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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도문(圖們)에서 본 北, 통일은 언제?

"아무리 하나된 한반도가 우리의 소원이라 해도 민족이 자멸하고 대한민국이 파괴되는 한반도는 정의가 아니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4-10-22 오후 5: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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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우리 주변에서는 ‘하나 되는 한반도’ ‘통일 대박’과 같은 말들이 회자되고 전문가와 많은 사람의 눈과 귀, 입을 통해 널리 전파되는 양상이다. 또 ‘지금의 북한은 어제의 북이 아니다’란 말에서 ‘상상을 배제한 북한 변화 물결’ 등과 같은 다소 과장된 표현들도 소문을 탄다. 특히 이 같은 상황은 북·중 국경, 접경지대를 통해서도 감지되고 있다는 소식이 뉴스를 타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철저한 주민 통제, 핵과 미사일로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를 우롱하는 깡패집단,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3대 세습과 우상화가 빛을 발하고 선군정치가 지배하는 사회, 에너지고갈 식량난으로 배급경제는 바닥나고 우후죽순 장마당이 기지개를 켜는데도 통제는커녕 구경꾼으로 전락해야 하는 당 일꾼들, 북 경제체제에서 그런 일들이 가능할까?

 지난 8월 중순 북·중 국경지대인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국경도시 도문(圖們)시를 다녀왔다.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북·중 교역 창구이자 생필품 등 다양한 물류가 통과하는 ‘도문대교’를 비롯해 강 건너 함경북도 남양시에 속한 마을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지역은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 발해의 웅자(雄姿)했던 조상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난날 조국을 떠나 남부여대(男負女戴)해야만 했던 한민족이 일제 강점기 치욕스런 핍박을 받으면서도 봉오동전투 등 1920년 초반의 항일 독립운동의 유적들도 폭넓게 분포하고 있어 자긍심과 함께 한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지인들과 더불어 돌아 본 도문시는 국가 대 국가의 접경을 이루는 지역답게 어딘가 을시년 스럽고 썰렁한 국경 마을(도시) 모습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조선족과 중국인이 뒤섞이고, 탈북자들이 도강하기에 삼엄한 조치가 이루어진다는 곳. 조선족의 억양을 통해서도 ‘북한풍’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의 느낌은 훨씬 더 강렬했다. 이후 룡정도 그렇지만 특히 이곳에서 들어본 조선족(북한인?)의 말 속에서는 더 억센 북한특유의 언어 화법과 상가 상호(商戶)에서도 엿보이는 ‘남새상회’ ‘인민병원’ ‘주가(酒家)’와 같은 익숙지 않은 어휘들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우선 필자의 관심은 ‘도문대교’에 있었다. 북-중 연결고리 ‘도문대교’를 드나드는 차량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1941년 준공된 ‘도문대교’로 북한에서 들어오는 차량은 아예 보이지 않고, 중국에서 물자를 가득 실은 대형트럭만이 가뭄에 콩 나듯 드물게 통과할 따름이었다.

 다리에 들어서고자 하자 비용 20위안을 내라고 한다. 출발지점으로부터 북측 방향으로 약 70여 미터 부근 북·중 국경선이 맞물리는 지점에 붉고 하얀 두 개의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을 연해 ‘여기서는 변경선’이란 한글과 중국어 표기가 가로 막으며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지점부터 중국 사람을 제하고 한국인 관광객은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마치 6·25한국전쟁 중 포로교환으로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운명의 다리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경계선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아 가슴을 시큰하게 한다. 중국인은 자유롭게 넘나들어도 되지만 ‘한국인은 돌아서야 한다’며 두 눈을 번뜩이는 중국 공안원의 시선이 유독 찐득하게 느껴짐은 분단 민족만이 감지하는 서글픔인가 보다.

 두만강 변은 퍽 평화스러워 보였다. 도문대교 아래 강폭 약 30~40미터의 황토 물을 배경으로 노란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한여름 8월의 정취를 아름답게 장식하지만 강 건너 북측 마을은 한낮임에도 도대체 인적이 끊긴 적막강산처럼 고요하기 그지없고 제대로 된 나무 한포기 보이지 않는 민둥산은 짙은 어둠으로 싸인 듯 강 안팎이 서로 대비돼 안타까움은 더해 간다.

 어디 그뿐인가. 도문대교에서 불과 멀지 않은 곳, 채 10미터 강폭이 되지 않을 짧은 거기에서 2009년 3월 탈북자를 취재하던 미 케이블 ‘커런트(current) TV’의 한국계 유나 리, 중국계 로라 링 기자 2명이 북한군에게 붙잡혀 간 곳이라고 동행한 연변과학기술대 식자 분이 일깨워 다시금 분단국가, 북한체제가 어떤 체제를 취하고 있는가를 되새기게 한다.

 그런가하면 그 옛날 4군6진을 개척한 조선 김종서 장군에 얽힌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 ‘개산툰’에서 만난 연세 그윽한 할머니 한 분의 “지금도 가끔가다 밤이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요. 가만히 나가보면 남루한 옷차림의 북한 사람들이 불안하게 서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우리도 가난하지만 어찌나 불쌍한지. 옥수수나 고구마를 주면 먹지 않고 그냥 들고 가요. 다른 누군가에게 줘야 한 대요”.

 아직 우리가 익숙한 북한이다. 인천 아시안 게임에 북한 측 선수가 참가하고, 북한최고 실세 3인방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체육위원회 위원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인천을 방문해 우리 당국자들과 만나 웃음띤 대화 시간을 가졌지만 불과 3일 만에 북 경비정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월경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지난 10일 우리 민간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한 점을 빌미로 민통선 이남 민가를 향해 고사총을 발사하는 섬뜩함을 자행했다.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북한 군인이 넘기도 했다.

 어떻게 북한이 변하고 있다고 단정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대화 일면 도발의 북한 이중성이 어떻게 점철되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 되는 한반도’ ‘통일 대박’과 ‘지금의 북한은 어제의 북이 아니다’ ‘상상을 배제한 북한 변화 물결’ 등, 얼마나 듣기 좋고 희망찬 말들인가?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아무리 통일이 급하고, 아무리 하나 된 한반도가 우리의 소원이라 해도 민족이 자멸하는 한반도, 대한민국이 파괴되는 한반도는 그 누구에게도 정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문시의 북에서 남으로 무심히 흐르는 두만강 물줄기와 강 건너 나무 한그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남양시 한 가옥을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낮게 깔린 노래 가락이 흐르자 이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언젠가는 도문시가 아닌 남양시에서 두만강을 바라볼 날이 있게 되기를 염원하면서... (Konas)

이현오(칼럼리스트, 수필가. 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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