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무기는 ‘빈자(貧者)의 핵무기’로  불린다. 적은 비용으로 제작이 손쉬운데다 소량으로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화학무기는 군인과  민간인은 물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인명의 대량학살만을 꾀한다는 점에서 인류가 개발한 ‘악마의 무기’라고 할 수  있다.

 화학무기의 끔찍한 역사는 1차 세계대전 때부터 시작됐다. 독일군은 1915년 벨기에의 이프르 전선에서 프랑스군에게 화학무기의 일종인 염소가스 공격을 감행했다. 독일군 진영에서 바람을 타고 온 노란안개를 연막탄으로 착각한 프랑스군은 참호  속으로 숨었다가 참혹하게 희생됐다. 프랑스군 5000여명이 숨지고 6000여명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세계 각국은 1925년 질식성·독성 가스사용을 금지하는 제네바 의정서를 체결했지만 값싸고 수월하게 적을 몰살시켜 전과를 거둘 수 있는 ‘사신(死神)의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중국에서 ‘이페리트’라는 치명적인 독가스를 살포해 1000여명을 살해했다. 독일 나치는 살충제로 만든 ‘치클론-B’라는 독가스로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이후로도 화학무기는 악명을 이어갔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1988년 화학무기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쿠르드족 5000여명을 학살했고, 이란과의 전쟁에서도 수백차례나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1990년대 중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내전에서도 세르비아군 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화학무기의 대량살상위협에 맞서 국제사회는 1997년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을 발효시켜 화학무기의 개발과 생산, 비축, 사용을 금지하는 한편 보유 중인 화학무기를 폐기하도록 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올해 8월 화학무기로 1300여명의 자국민을 살육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시리아 정부가 사용한 사린가스는 2차 대전 때 독일이 개발한 독가스로 1995년 일본 옴진리교 신자들이 도쿄 지하철역에 살포해 12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의 화학무기 폐기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양국 간 견해차가 커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시리아 정부가 뒤늦게 CWC에 가입하는 한편 유엔감시단의 검증을 허용하고 화학무기 포기 의사를 밝힌 것도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모면하려는 꼼수로 읽힌다. 이러다 화학무기로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뿌리째 짓밟은 시리아 정부에 대한 징벌은 고사하고, 사실상 ‘면죄부’를 주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가 앞선다.

 시리아 화학무기 참사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2500~5000t에 달하는 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은 시리아보다 훨씬 위험하다. 북한은 1961년 12월 김일성의 ‘화학학 선언’을 계기로 화학무기의 연구 및 생산시설 구축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61년 12월 인민군 당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인민군대를 화학화하고 화학전의 중요성을 인식하라”고 지시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인민무력부 산하에 핵·화학방위국의 총괄아래 육군은 연대급까지 화학소대를 갖추고, 해·공군사령부에는 반핵·반원자연구소를 설치해 생화학전에 대비하고 있다.

 북한은 유사시 사린가스나 신경작용제 VX와 같은 화학탄두를 탑재한 야포와 미사일로 한국의 주요 군사시설과 인구밀집지역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주한 미공군은 해마다 주요 기지에 대한 북한의 화학탄 공격 대비훈련을 실시한다. 사린가스의 경우 650t으로 서울시의 인구 30~40%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으로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북한이 비축한 화학무기는 남한  인구를 절멸(絶滅)시킬 수 있는 분량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의 북한정보 전문사이트인 ‘38노스(North)'가 최근 펴낸 ’북한의 화학무기 능력‘이라는 보고서도 눈길을 끈다. 이 사이트의 조셉 버뮤디즈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북한의 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건강한 수감자들을 유리 밀실에 넣은 후 가스를 투입해 이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관찰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이런 사실은 탈북자들을 통해 전해들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또 다른 탈북자도 버뮤디즈 연구원과 한 인터뷰에서 “서해의 한 섬에서 비슷한 화학무기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북한이 연간 4500t, 전시엔 1만2000t의 화학무기를 생산할 수 있고, 화학탄두를 탑재할 미사일 150기를 갖고 있으며 20여종의 화학무기를 제조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 중 겨자가스와 포스진가스, 사린가스, 독성 신경가스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과 그 대비를 각별히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올해 8월초 을지훈련 첫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가령 (북한군이 보유한) 탄저균 같은 생물학무기의 경우 치료제나 백신이 충분히 구비돼 있는지, 화학무기가 사용되면 군과 민간 모두 충분한 의약품 보급을 받을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고려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마 북한이 같은 민족을 화학무기로 공격할까하는 의구심은 북한의 핵무기가 실전용이 아니라 체제 유지용 협상수단이라는 착각만큼이나 안일한 생각이다. 북한은 190개국이 가입한 CWC를 끝까지 외면하는 4개국 중 하나다. 아울러 화학무기로 적군과 동족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한 주범들은 대개 권력의 광기와 폭력에 굶주린 독재정권이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쯤 되면 지구상 최악의 절대 독재국가인 북한의 화학무기 공격은 가능성이 아닌 기정사실로 봐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북한이 시리아와 화학무기 협력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조지 리틀 미 국방부 대변인은 올 9월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과 시리아가 화학무기 관련 정보에 대해 논의하거나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시기 김관진 국방장관도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과 시리아의 화학무기 커넥션 가능성이  있다”며 “부산항에서 관련 의혹이 발견돼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시리아 사태를 좌시해선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과 끈끈한 대량살상무기(WMD)  커넥션을 갖고 있는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만행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인류의 이름으로 단죄돼야 한다.

 시리아 사태가 흐지부지된다면 북한에게 나쁜 선례만 남길 뿐이다. 일각에선 미러 양국이 합의한 시리아 사태의 외교적 해결방식이 북한에게 ‘협상카드’를 하나 더 쥐어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북한이 시리아 사태를 보면서 화학무기가 핵무기만큼이나 정치적 군사적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간파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악마의 무기’에 기댄 반인륜적 정권은 결코 유지될 수 없으며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는 교훈을 남기는 것은 국제사회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라고 본다.(konas) 출처: 월간자유
 
 윤상호 (동아일보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