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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유격부대 전몰대원 위령제

참전한 병력만 무려 4만 여명...900여 명의 대원 주검 찾지 못해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5-04-24 오후 3: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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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여 년 前, 천륜과 순리를 짓밟는 공산주의자들로 인하여, 고통 받는 부모형제를 구하고 나아가서는 통일 대한민국을 이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두고 온 고향 산하에 머뭇거림 없이 출정하셨던 임들...그대들은 그 어떤 정규군보다도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퇴로도 없는 적진에서 치열하게 항전하다가 장렬하게 대한민국 수호신으로 산화한 진정한 이 나라의 영웅들이십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 하나 건지지 못한 채, 이곳 현충원에 차가운 비석만 우뚝 서 있는 이 비극적 현실이 당신들과 생사를 함께 하다 살아남은 전우들의 마음을 더욱 비통하게 합니다. 온 세계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지구촌을 이루고 있는 이 21세기의 대명천지에 그대들이 목숨 바쳐 구하려던 이 한반도만이 유일하게 60여 년 前 그 분단 상태에서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 할 때, 살아남은 저희들은 가신임들 영령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민족과 나라를 구하는 일인데, 군번이나 계급 따위가 무엇이냐면서 어떤 보수와 대가도 거부하고, 오로지 애국애족과 통일염원 하나만 뜨겁게 간직한 채, 사지를 향해 무한한 긍지를 가지고 떠나시던 당신들의 그 당당하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한인섭 영도유격부대전우회장의 추념사에서)

 ▲ 영도유격부대 전몰대원 위령제가 24일 오전 서울국립현충원 유격부대 전적 위령비 앞에서  영도유격대전우회 회원 및 유가족, 정관회 서울남부보훈지청장, 특전사 부사관단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도유격대전우회 추최로 열렸다. ⓒkonas.net

 군번도 계급도 없었다. 그렇다고 보수도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부모형제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출정했다.

 영도유격부대 전몰대원 위령제가 24일 오전 서울국립현충원 유격부대 전적 위령비 앞에서  영도유격대전우회 회원 및 유가족, 정관회 서울남부보훈지청장, 특전사 부사관단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도유격대전우회 추최로 열렸다.

 이날 한인섭 영도유격부대전우회장은 추념사를 통해 지난날 함께했던 유격대원들의 활동을 회고하고 생을 달리한 전우들의 넋을 위무하면서 “구천에 떠돌고 있을 영령들을 생각하면 목이 메어 온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어 영령들을 향해 “진화되어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고, 어둠이 짙어지면 새벽이 오는 이치를 우리는 믿는다”며 “이 나라가 통일되는 그 환희의 날, 우리는 당신들의 유골이라도 반드시 찾아내어 대한민국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이 안식처에 모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추도사 하는 정관회 서울남부보훈지청장. ⓒkonas.net

 정관회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은 추도사를 통해 “임무를 수행하던 중 900여 명의 대원들이 ‘조국의 별’이 되었지만 주검조차 찾지 못하고 조국과 민족의 영원한 수호신으로 우리의 가슴에 뭍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며 “영령들의 피끓는 애국심과 값진 희생이 없었다면 결코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되새겼다.

 그러면서 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국민들에게 “우리나라를 어떻게 찾고, 지켜왔는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 왜 통일을 해야 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리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헌화. 분향하는 한인섭 영도유격부대전우회장. ⓒkonas.net

 영도유격부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집단이 남침을 개시하자 북한 전역 및 38도선 접경지대에 거주하던 많은 청년과 학생들이 지하로 은신, 도처에서 반공투쟁 단체를 조직하여 무장봉기를 감행하였으며, 특히 1950년 12월부터 1953년 7월 휴전 시까지 동서해 연안도서 및 내륙지역에서 자유의 의병으로 유격작전을 전개하였다.

 이에 참전한 병력은 무려 4만여 명에 달하였으며 이들은 공산군 2개 군단 이상을 견제하는 전략적 가치를 지녔었고, 1개 사단에 해당하는 병력 및 장비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한편, 군사정보 수집 및 공수특공작전, 조종사 구출 및 동서해 제해권 확보 등에도 크게 기여 하였다.

 이 부대는 휴전 後 국방부 제8250부대로 통합되었다가 1954년 2월 육군부대 편입 후 해체됐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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