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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지금’부터야

Written by. 관리자   입력 : 2005-10-10 오후 3: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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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동안 재활용품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는 할머니가 있다. 이유는 없다. 그냥 봉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기본’이란다. 죽을 때까지 봉사하며 살겠다는 남옥봉(75) 할머니를 어수경로당(동두천시 중앙동)에서 만났다.

나폴레옹같은 잔다르크라고 부르고 싶다. 150cm가 될까 말까한 왜소한 체격에 주름살이 가득하지만 목소리는 쩌렁쩌렁하다. 봉사하며 살겠다는데 토를 달 이유는 없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삶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노인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고철, 휴지는 ‘사랑’으로 재활용돼-

‘할머니회 회장’ ‘노인대학 부회장’ ‘동사무소의 바르게 살기 여성부원과 위원장’ 등 직함 수 만큼 오지랖이 넓고 ‘튀는’ 할머니다. “편히 앉을 시간, 아플 시간 없을 정도로 바빠. 근데 어쨔? 그게 좋은걸”이라는 말에 사족을 들이밀 수 없었다.

고철이나 휴지, 빈 박스 등 재활용품을 모아 하루하루 연명하는 노인도 부지기수다. 그에 비하면 할머니의 그것은 배부른 자의 베풂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래도 할머니가 잔다르크로 보이는 것은 ‘나홀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를 천사로 만들기 때문이다.

우선 원활한 폐품 수집을 위해 남 할머니는 각 가정을 돌아다니며 지정된 위치에 재활용품을 갖다 놓도록 홍보에 나섰다. 동거동락하는 경로당 멤버들이 보다 손쉽게 수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처음에는 길거리를 가다가 폐품을 줍는 것을 본 동네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을 보내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도 남 할머니가 주축이 된 어수경로당 노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일년 모으면 한 몇백은 디야.” 마치 숨겨놓은 비밀을 조심스레 털어놓은 아이처럼 흐뭇해 한다. 가정집은 물론이요 아파트 철거현장까지 남 할머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오죽하면 며칠전 동두천시 노인회장들이 지방에 놀러갔다가 남은 흔적들까지 싸그리 들고 왔을까. 그 결실은 다른 경로당의 노인들이나 불우이웃들의 품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헤딩골 두 방으로 최우수 선수에-

경로당을 들어설 때 남 할머니는 두툼한 비닐 봉투를 양손에 쥐고 나타났다. 대여섯 할머니들 앞에서 단감과 달래를 풀어헤쳤다. 농사도 짓는 남 할머니는 모든 게 ‘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매일 빠짐없이 가계부를 쓰고 있는 할머니는 남에게 베풀지언정 자신을 위해 낭비하는 법은 없다.

직책이 워낙 많아 웬만한 동네 행사에 빠지는 일은 없다. 매주 시에서 마련한 아카데미 강좌도 놓치는 법이 없다. 자식뻘 되는 젊은이들 틈에서 할머니는 경제, 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강연에 귀를 곤두세운다. 이유 또한 대꾸 못할 정도로 확실했다. “그거 듣는다고 손해 볼 거 없잖아.”

이처럼 할머니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유달리 고집스럽다. “옛날 부녀회때엔 멋진 헤딩골로 동두천시 최우수 선수로 뽑힌 몸이야.” 당시 50대였던 할머니의 포지션은 공격수. “두 달 동안 반칙 등 규칙과 드리블을 배웠어. 헤딩할 줄 아는 이는 단 두 명 뿐이었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 밖에도 배구나 게이트볼 등에는 늘 주전멤버였다고 자랑하는 할머니 왈 “늙을수록 더 바빠.”

-“시간없다고? 다 핑계야”-

할머니는 항상 머리맡에 조그만 상이 놓여져 있다. 가계부를 쓰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틈만 나면 메모를 하는 습관 때문이다. 반세기 전 두부값 기록도 남아있을 정도로 꼼꼼하다. 이러한 생활은 살기위한 고육지책이자, 어찌보면 할머니를 억척스럽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고향이 황해도인 할머니가 남한으로 건너온 것은 1·4후퇴 때. 당시 나이는 18살이었다. 살기 위해 남자가 하는 일에도 주저않고 뛰어들었다는 할머니의 인생관은 뚜렷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세상 원망 말아야 해. 늘 긍정적으로 살아야해. 그러면 마음의 병 또한 없어져. 희망 가지면 안되는 일 없어. 한다고 결심하면 목적지꺼정 갈 수 있는게 우리네 인생살이여.”

“나... 사실 문학 할려고 했어.” 할머니는 뜬금없이 한마디 던졌다. 할머니는 “등산할 때 떠오르는게 있으면 항상 메모했다가 집에 와서 집필하고 있어. 사시사철 다른 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록하는거야”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메모하는 습관 가져야 치매도 안걸리고 좋아”라며 쑥스러움을 감췄다.

어떤 봉사라도 ‘말’보단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할머니는 “늙은이들이 봉사해야 젊은이들이 본받아. 젊은이들에게 못한다고 손가락질만 하면 잔소리밖에 안돼”라고 강조했다. 몸소 실천하며 잔소리해야 제대로 먹힌다는 얘기다.

인터넷을 아직 할 줄 모른다는 남 할머니. 그래도 미국에 있는 손주들한테 연락하기 위해서라도 올 겨울엔 이메일 보내는 방법을 꼭 배울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이봐. 내년엔 최고로 멋진 메일 써서 보낼께”라며 인사를 대신했다. 인간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뭔가 해야 하는’ 존재인가 보다. 할머니에게 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언제나 ‘지금’부터가 아닐까.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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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쫀득이(qncjs1)   

    75세 연로하신데 참 삶을 사시는 할머니네요 존경스럽습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2 오전 8:57:07
    찬성1반대0
1
    2026.9.26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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