 소개했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헝가리 우즈스고로드에서 자란 이들 남매는 각각 16세와 17세 때 헤어지면서 눈망울에 뜨거운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서로 볼을 비벼대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 우즈스고로드가 우크라이나로 편입돼 소련의 일부분으로 넘어가고 많은 시민들이 억류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자 17세의 이스트반이 친구와 함께 독일로 탈출을 결심한 순간이었다. 1947년 11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스테판이라고도 알려진 이스트반은 일단 독일로 빠져 나온 뒤 내친 김에 자유를 찾아 호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는 호주에 정착한 뒤 노동을 하면서 매우 조용한 생활을 해왔다. 오로지 가톨릭 신앙에만 매달리며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으며 남의 눈에 드러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친구들도 많은 편이 아니다.
소련의 일부가 돼 버린 고향에 남아 있던 카탈린은 그 후 헝가리로 이주해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으며 아들 한명은 이번에 시드니까지 따라와 취재 언론들을 상대로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카탈린의 오빠 찾기는 70년 국제적십자사에 편지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호주 적십자사,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세계 헝가리인 연합회 등 세계 각처에 편지와 17세 때 찍은 오빠의 사진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 등 무려 35년 동안이나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카탈린은 오빠와 함께 탈출했던 친구를 찾아 독일도 다녀왔으나 오빠가 호주로 갔다는 소식 외에는 더 이상의 정보는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희망을 잃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카탈린은 말한다.
그런 카탈린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로 나타난 것은 호주 적십자사 자원 봉사자 엘리자베스 레바이 등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스트반 찾기 운동을 벌이던 이들이 드디어 얼마 전에 이스트반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자원봉사자 잔 머피는 "스테판을 찾아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며 그가 동생이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두 사람이 만나는 데까지는 시간을 좀 끌었다고 말했다.
이스트반은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좋아하지는 않는 성격"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그런 점 때문에 호주로 이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돼 필생의 꿈을 이룬 카탈린은 지금까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살고 있는 오빠의 볼에 따스하게 입을 맞추며 오빠를 헝가리로 데려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k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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