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대한 염려
부자는 가난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 실상을 모르니까! 가난을 몸소 겪어본 사람만이 가난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Thorstein Veblen(1857-1929)은 노르웨이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부모의 아들로 그는 가난 속에서 자랐고 가난 속에서 학업을 마치고, Yale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Chicago 대학, Stanford 대학 등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약하면서, 가차 없이 자본주의의 비행과 맹점을 비판하였습니다. 그의 저작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입니다.
그는 그와 동시대의 경제학자들의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경쟁을 좋아하는 존재(Being)이고, 일(Work)은 본디 즐겁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그가 가진 심리학과 인류학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경제학은 ‘영원불변의 진리의 체계’(A tem of eternal truths)가 아니고 다만 ‘변해가는 인간의 제도들’(Changing human institutions)의 지시에 따를 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산업(Industry)과 사업(Business)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였고, 사업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사회를 압도하고 있음을 개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유별난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낱말도 경제학계에서 쓰이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미국의 경제공황(Great Depression)이 1929년 그가 죽기 바로 석 달 전에 터진 것입니다. 그의 예언이 그의 생전에 적중한 셈입니다. 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의 New Deal 개혁은 Veblen의 경제에 관한 생각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국은 오늘 ‘산업’과 ‘상업’이 제대로 분간이 안 되어 혼란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상업’에는 도덕과 윤리가 없는 것도 같습니다. “돈만 벌면 된다”는 그릇된 처세가 우리들의 삶에 내재했던 질서와 존엄성을 상실케 하여, 삶 자체가 기쁨이 아니라 괴로움이 되었습니다. 돈이 목적이고 돈이 우상인 그런 사회에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과 원망의 소리가 매우 높습니다.
다시 Veblen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자본주의가 시련에 직면한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돈’이 인생의 ‘모든 것’이 되면 이 세상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돈’보다 100배, 1000배 소중한 것이 ‘사람’입니다. 지구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돈’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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