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우위 정책으로 소련을 굴복시킨 로널드 레이건
"소련은 惡의 제국, 나는 공산주의는 이미 그 역사의 마지막을 쓰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안보와 예산 赤字 간의 兩者擇一을 해야 한다면 나는 국가방위 편에 서는 수밖에 없다"
-레이건 어록 중에서-
미국 국민들에게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을 손꼽으라면 그들은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을 그중 한 명으로 내세울 것임이 틀림없다. 레이건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정책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미국 국민들조차도 그에게 호감을 가졌고 그의 스타일에 반했었다.
터프츠(Tufts) 대학 플레처 외교대학원의 팔츠그라프(Robert L. Pfaltzgraff) 교수는 레이건 대통령의 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부시 現 대통령의 부친)가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4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 국민들이 레이건 대통령을 세 번째 임기에 당선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들이 레이건을 너무 좋아하지만 헌법상 대통령의 3選을 금지해 놓았기 때문에 그의 분신격인 조지 부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얘기다.
미국인들의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아직도 미국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미국 정치가들이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워싱턴 내셔널 공항은 로널드 레이건 공항으로 改名됐다. 워싱턴DC에 있는 대규모 연방 정부 건물은 로널드 레이건 빌딩으로, 최신예 항공모함의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號로 命名됐다. 아직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이처럼 널리 사용되는 경우는 공공시설물 등에 위인들의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하는 미국에서도 드문 일이다. (2004년 6월 5일 레이건 사망)
사실 상당수 지식인들은 레이건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중 그들은 레이건을 「총명하지 못한 대통령」, 「지식이 많지 않은 대통령」, 「심각하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비하했다. 중요한 국가 정책 회의의 테이블에서 졸고 있는 레이건 대통령의 모습은 이들에게 좋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지식인들이 레이건을 우습게 본 것은 그가 변호사 출신도, 동부 명문대 출신도 아닌, 별로 존경의 대상이 아닌 배우 출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은 지금도 레이건을 낮춰 보고 있다.
위대한 대화자(Great Communicator)
그러나 미국 국민들 대부분은 레이건을 좋아한다. 레이건은 국민들에게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기초한 정치사상에 충실했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호감을 국민들에게 잘 전달했으며, 사회의 질병과 惡의 요인들이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지적했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정치, 사회,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직설적이고도 분명한 代案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레이건은 「위대한 대화자」(Great Communicator)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국민에게 호소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물론 어느 나라 국민들도 정치문제에 해박하고 권위 있는 해설을 할 수 있는 실력은 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치가들의 거짓과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은 있다. 레이건이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話術(화술)때문만이 아니라, 좀더 나은 삶의 양식에 대한 확신, 미국에 대한 그의 애국심과 긍지 때문이었다.
인간은 본래 자유로워야 하며 인간의 자유가 가장 잘 보장되는 사회가 가장 풍요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미국은 그 같은 자유주의 사회 철학을 구현 시킨 정치 제도라는 레이건의 확신은, 그의 對內外 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레이건은 자신의 신념을 미국은 물론 세계에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레이건은 미국의 정치·경제체제를 좀더 자유주의적으로 만듦으로써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 발전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또한 지구 전체를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그의 신념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총체적 붕괴를 초래한 원동력이었다. 레이건의 정치철학과 신념은 나치 독일, 공산주의 소련 등 左右翼 전체주의의 실험과 이에 대항하는 전쟁과 폭력의 세기였던 20세기를, 1989년을 고비로 종결시켰다. 1989년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시점이었다.
커서 대통령이 될지 누가 알겠어?
로널드 레이건은 1911년 2월6일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州 탬피코에서 태어났다. 탬피코는 인구가 겨우 82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가 태어나던 날 그의 부친은 『그 녀석, 뚱뚱한 네덜란드人처럼 생겼군, 그러나 커서 혹시 대통령이 될지 누가 알겠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로널드(Ronald)라는 이름이 열정적인 미국 청년의 이름으로는 나약해 보인다고 생각, 사람들에게 자기를 「더치」(Dutch, 네덜란드人)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했었다. 아버지가 그를 부를 때 쓰는 별명이 「더치」였고, 그 쪽이 더 열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레이건은 네덜란드人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人(Irish)의 후예였다. 레이건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系였다. 아일랜드는 이웃 영국의 지배를 받은 수난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중에는 한국인들이 아일랜드人들과 기질이 비슷하다고 하여 한국인을 「동양의 아이리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좋게 말하면 화끈함, 나쁘게는 다혈질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레이건은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는 의미에서 화끈한 아이리시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레이건은 아버지가 가톨릭이란 이유 때문에, 아일랜드系라는 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고 주먹 싸움도 자주 벌였다고 회고했다. 또래의 많은 미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레이건의 가정 역시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레이건의 아버지는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비교적 세상 물정에 밝았고, 개인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를 열정적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기성권위에 회의적이었고, 특히 일리노이州 공화당 정치인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냉소주의자로서 사람들의 나쁜 면을 보려는 반면 레이건의 어머니는 그 반대였다. 레이건은 그의 회고록에 『나는 아버지로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과 큰 뜻을 품는 가치를 배웠고, 어머니로부터는 기도의 가치_꿈을 가질 것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방법_을 배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성달/자주국방네트워크 역사연구실장 (http://www.powercorea.com)
"안보와 예산 赤字 간의 兩者擇一을 해야 한다면 나는 국가방위 편에 서는 수밖에 없다"
-레이건 어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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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들에게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을 손꼽으라면 그들은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을 그중 한 명으로 내세울 것임이 틀림없다. 레이건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정책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미국 국민들조차도 그에게 호감을 가졌고 그의 스타일에 반했었다.
터프츠(Tufts) 대학 플레처 외교대학원의 팔츠그라프(Robert L. Pfaltzgraff) 교수는 레이건 대통령의 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부시 現 대통령의 부친)가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4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 국민들이 레이건 대통령을 세 번째 임기에 당선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들이 레이건을 너무 좋아하지만 헌법상 대통령의 3選을 금지해 놓았기 때문에 그의 분신격인 조지 부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얘기다.
미국인들의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아직도 미국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미국 정치가들이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워싱턴 내셔널 공항은 로널드 레이건 공항으로 改名됐다. 워싱턴DC에 있는 대규모 연방 정부 건물은 로널드 레이건 빌딩으로, 최신예 항공모함의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號로 命名됐다. 아직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이처럼 널리 사용되는 경우는 공공시설물 등에 위인들의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하는 미국에서도 드문 일이다. (2004년 6월 5일 레이건 사망)
사실 상당수 지식인들은 레이건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중 그들은 레이건을 「총명하지 못한 대통령」, 「지식이 많지 않은 대통령」, 「심각하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비하했다. 중요한 국가 정책 회의의 테이블에서 졸고 있는 레이건 대통령의 모습은 이들에게 좋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지식인들이 레이건을 우습게 본 것은 그가 변호사 출신도, 동부 명문대 출신도 아닌, 별로 존경의 대상이 아닌 배우 출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은 지금도 레이건을 낮춰 보고 있다.
위대한 대화자(Great Communicator)
그러나 미국 국민들 대부분은 레이건을 좋아한다. 레이건은 국민들에게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기초한 정치사상에 충실했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호감을 국민들에게 잘 전달했으며, 사회의 질병과 惡의 요인들이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지적했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정치, 사회,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직설적이고도 분명한 代案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레이건은 「위대한 대화자」(Great Communicator)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국민에게 호소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물론 어느 나라 국민들도 정치문제에 해박하고 권위 있는 해설을 할 수 있는 실력은 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치가들의 거짓과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은 있다. 레이건이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話術(화술)때문만이 아니라, 좀더 나은 삶의 양식에 대한 확신, 미국에 대한 그의 애국심과 긍지 때문이었다.
인간은 본래 자유로워야 하며 인간의 자유가 가장 잘 보장되는 사회가 가장 풍요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미국은 그 같은 자유주의 사회 철학을 구현 시킨 정치 제도라는 레이건의 확신은, 그의 對內外 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레이건은 자신의 신념을 미국은 물론 세계에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레이건은 미국의 정치·경제체제를 좀더 자유주의적으로 만듦으로써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 발전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또한 지구 전체를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그의 신념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총체적 붕괴를 초래한 원동력이었다. 레이건의 정치철학과 신념은 나치 독일, 공산주의 소련 등 左右翼 전체주의의 실험과 이에 대항하는 전쟁과 폭력의 세기였던 20세기를, 1989년을 고비로 종결시켰다. 1989년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시점이었다.
커서 대통령이 될지 누가 알겠어?
로널드 레이건은 1911년 2월6일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州 탬피코에서 태어났다. 탬피코는 인구가 겨우 82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가 태어나던 날 그의 부친은 『그 녀석, 뚱뚱한 네덜란드人처럼 생겼군, 그러나 커서 혹시 대통령이 될지 누가 알겠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로널드(Ronald)라는 이름이 열정적인 미국 청년의 이름으로는 나약해 보인다고 생각, 사람들에게 자기를 「더치」(Dutch, 네덜란드人)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했었다. 아버지가 그를 부를 때 쓰는 별명이 「더치」였고, 그 쪽이 더 열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레이건은 네덜란드人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人(Irish)의 후예였다. 레이건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系였다. 아일랜드는 이웃 영국의 지배를 받은 수난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중에는 한국인들이 아일랜드人들과 기질이 비슷하다고 하여 한국인을 「동양의 아이리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좋게 말하면 화끈함, 나쁘게는 다혈질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레이건은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는 의미에서 화끈한 아이리시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레이건은 아버지가 가톨릭이란 이유 때문에, 아일랜드系라는 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고 주먹 싸움도 자주 벌였다고 회고했다. 또래의 많은 미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레이건의 가정 역시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레이건의 아버지는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비교적 세상 물정에 밝았고, 개인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를 열정적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기성권위에 회의적이었고, 특히 일리노이州 공화당 정치인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냉소주의자로서 사람들의 나쁜 면을 보려는 반면 레이건의 어머니는 그 반대였다. 레이건은 그의 회고록에 『나는 아버지로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과 큰 뜻을 품는 가치를 배웠고, 어머니로부터는 기도의 가치_꿈을 가질 것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방법_을 배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성달/자주국방네트워크 역사연구실장 (http://www.powerc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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