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목숨 건진 후 남 위해 살기로 했죠"
“나누는 삶은 곧 행복입니다. 힘 닿는 데까지 봉사하며 나눔의 삶을 살 것입니다.”
사회봉사단체 ‘사랑터’를 19년째 이끌어온 서울경찰청 정부중앙청사 경비대 이명우(52) 경위는 “경찰관으로서 근무하느라 늘 피곤하지만 내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불우노인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생각하면 피곤함을 잊게 된다”며 “이웃 사랑과 봉사는 삶의 활력소”라고 강조했다.
경찰관의 격무 속에 주경야독하며 2002년 방송대(법학)를 거쳐 성균관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를 마친 이 경위는 자신이 겪은 봉사현장에서의 시행착오 등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회봉사론을 대학에서 1년간 강의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야간 강의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적지 않지만 업무 때문에 거절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경위는 “400여 회원이 참여하는 사랑터가 최근 법인 허가를 받게 돼 이제 한차원 높은 봉사를 할 수 있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며 더 많은 일을 해달라는 사회의 요청으로 본다고 밝혔다. 사랑터는 지난 한 해에만도 무의탁 노인 후원과 시설방문 노력봉사, 국립현충원 봉사 등 500여건의 활동을 벌였다.
사랑터가 사단법인화하는 바람에 공무원의 겸직금지 조항에 따라 사랑터 대표는 그의 성대 은사인 박승희(52·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맡게 돼 그로서는 큰 부담을 덜었다면서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봉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고단한 업무의 일상 속에서 자신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선후배에게 늘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1980년 경찰에 투신한 이 경위가 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남과 더불어 제2의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72년 서울 청량고를 졸업한 이 경위는 76년 전투경찰에 입대한 뒤 삶의 기로에 서게 됐다. 오른쪽 다리가 당기고 부어올라 움직일 수 없었다. 병원을 찾았더니 “골수암으로 다리를 잘라내지 않으면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기껏해야 6개월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다리를 잃은 삶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여겨 수술을 포기했다. 그러나 “살고 싶다”는 욕망은 강하게 일었고, 이씨는 종교는 없었지만 “하느님, 제발 낫게 해 주세요. 건강한 몸이 되면 꼭 남을 위해 살겠습니다”고 매일 간절하게 기도했다. 기도의 힘이었을까. 몇달 뒤 다리의 통증이 없어지더니 기적적으로 병이 깨끗이 나았다.
‘위하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경찰관 직업을 택했다. 눈에 띄는 대로 봉사활동을 해온 그의 생활은 84년 헌혈로 이어졌다. 서울 동대문경찰서(현 혜화경찰서) 재직 중 “A형 피가 부족하다”는 가두방송을 듣고 시작한 헌혈은 8월 현재 120회를 넘어섰고, 헌혈증서는 대부분 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기증했다. 그는 이 같은 활동으로 92년 청룡봉사상을 받았고, 95년 10월 대한적십자사가 주는 헌혈유공자 포장을 받았다. 요즘엔 고혈압 약을 먹고 있어 헌혈을 못해 무척 아쉽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1987년 청와대 경비단에서 근무하던 이 경위는 서울 마장동 소고기 상인 이근배씨(작고) 등 등산을 같이하는 친구 5명과 함께 봉사모임 사랑터를 결성했다. 회원들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정신박약아 시설인 우성원 등을 찾아 감자 양파 등의 부식거리를 제공하며 이들의 말벗이 되었다. 이 경위의 봉사활동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입에서 입으로 번져 회원은 200여명으로 늘어났고, 이씨 또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입회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들이 방문하는 곳도 근육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잔디네집(서울 마포구 연남동)과 백혈병 어린이 후원회인 제일생명의 집(서울 종로구 연건동) 등 13곳으로 늘어났다. 사랑터 회원들이 봉사활동에 나서기 전 이 경위는 복지시설에 전해줄 부식거리를 사고 분류하느라 밤을 새기 일쑤였다. 사랑터는 돈보다는 물품으로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이 경위의 조그만 집에는 늘 무 배추 달걀 콩나물 등 농산물로 가득했다.
걷기 시작할 때부터 그의 손을 잡고 복지시설을 다녔던 큰아들 지형(25)씨와 둘째아들 준형(22·국민대 법학과 4년)씨도 물건을 나르고 싸는 등 이 경위를 도왔다. 지형씨는 사랑터 청년봉사대를 스스로 결성, 봉사에 앞장서고 있으며 준형씨도 사랑터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다 최근 고시공부를 위해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다. 10여년간 사랑터 총무를 지내며 남편 이 경위의 봉사활동을 도와온 부인 윤효숙(52)씨는 오래 전부터 헌혈봉사를 해왔으며, 이미 남편과 함께 사후 안구 및 장기 기증을 서약한 상태. 그야말로 온 가족이 봉사를 삶의 중심가치로 삼고 있다.
이 경위는 11년 전부터 매달 둘째주 일요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묘역 정화 봉사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과보호를 받고 자란 탓인지 시설물 같은 데서 봉사활동을 꺼리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봉사의 참맛과 애국심을 일깨우려고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랑터 회원들이 맡고 있는 곳은 장교·경찰 묘역 등 4개 묘역 1860위. 묘역 주변 잡초를 제거하고 묘비에 달라붙은 새 배설물 등을 정성들여 닦아내는 게 이들의 일이다. 국가를 위해 숨진 이들을 위해 할 일이 없을까 하는 궁리 끝에 이 봉사를 하게 됐다는 이 경위는 “저만 아니라 회원들 모두 부모님 산소는 못 찾아도 현충원 봉사활동은 빠뜨리지 않는 불효자 아닌 불효자입니다”라고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이 경위는 지금까지 무의탁 노인 복지시설 등 수많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99년 수해를 입은 파주 문산읍 지역에서의 활동이었다고 말한다. “수많은 봉사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수해현장에 앞다퉈 도착해 이재민의 손발이 되며 불철주야로 돕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그때 눈에 안 띄게 열심히 일하는 봉사자들을 보고 우리 사회에는 분명 희망이 있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도움을 주면서 끝내 익명을 강조하는 독지가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고 밝히는 이 경위는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만도 아름다운 삶”이라고 강조했다.(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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