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흥망의 원칙 - 몽고
국가 흥망의 결정적 요소로서 무엇을 거론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물음에 서슴치 않고 그것은 국가의 정체성이라고 말합니다. 국가 정체성은 국가와 국민의 존재의미(存在意味)이자 가치이며 또한 국민통합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國家와 國民의 존재의미이자 통합의 원천인 국가 정체성(正體性)을 상실한 국가나 국민은 결국 망국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린 역사에서 쉽게 찿아 볼 수 있습니다.
국가정체성 상실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몽고제국(帝國)의 사례를 살펴 보겠습니다.
징기스칸의 몽고제국
세계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졌던 몽골제국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 몽골제국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바로 말타고 적을 물리치면서 나라를 일으킨 것이겠지요. 더 간단히 말하면 말타는 것이 바로 몽골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몽고의 기마병은 동유럽에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폴란드에서 서유럽의 중갑기병(重甲騎兵)을 전멸시킨 당시 최강의 부대였으며 그들의 기동력은 적의 전초 전령병보다 빨라서 미처 적의 수뇌부가 방비를 하기도 전에 적진을 유린하였습니다. 몽고 기마병의 속도와 파괴력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군 전술로 부활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독일의 전격전이었습니다. 또 이라크전에서 럼스펠드가 말한 "충격과 공포"전술 역시 몽고 징기스칸의 전술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염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기갑부대 그리고 공중강습부대의 속도와 파괴력은 바로 그 옛날 기마전술이 모태가 된 것입니다.
동유럽에서 폴란드 및 게르만의 중갑기병 기사단은 생전처음보는 몽고기마병에게 속된말로 완전히 "떡"이 되어 녹아떨어 졌습니다. 몽고의 빠른 기마병과 몽고군이 사용하는 각종 무기중에서 중갑옷을 뚫어버리는 몽고군의 화살공격에 유럽의 중갑기사단은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후 모스크바를 비롯하여 지금의 폴란드 일부까지 몽고가 약 250여년간 지배 하게 되었습니다.
4세기 게르만의 대이동을 촉발시켰던 동양의 기마민족 "훈족"과 중세 유럽 기사단을 "떡" 되게 만들었던 몽고 기마병의 공포는 지금도 게르만족에게 "황화론(黃禍論)"이 구전(口傳)되게 할 정도이니까, 징기스칸의 몽골군···상상에 맡깁니다.
그 후 몽골이 명(明)나라에 의해서 무너지고 유럽에서도 폴란드의 창기병(후에 몽고를 유럽에서 몰아낸 주역)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미 그 당시 몽골은 구심점도 없이 쇠약할 대로 쇠약한 상태였으니 싸움이 될수도 없긴 합니다만 어째든 몽골의 영향으로 유럽도 경기병 전법을 도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경기병(輕騎兵), 즉 "가벼운 기병"이란 말이죠. 속도를 중시하는 기병이며 이 기병이 1차대전때까지 유럽에서 전장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폴란드 기병이 2차대전때까지 그대로 유지되면서 독일의 전차 군단(현대판 기병)에 맞섰다가 또 "떡"이 되었었지요.
몽고인은 말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또 말에서 죽었습니다. 말(馬)은 몽고인에게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몽고 초원의 몽고제국 발상지에는 오늘날도 항상 꽃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 몽고인에게 지도자가 나왔으니 바로 징기스칸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에 "혼"을 불어 넣었으며 그 혼을 국가건설이라는 공동의 목표로 승화시킨 이가 바로 징기스칸이었습니다. 800년이 지난 지금도 몽고인은 징기스칸의 건국의 기틀을 잡은 자리에 비석을 세우고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바로 정체성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몽고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제국건설뿐만 아니라 문화의교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로 실크로드의 통합이었습니다.
몽고인에게 몽고말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몽고말의 용맹성과 강인함이 바로 몽고제국을 탄생시켰습니다. 몽고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길을 유지 발전시킨데 있습니다. 중국은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만리장성을 건설하였으나 그 장성은 결코 나라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몽고는 길을 만들고 길을 뚫었습니다.
몽고가 운영한 역참제도(驛站制道)는 오늘날 우편제도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몽고가 유지 관리한 초원의 길, 이것은 로마제국의 건설과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융성하는 국가는 길을 만들고 몰락하는 국가는 장벽을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말과 함께 생활하고 말을 탄다는 것은 바로 몽고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몽고제국을 만든 길은 바로 몽고의 말에 의해서 이루어 졌으며 그것이 바로 몽고의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국가지도부의 정체성 상실은 망국의 지름길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몽골의 지도부는 말타는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 평원에서 말타고 달리면서 이룩한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을 차지하고 안주함으로써 몽골 지도부는 과거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타고 싸우면서 세운 몽골의 건국정신을 몽고 지도부는 잊어 버렸습니다. 말을 탈줄 모르는 몽골은 더이상 몽골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결국 몽골은 중국땅을 주원장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며 중국땅에는 명나라가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 정체성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두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국가정체성이란 바로 국가와 국민의 존재 의미이자 가치이며 통합의 원천인데 그것을 상실하였으니 망할 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특히나 국가지도부의 국가정체성 상실은 망국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출처:http://www.powercorea.com)
고성달(자주국방네트워크 역사연구실장)
국가정체성 상실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몽고제국(帝國)의 사례를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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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의 몽고제국
세계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졌던 몽골제국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 몽골제국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바로 말타고 적을 물리치면서 나라를 일으킨 것이겠지요. 더 간단히 말하면 말타는 것이 바로 몽골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몽고의 기마병은 동유럽에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폴란드에서 서유럽의 중갑기병(重甲騎兵)을 전멸시킨 당시 최강의 부대였으며 그들의 기동력은 적의 전초 전령병보다 빨라서 미처 적의 수뇌부가 방비를 하기도 전에 적진을 유린하였습니다. 몽고 기마병의 속도와 파괴력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군 전술로 부활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독일의 전격전이었습니다. 또 이라크전에서 럼스펠드가 말한 "충격과 공포"전술 역시 몽고 징기스칸의 전술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염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기갑부대 그리고 공중강습부대의 속도와 파괴력은 바로 그 옛날 기마전술이 모태가 된 것입니다.
동유럽에서 폴란드 및 게르만의 중갑기병 기사단은 생전처음보는 몽고기마병에게 속된말로 완전히 "떡"이 되어 녹아떨어 졌습니다. 몽고의 빠른 기마병과 몽고군이 사용하는 각종 무기중에서 중갑옷을 뚫어버리는 몽고군의 화살공격에 유럽의 중갑기사단은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후 모스크바를 비롯하여 지금의 폴란드 일부까지 몽고가 약 250여년간 지배 하게 되었습니다.
4세기 게르만의 대이동을 촉발시켰던 동양의 기마민족 "훈족"과 중세 유럽 기사단을 "떡" 되게 만들었던 몽고 기마병의 공포는 지금도 게르만족에게 "황화론(黃禍論)"이 구전(口傳)되게 할 정도이니까, 징기스칸의 몽골군···상상에 맡깁니다.
그 후 몽골이 명(明)나라에 의해서 무너지고 유럽에서도 폴란드의 창기병(후에 몽고를 유럽에서 몰아낸 주역)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미 그 당시 몽골은 구심점도 없이 쇠약할 대로 쇠약한 상태였으니 싸움이 될수도 없긴 합니다만 어째든 몽골의 영향으로 유럽도 경기병 전법을 도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경기병(輕騎兵), 즉 "가벼운 기병"이란 말이죠. 속도를 중시하는 기병이며 이 기병이 1차대전때까지 유럽에서 전장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폴란드 기병이 2차대전때까지 그대로 유지되면서 독일의 전차 군단(현대판 기병)에 맞섰다가 또 "떡"이 되었었지요.
몽고인은 말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또 말에서 죽었습니다. 말(馬)은 몽고인에게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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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제국건설뿐만 아니라 문화의교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로 실크로드의 통합이었습니다.
몽고인에게 몽고말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몽고말의 용맹성과 강인함이 바로 몽고제국을 탄생시켰습니다. 몽고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길을 유지 발전시킨데 있습니다. 중국은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만리장성을 건설하였으나 그 장성은 결코 나라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몽고는 길을 만들고 길을 뚫었습니다.
몽고가 운영한 역참제도(驛站制道)는 오늘날 우편제도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몽고가 유지 관리한 초원의 길, 이것은 로마제국의 건설과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융성하는 국가는 길을 만들고 몰락하는 국가는 장벽을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말과 함께 생활하고 말을 탄다는 것은 바로 몽고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몽고제국을 만든 길은 바로 몽고의 말에 의해서 이루어 졌으며 그것이 바로 몽고의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국가지도부의 정체성 상실은 망국의 지름길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몽골의 지도부는 말타는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 평원에서 말타고 달리면서 이룩한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을 차지하고 안주함으로써 몽골 지도부는 과거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타고 싸우면서 세운 몽골의 건국정신을 몽고 지도부는 잊어 버렸습니다. 말을 탈줄 모르는 몽골은 더이상 몽골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결국 몽골은 중국땅을 주원장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며 중국땅에는 명나라가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 정체성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두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국가정체성이란 바로 국가와 국민의 존재 의미이자 가치이며 통합의 원천인데 그것을 상실하였으니 망할 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특히나 국가지도부의 국가정체성 상실은 망국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출처:http://www.powercorea.com)
고성달(자주국방네트워크 역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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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5 오전 9: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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