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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 칼럼〕교황방문에 기대하는 것

Written by. 류근일   입력 : 2014-08-15 오전 7: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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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감히 종교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겸손하게 그 가르침들을 경청할 따름이다. 그러나 일부 사이비 종교 현상을 목격할 때마다 “저러느니 차라리 종교를 믿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사이비 종교현상은 사람을 꽉 막히게 만들고, 무식하게 만들고, 제정신 아니게 만들고, 교주와 간부들이 돈과 도박과 음행(淫行)에 빠지는 사례도 심심찮게 있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으라 하고, 가정보다 종교권력에 충성할 것을 요구해 가정을 파탄시키는 사례도 종종 있고, 무엇보다 ‘안’과 ‘바깥’을 첨예하게 갈라놓음으로써 증오와 단절과 적의(敵意)를 고취하기도 한다.

 종교를 믿는 일도 그래서 전두엽 건강(정신의학적 건강), 지성의 인프라, 배움(학문)의 인프라, 인문교양의 인프라에 기초해서, 그리고 ‘믿음’ 외에 적절한 만큼의 이성(理性)의 참여도 동반하면서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순전히 혼자만의 입장으로 떠올려 본다.

 열성적이기 위해선 의심하지 말고, 합리주의에 빠지지 말고, 세속공부에 매이지 말고, 과학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더러 듣는다. 합리주의, 세속학문, 과학주의(scientism)의 한계와 부작용은 물론 종교가 아니더라도 이미 다 지적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게 전적으로 배제돼도 문제는 크다. 그럴 경우 엄습하는 것은 몽매주의(蒙昧主義, obscurantism)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무지몽매한 상태에 가두어 두는 것이 근대 이전의 종교독재 시대에 얼마나 흉악한 일들을 벌어지게 만들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래서 공자님은 종교에 대해선 ‘존중하면서도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금수(禽獸)가 아닌 인간답게 또는 군자(君子)로서, 인격자로서 사는 길을 추구했다. 그가 가르친 군자 상(像)은 종교적인 성인(聖人)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최고 수준의 전인(全人)적 인간, 영롱하고 품격 높고 아름다운 인격이었다.

 나야말로 왜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중얼거리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이쯤해서 스톱하려 한다. 더 나아갔다가는 나도 ‘썰’꾼이 되기 때문이다. 요 몇 달 동안 유병원의 행동거지에 관해 듣자니 이런 상념이 떠올랐을 뿐이다.

 때마침 로마 가톨릭 교회의 Pope가 한국을 방문했다. 학문과 신앙, 이성과 믿음을 양립시키면서, 건강한 믿음이 불건강한 광신과 어떻게 다른지를 온몸으로 수범하는 그의 방문이 우리사회에 만연한 온갖 종류의 ‘사이비 광신’을 씻는 유익한 계기가 됐으면 한다. ‘사이비 광신’의 전형은 특히 휴전선 이북에 있다는 것을 각별히 주목해 주면서, 그래서 그 광신의 제물로 희생당하는 21세기 아우슈비츠, 북한 수용소 체제 수감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해주면서 말이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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