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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런 후손으로 부끄러워해야 하나?

아, 어쩌다 독립운동가 ‘순국지’가 쓰레기더미로, 민족시인 묘가 동물의 배설물로 덮여야 하는가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6-05-28 오후 11: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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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9일 한 방송사 뉴스가 일제 암흑기에 민족혼을 담아 노래한 요절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 관련한 보도를 전했다. 중국 용정시 외곽에 위치한 윤동주 선생의 묘소가 방목한 300여 마리 양떼들에 풀이 뜯기어지고 주변으로는 양들의 발자국과 배설물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윤동주 묘역이 무연고 묘지와 함께 공동묘지에 있어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과 함께 더 큰 문제는 인근 공동묘지 일부가 개발 사업으로 이장을 시작한다는 것과 이로 인해 자칫 윤동주 선생의 묘역도 언제 헐릴지 모른다는 가슴 철렁한 보도였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을 비롯한 해외 각지로 반출된 해외 유출 문화재를 포함해 특히 중국 내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 열사들과 당시 활동 거점으로 이용했던 시설물들이 개발붐에 따라 훼손이 불가피해진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눈덮힌 만주벌판을 말갈기 휘날리며 일본 군경과 맞서 대한인의 기상을 만방에 떨쳤던 선열들에 대해 한없는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피할 도리 없어진다.

 2013년 중국 지린(吉林)성 용정의 윤동주 선생 생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잘 다듬어진 공원화 된 선생의 생가 이모저모를 둘러보며 선생께서 어린 시절 공부했던 방과 나이 어림에도 빼앗긴 나라의 소년으로서 서러운 심정을 자주 아버지께 물으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을 툇마루에 앉아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의 옥수수 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반주 삼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하는 그의 시를 일행을 대표해 낭송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선침략의 원흉인 히로히토 일왕(日王)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체포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봉창 의사(1901-1932)의 순국지 주변이 지역 주민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 더미에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언론에 의하면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이봉창 의사 순국지는 이 의사가 순국한 이치가야 형무소의 옛터로 현재는 놀이터로 개방돼 있고 놀이터 한구석에 ‘형사자위령탑(刑死者慰靈塔)’이 세워져 있으나 지역주민들도 이곳이 어떤 역사적 사실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쓰레기 수거장으로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내용은 국제사회에 한국을 널리 홍보하고 있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에 의해 확인되었다. 서 교수는 또 이런 사실을 일본의 해당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안내문구 설치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봉창 의사가 누구인가? 효창공원에 가묘로 봉분만 설치된 안중근 의사 묘소와 더불어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함께 ‘3의사(義士)로 일컫는 독립운동의 영웅이 아닌가?

 김구는 한인애국단의 1차 거사로 이봉창 의거를 준비했다. 이봉창은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부두노동자 등으로 막일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전전했다. 1928년 교토에 히로히토 천황의 즉위식 구경 차 갔다가 경찰의 검문에 걸려 9일간 유치장 생활을 했던 이를 계기로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되고, 한인애국단 1차 거사(일왕 저격 구상)를 준비하던 김구는 일본어를 잘하고 도쿄 거주한 적이 있는 이봉창과 민족의식에 눈이 뜨고 스스로 거사 실행의지를 강하게 가진 그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백범은 거사에 소요되는 자금과 수류탄 2발을 전달했고, 1932년 1월8일 거사가 진행됐다. 히로히토가 이 날 육군 관병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일왕을 향해 군중 속에 섞여 있다가 수류탄을 투척했다. 그러나 수류탄은 위력이 약해 궁내대신이 탄 두 번째 마차에 손상을 입혔을 뿐 저격은 실패로 끝났다.

 이에 이 의사는 스스로 “내가 폭탄을 던졌다”고 외쳐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봉창은 그해 9월 도쿄 법원에서 일왕을 살해하려 했다는 이유로 ‘대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아 10월 10일 교수형이 집행, 순국했다. 그의 나이 서른둘이었다.

 학계 연구 조사에 의하면 독립운동과 관련된 유적지 등의 훼손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조사 대상 유적지 가운데 멸실되고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이 868곳, 521곳은 변형됐고, 9곳도 상당부문 훼손돼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1460곳은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과 변형이 심각해 유적지의 기능을 잃은 곳도 있다고 한다.

 어찌 나라를 빼앗긴 민족에 있어 이 현실뿐이겠는가? 현재 해외 각지에 흩어져 있는 대한민국의 국외문화재는 16만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다.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문화재는 해외 20개국에 분포돼 있는데 이 중 27.7%에 해당하는 4만4천365점이 미국에, 42.2%인 6만7천708점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가 불법으로 빼간 것이다. 항간에는 개인소장품까지 치면 대략 45만점에 달한다는 얘기도 이어진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국제질서에서 힘이 없는 나라는 강한 나라에 굽힐 수밖에 없는 건 하나의 정설이다.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쳐가며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해외를 유랑하며 독립의 기치를 높이 추켜올린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선열 앞에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해외에 흩어진 문화재를 찾고, 훼손된 독립운동 유적지를 고증을 통해 복원하고, 쓰레기 더미에 묻혀 가는 이봉창 의사의 순국지를 말끔하게 단장하고 윤동주 시인의 묘소가 더 이상 양떼들의 배설물로 뒤덮이지 않게 하는 것은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요, 선각자들에 대한 후손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식이자 당연히 취해야 할 도리이기 때문이다. 관계당국의 보다 넓은 시각과 노력이 가미되어야 할 것이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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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ldn4177(didn)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가의 묘소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2016-05-30 오전 9: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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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9.30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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