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보기] 레바논-이스라엘 분쟁
지난 6월 25일 이스라엘 군인 갈라드 샬리트 상병이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서 납치된 이후 시작된 팔레스타인과 헤즈볼라, 이스라엘, 레바논 간의 분쟁은 지금도 세계 주요 언론의 가장 큰 뉴스다.
반면 한국 언론은 이 사건을 “이스라엘軍이 다시 레바논을 공격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軍이 왜 레바논을 공격하게 되었는지, 레바논의 역사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사건의 전말]
이번 사건의 시작은 지난 6월 25일 이스라엘 군인 갈라드 샬리트 상병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지역인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팔레스타인 인민저항위원회’에게 납치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정부에 납치해 간 병사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다 수감된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6월 27일 이스라엘의 올메르트 총리는 팔레스타인 정부에 갈라드 샬리트 상병을 석방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감행하겠다고 통첩했다. 결국 28일 자정부터 이스라엘軍은 가자 지구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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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軍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면서 납치된 병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가운데 7월 12일 레바논에 거점을 둔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 나하리야 지역에 60여 발의 로켓탄 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 민간인 1명이 숨졌다. 이스라엘軍 국경 초소도 공격당했다. 이 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軍 간에 교전이 발생, 이스라엘 군인 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으며 2명이 납치됐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과 싸우는 중에 배후를 노린 것이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레바논 접경 지역의 민간인을 소개시키고 레바논을 공습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軍이 공격해오자 이스라엘 주요 도시에 대한 로켓탄 공격과 함께 이스라엘 해군의 구축함에 크루즈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이집트 상선 1척이 대파되고 이스라엘 신형 구축함 1척이 반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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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번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민간인을 포함 40명 이상이 헤즈볼라의 로켓탄 공격 등으로 사망했고 레바논에서는 391명이 사망하고 1600여 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7월 25일에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UN평화유지군 감시단원 4명이 사망했다.
[레바논과 헤즈볼라]
현재 국내언론에서는 레바논-이스라엘 전투의 배경, 헤즈볼라의 크루즈 미사일 공격, 이번 전투와 우리나라의 석유 문제 연관성에 대한 보도는 별로 없고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한 것 위주로 보도하고 있다.
이번에 이스라엘을 공격한 헤즈볼라는 15년 동안 진행된 내전의 산물이다. 헤즈볼라(Hezbollah)는 아랍어로 ‘신의 黨’이라는 뜻이다. 1983년 호메이니의 회교원리주의에 영향을 받은 이슬라믹 아말(Islamic Amal)과 다와 파티(Dawa Party)라는 세력들이 이란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아 창설한 테러단체이다. 훈련, 군수지원은 이란軍이 맡고 있다. 조직원은 3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본거지는 레바논 동부 지역인 비카에 있다. 이 단체의 목적은 이스라엘과 서방 국가 세력을 공격해 중동에서 서방세력을 몰아내고 神政일치의 아랍통일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 단체는 美국무부가 지정한 테러단체 중 하나로 팔레스타인의 집권 세력인 테러단체 하마스와도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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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은 이스라엘 북쪽, 시리아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크기는 10,400㎢로 경기도와 비슷하다. 인구는 2006년 6월 현재 약 387만여 명이다. 무슬림이 59.7%, 기독교인이 39%다.
레바논은 수백 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1922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자 프랑스가 점령․통치했다. 1930년대 후반 기독교와 회교 세력의 연합으로 독립운동이 시작됐다. 1943년 11월 22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독립 후 대통령은 마로나이트파 기독교,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에서 배출했다. 독립 후 국회의원 의석은 1932년 인구조사를 기준으로 배분해 기독교와 회교가 6:5씩 차지했다.
그러다 1975년 4월 내전이 일어났다. 기독교 우파인 팔랑헤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습격하면서 일어난 이 내전은 아랍 지역의 기독교와 회교 세력 간 전면전 양상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시리아와 이스라엘까지 개입하고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져갔다.
1982년 8월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중동평화안을 발표하면서 사태가 수습되는가 했지만 테러단체인 헤즈볼라가 1983년 4월 駐레바논 美대사관 테러, 같은 해 10월 駐레바논 美해병대 사령부 폭탄테러를 일으켜 미군 280여 명이 사망하고 90여 명이 부상하면서 미국 또한 철수해버렸다. 그 후 레바논은 시리아 군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소속 무장 세력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유입된 4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 기독교 민병대, 헤즈볼라까지 섞여 내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후 1989년 9월 아랍 연맹의 주선으로 열린 레바논 국회를 통해 대통령의 권한축소, 국회의석 재분배, 시리아군 재배치 등을 골자로 하는 ‘국민화합헌장’을 발표하면서 레바논 내전은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됐다. 현재는 시리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레바논 정부는 서방 국가들의 대테러 전쟁에는 협조한다고 말하면서도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헤즈볼라, PIJ, 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PFLP-GC), 아부 니달 조직(ANO), 알 카에다 등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소탕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보도의 문제]
이런 역사를 보면 이번 분쟁에서 팔레스타인-헤즈볼라-이스라엘 간의 전투는 단지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 그 내부에는 중동의 역사와 이슬람 세력 간의 권력 다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대테러 전쟁, 이스라엘 군인 납치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다.
이 문제가 우리나라에 중요한 것은 바로 유가 폭등이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전투가 지속되고 결과적으로 중동 전쟁으로 비화되어 시리아, 이란까지 개입하게 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세계금융업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유가가 급등하게 되면 세계 석유소비량 6위(2004년 말 기준)의 우리나라가 받는 고통 또한 막대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와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실정이다. (konas)
전경웅 코나스 객원기자
- 2026.9.25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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