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통합정신
대한민국 현대사가 순탄하지 않았던 만큼 이에 대한 논란이 심심찮게 불거지곤 했는데 ‘건국절 논쟁’은 가장 대표적인 현대사의 논란 중 하나이다. 이 논란은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을 정함에, 건국일이 언제인지에 대한 논쟁을 가리킨다.
이와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숫자가 바로 4·13과 8·15이다. 본고는 이 숫자 중 어느 것이 타당한지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두 숫자 모두 대한의 통합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창조된 역사의 숭고한 결과물인 점을 밝히고자 할 따름이다. 특히 아래에서는 대한민국 아홉 번째 정부기념일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의 통합 지향적 성격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에서는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있었다. 3·1운동은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천명한 독립운동사 최대의 쾌거였으나, 통합된 독립운동 체계가 정립되지 않아 3·1운동이 조직적 독립운동으로 지속되지 못한 점은 향후 독립운동의 원활한 전개를 위해 반드시 보완해야 할 한계였다.
이에 독립운동을 통할하는 조직적 체계 마련의 필요성을 절감한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임시정부의 수립을 당대의 최급무로 인식하여 마침내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 선포되었다. 이로써 교통국과 연통부가 설치되고 홍보체계가 마련되는 등 부족하나마 통합된 조직체계를 갖추어 독립운동의 물리적 역량은 한 층 진일보할 수 있었다.
물론 임시정부 수립 이전에도 독립운동은 지속되었지만, 이 기간 동안의 독립운동에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독립운동의 명의, 즉 대외로 표방할 독립의 주체 문제였다. 이천만 민족을 대표하는 정부 혹은 국가의 부재는 개인 혹은 단체의 난립을 가져왔고, 이는 독립의 국제적 여론 조성은 물론 독립을 원하는 대한의 존재를 알리는 일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이천만 민족을 대표하는 정부의 수립은 이천만 개개인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명의와 자격으로 통합함으로써, 독립운동의 명분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수립 선포 2일 전에 10개조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공포했다. ‘신인일치(神人一致)로 중외협응(中外協應)한다’는 임시헌장의 선포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임시정부의 통합적 성격은 임시헌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으로 함’이라 규정한 제3조가 있는데 이는, 과거 비합리적 계서제에 의해 야기된 갈등과 분열의 과오를 떨쳐 버리고, 미래 대한민국의 사회통합을 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제10조에서는 ‘대한민국은 구 황실을 우대함’이라 천명하여, 과거와의 화해는 물론 제1조에서 천명한 민주공화제와 배치되는 이념인 복벽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세력을 감싸 안는 이념적 통합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통합에의 노력은 수립 이후에도 이어졌다. 사실 1919년 한반도와 그 주변에는 7개의 임시정부가 존재했다. 상해 외에도 한성(漢城)과 블라디보스토크에 두 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표면적으로는 독립운동의 분열이 걱정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각 정부의 요인들은 대한독립이라는 단일의 목표를 위해 정부통합을 추진했고, 마침내 1919년 9월 6일 통합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는 특히 외교론·무장투쟁론·실력양성론 등 독립운동 방법론의 통합은 물론 민족주의·사회주의 등 이념적 측면에서도 통합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지대한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임시정부의 통합적 측면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의 대내외적 취지 혹은 의의부터 기본적으로 독립운동의 단결이라는 통합적 성격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임시헌장에서도 임시정부는 사회의 통합을 중시했으며, 통합 임시정부의 출범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수립 이후의 행보 또한 통합과 단결의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렇듯 통합과 단결의 정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톡립정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숭고한 통합의 정신은 ‘건국절 논쟁’ 외에도 광복 이래 70년 이상 지속된 각종 분열과 갈등으로 훼손되고 있다. 오늘날 극에 달한 반목과 분열상은 일일이 거론키 어려울 만큼 만연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시정부가 보여준 통합정신을 97년이 지난 오늘 되살려 봄이 어떠할까.
이에 필자는 2015년의 분단극복 캠페인을 대승적으로 계승하는 갈등극복 캠페인의 활성화를 제안해 본다. 분단을 비롯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다양한 분야의 갈등과 분열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것은 상술한 임시정부의 통합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며, 이 정신의 결정체인 대한민국을 더 나은 국가로 만들어 나가야 할 우리의 임무를 방기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konas)
오제호 / 경기북부보훈지청 선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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