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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오늘에도 살아있다

Written by. 최명재   입력 : 2014-03-28 오전 9: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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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 경술 3월 26일 오전 10시, 안중근 의사는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해 연해주로 망명, 의병을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하다가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총살하고 뤼순 감옥에서 불꽃같은 삶을 마감했다.

 관동도독부 히라이시 고등법원장은 안 의사가 상고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동양평화론’ 집필을 완결할 때까지 사형을 연기해 주겠다고 흔쾌히 대답해 놓고 일본 정부의 긴급지령에 따라 서둘러 형을 집행한 것이다. 재판도 형식적으로 심문, 변호, 구형, 선고 등 일주일 만에 속전속결로 끝냈다. 이것은 공판자체가 원인무효다.

 안 의사는 사형집행 당일 아침 자신의 공판정 호송을 맡았던 일본군 헌병 치바 도시치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이란 유묵을 써주었다. 이 같은 의사표시는 군인으로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안 의사를 일본의 대륙진출을 방해한 인물 혹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테러리스트, 즉 범법자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양국의 근대사가 극단적으로 충돌한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이토 처단은 단순한 개인 관계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기대하기 곤란하다.

 안 의사는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의 침략정책을 꾸짖고 항상 분쟁이 끊이지 않는 뤼순을 동북아의 중심지로 삼아 일본과 한국, 중국 세 나라가 자주독립국으로 힘을 합쳐 오늘날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협력체제를 구축하자고 제의했다. 동북아 개발은행 설립과 공동화폐 발행 그리고 상설위원회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고 구미 열강의 침략을 막아내자는 것이다.

 안 의사의 이러한 대세판단이야말로 청일전쟁에 이어 태평양 전쟁과 일본의 항복 그리고 오늘날의 동북아 상황을 그대로 적중했다. 100년 전 인류의 보편적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던 안 의사의 선구자적인 동양평화사상은 오늘날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론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 간의 군비경쟁과 냉전의 잔재가 남아있는 동북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안 의사가 제안했던 지역협력체제 강화를 통한 기능주의적 접근방안에서 우리 모두는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 의사는 이렇듯 진정한 동양평화의 수호자였으나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이역땅 뤼순에서 3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유해는 아직도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른 채 그의 유언대로 고국으로 봉환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안 의사는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불꽃처럼 살다 갔지만 숭고한 애국정신과 평화애호사상은 이 땅의 후손들이 본받아야 할 시대정신으로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일본인들이 진심으로 참회하고 안중근을 한민족의 영웅으로 그리고 자주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살신성인한 의병 장군으로 평가할 때 비로소 한일 간의 근본적 화해가 열리는 날이 될 것이다.

최명재 (안중근의사숭모회 연구위원)

※ 출처 : 국방일보 28일자 18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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