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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세 돌, 인천상륙작전을 돌아보며

국회를 교두보로 삼아 활동하는 종북 혁명조직(RO)까지 등장했다.전몰장병들의 넋을 기리며 조국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 수호의 결의를 다져야
Written by. 고성윤   입력 : 2013-09-13 오전 9: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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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13일자 국방일보18면 오피니언에 게재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공세로 전환한 유엔군이 공세 종말점에 와 있던 북한군의 전투의지와 능력을 결정적으로 꺾어버린 날이다. 작전의 중심에는 맥아더 장군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인천 자유공원에서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자고 외치는 무리가 있다. 그들은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고, 미군을 추방해 자주 통일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북쪽 입맛에 맞는 ‘연방제통일’을 하자는 사람들이다. 혈맹의 값진 희생이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일까.

 인천상륙작전은 유능한 군사전략가 한 사람에 의해 전쟁의 승패는 물론 국가의 존망도 결판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미 합참은 물론 참모들조차 회의적이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새로운 전선은 낙동강 방어선으로부터 멀리 격리돼 고립된다는 이유에서다. 1950년 8월 23일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 셔먼 해군참모총장 일행은 도쿄로 가서 맥아더 장군을 말릴 정도였다.

 그러나 장군의 결심은 확고부동했다. 작전 회의에서 “자연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문제며, 상륙지연은 북한군 전력의 총집결을 도와 낙동강 방어선이 크게 위협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인천을 장악하고 서울을 탈환하면 서울 이남의 적 보급로를 차단, 낙동강 전선의 적을 몰아내 북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렇듯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의 독자적 판단의 결과다. 대세를 정확히 읽은 대전략가의 안목이 돋보인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도 낭패를 본 작전이 있다. 바로 원산상륙작전이다. 낭패의 이유는 상륙지역이 인천에서부터 835해리나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점도 지적되지만 더 큰 문제는 원산 해역에 기뢰 수천 개가 부설됐다는 정보를 획득하지 못한 점이다. 정보전에서의 치명적 허점이다. 아무튼 기뢰라는 복병을 만나 상륙부대는 여러 날 먼 바다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육로로 진출한 지상군은 큰 저항 없이 이미 열흘 전에 원산을 점령한 상태였다. 필자는 ‘인천에 상륙한 병력을 재편성, 바로 추격 및 소탕작전을 폈다면 중공군 개입 전에 북진통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무튼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장군은 적의 허점을 찔러 기습의 원칙을 살렸으며,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의 지략과 통찰력, 확신에 찬 단호한 결단력이 낳은 결과다. 반면 원산상륙작전에는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명장도 실패한다’는 교훈이었다. 오늘 날 ‘C4ISR(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감시·정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풍전등화의 운명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맥아더 장군의 공헌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을 폄하려는 좌파들, 법치주의가 살아 있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체제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해야 하지 않는가. 혈맹의 피와 더불어 지켜낸 조국이다.

 작금에는 국회를 교두보로 삼아 활동하는 종북 혁명조직(RO)까지 등장했다. 전몰장병들의 넋을 기리며 조국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 수호의 결의를 다질 때다.(konas)

 고성윤(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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