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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한국산악회 독도조사, 우리 독도인식의 이정표가 되다”

(사)한국산학회, 창립 70주년 기념 독도 학술대회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5-08-07 오후 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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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2014년 기존 교과서에서 독도가 부분적으로 기술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을 교과서 해설서에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또 올해에는 ‘일본의 고유영토’, ‘한국의 불법점거’ 등을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대폭적으로 기술하는 등 교과서 검정을 통해서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는 독도 교육을 전면적으로 강화하였다. 이는 일본 일본의 교과서가 동북아의 평화적 미래보다는 아베정권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사단법인 한국산악회(회장 장승필)와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학준)이 7일 오후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산악회 창립70주년 기념 독도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했다.

 ▲ 7일 오후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사단법인 한국산악회(회장 장승필)와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학준)이  ‘한국산악회 창립70주년 기념 독도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했다.ⓒkonas.net

 한국산악회는 이날 학술대회를 통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역사적·법률적·지리적·정책적으로 접근하면서 “산악회가 일찍이 1947년 8월16일 과도정부 독도조사단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를 조사를 실시하였다”며 “본질적으로 독도와 관련하여 식민시기와 해방 후 까지도 자행하고 있는 일본의 불법행위를 공식 조사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후 우리 정부는 물론 한국인, 한국학자의 독도 인식과 정책에 중요한 이정표 구실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1948년 미군의 독도폭격 사건과 1952년 평화선을 둘러싼 일본의 일방적인 독도영유권 주장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적극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1947년 최초로 실시한 독도 실측 등 독도에 관한 종합 학술조사로 얻은 자료가 큰 힘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장승필 한국산악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광복 이후 우리의 선배들은 독도에 상륙해 일제의 뿌리를 뽑아내고 이곳이 한국의 영토임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이정표를 세웠다”며 “지금우리 국민 누구나 독도는 우리 땅임을 인식하게 된 시작이 바로 한국산악회의 독도상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이날 독도학술대회에는 김호동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교수, 박현진 국제해양법학회 이사, 송호열 서원대학교 前 총장, 신순식 경상북도 독도정책관 등이 나와 한국산악회가 1947년에서 53년 연간에 실시한 독도조사의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 의미를 재조명 했다.

 독도산악회는 1947년 이후에도 1952년에 독도조사에 나섰으나 미군 독도폭격으로 입도할 수 없었고, 1953년 독도에 입도하여 학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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