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노인들의 모임터인 종묘앞에서.
    고궁 나들이차 만나기로 한 가족들을 기다리며
    두리번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노인 두 분의 대화가 뒷편에서 들려온다.
    뒤돌아 보니 거리에서 붓글씨를 써서 파는 70대 노인에게
    같은 또래의 한 노인이 말을 건넨다.
    "종이는 있으니 필묵이나 좀 빌립시다."하며
    가방속에서 차근차근 말아둔 종이 한뭉치를 꺼내 펼쳐 놓는다.
    그리고 이내 멋진 서체로 일필휘지의 솜씨를 발휘한다.
    글쓰는 품새와 글 솜씨가 범상치 않다.
    그런데 "筆墨驚天地書畵通古今(필묵경천지서화통고금)"이란 
    열 글자를 써 놓고는 금세 사라진다.
    그 글 아래에 글씨 파는 노인이 작은 글씨로 같은 내용을 써넣는다.
    (위 한자중 `驚'자는 실제 쓴 글에는 심방변에 서울 京을 쓴 것으로 
     서예인들이 놀랄 경(驚) 자를 대신해  쓰는 글자라고 합니다.
     서예 자체중에는 이런 류의  한자가 많습니다.)  
           

    몇분후 글씨를 쓰고  홀연히 사라졌던 노인이 나타난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술병을 꺼내  필묵을 빌려준 노인에게 한잔 권한다.
    필묵을 빌려준 데 대한 사례의 술인 듯 하다.
    그러자 술잔을 받아 든 글 파는 노인이 단숨에 잔을 비운다.
    그리고는 바로 붓을 들어 감흥을 종이에 옮긴다.
    "一杯酒醉天如銅粒(일배주취천여동립)"
    "한잔 술 취하니 하늘이 돈짝만하다"란 뜻.
    술에 취하니 세상이 좁아 보인다는 말이다.
   
    김삿갓 책에서나 보던 이런 풍류객들의 모습을
    이 시대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보게 되다니
    각박한 세상에 너무 여유롭고 정겨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진한 감동과 함께 쓸쓸한 기분마저 어우러진다. 
    우리가 어찌 이런 풍류의 멋을  알리오.


필묵을 청한 노인이 붓을 고르고 있다.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단숨에 글씨를 휘갈긴다.


객이 쓴 글 아래 첨필을 한 뒤  종이를 거두고 있다.


다시 찾아온 노인이 술잔을 건넨다.
 

술 한잔을 비우고 감흥을 글로 옮기기 시작한다.

여섯번째 글자를 쓰고 있다.

상대가 완성한 글을 펼쳐 보이며 해설을 하고 있다.
술에 취하니 세상이 한낱 동전처럼 작아 보인다는 뜻이다. 

위 사진의 시간 기록에서 보듯
이 모든 것이 10여분 동안에 이뤄진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