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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⑪〕마음을 나르고 정을 가르치는 선생님

Written by. 이준혁   입력 : 2016-09-06 오후 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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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입선’ 글임. (편집자 주)

 어느 순간 당연하던 것들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순간이 있다. 나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기 전 윤리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다. 어릴때 부터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라왔다. 항상 공부도 열심히, 학생들을 자주 접하기 위해 교육봉사도 자주 하면서 나는 나름대로 나의 삶과 나의 미래에 대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나 스스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같은 곳에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나의 생활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하고 나는 매일 보던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아닌 동네 어르신들의 신문을 보게 되었고,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나지막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나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을 한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매일 복지관으로 찾아온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매주 반복되는 일과는 자연스레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월~화요일에는 지역에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께 목욕봉사를 갔고, 수요일에는 제주의 반 바퀴를 돌면서 200가구가 넘는 곳에 식사를 배달했다. 목요일에는 수거한 도시락을 세척하고, 금요일에는 지역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몸에 익어서 너무 쉬운 일도, 그렇다고 너무 어려워서 하기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사람이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때때로 날카로운 어르신들을 만나 모난 말씀에 상처를 받기도하고, 어느 날은 마음씨 좋은 어르신이 웃으며 달래주셨기에 나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한걸음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

 나는 배달이 좋았다. 아름다운 제주도에 살고 있으니까. 배달을 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오후 해가 뉘엿뉘엿 할 때까지 해안도로를 달리며 배달을 하곤 했다. 나도 배달 지리에 익숙해져 갈 즈음 지역의 어르신들도 나를 귀여운 강아지처럼 예뻐해 주셨다. 어느 할머니는 비가와도 항상 문 앞에 나와 반겨주시고 춥지 않으냐며 누군지도 모르는 나의 손을 꼭 잡아주셨다. 매번 나를 아껴주시는 할머니가 나도 너무나 좋았고, 복무요원을 하면서 정말 뿌듯하고 마음이 따뜻한 경험이었다.

 추운 날엔 내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생각에 몇 번이나 다시 끓이고 있던 커피포트에서 타주시는 할머니의 커피는 힘든 업무도 잊게 만들었다. 잠시동안 복지관의 사정으로 몇 주간 봉사자가 바뀌어서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를 찾아 뵈었을 때 할머니는 반가움보다 아쉬웠던 얼굴로 말씀하셨다. “무사 안와시냐! 다른 사람들은 큰큰허고 막 무서원 얼굴도 곱져부렀져!” 왜 오지 않았느냐, 다른 사람들은 무섭고 두려워 문도 열지 않았다며 손에 꼭 쥐고 계시던 음료수캔 하나를 주셨다.

 할머니는 이제 한번이라 도 더 보아서 됐다며 늙은이가 이제 살면서 기억에 안고 갈 예쁜 손주가 생겼다며 고맙다 말씀하셨다. “할머니 저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 식사 잘 하시고 계시죠?”라고 말하면서도 어디선가 나오는 뭉클함이 나를 두근두근하게 했다. 나를 기다리고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토록 눈물이 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식사를 배달하는 것보다 일주일에 한번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 어린 손주 같은 모습이 더 중요한 마음배달이라는 것을 알았다. “보고 싶었다.”는 말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하고 값진 말인지 그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마음을 배달하는 사람이 분명할 것이다. 꾸준해지고 싶었다. 기다리는 분들은 우리가 가지 않으면 찾아올 수 없음을 알기에 비가와도 눈이 와도 항상 내가 찾아뵙고 싶었다. 이렇게 꾸준함을 배우고 있었다.

 마음이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집집마다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좋은 어르신들도 많이 계시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 혼자 지내시면서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온 분들을 만날 때는 나도 조심스러워 진다. 대상자인 할아버지는 전에는 좋은 집에서 멋진 일을 하면서 살아오셨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배달을 갈 때는 항상 소리를 지르고 내가 싫다며 배달도 원치 않으신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감정소모가 심한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느 날은 입구에 도시락만 두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나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고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집을 떠나 병원으로 가셨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많이 아프셨고, 혼자서 끼니도 거르며 사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먹지 않아 상해버린 도시락 통을 수거하고 돌아가면서 무거운 몸과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부담스러웠다. 어쩌면 내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한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나를 싫어한다고 소리치던 그 모습이 고독에 힘들어하는 할아버지가 내는 마지막 목소리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아프다고 소리치기 전에 나는 알아챌 수도 있었다. 그 이후에 나는 모든 분들께 한 번 더 이야기를 건넸고, 그렇게 나는 잠시나마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을 배웠다. 그리고 앞으로 만날 모든 어르신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가지마세요. 이곳에 오래도록 남아주세요.

 조금씩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나는 어르신들의 정을 느끼고 그 깊은 연륜에서 오는 마음을 전달받고 있었다. 목욕을 도와주는 한 번의 손길,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에게 전해지는 따듯한 반찬 내가 드린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마음을 주시는 어르신들이 있어서 나는 마음으로 일을 하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매일 같은 과업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왜 해야 하는가 보다는 일하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점차 내가 느끼는 나의 세상도 변화하고 있었다.

 새로운 만남은 신선한 충격을 주듯이 ‘이동 경로식당’을 하는 일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매주 마을 단위로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300명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경로식당 사업 진행을 도우면서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 뵈었다. 마을마다 도와주시는 많은 봉사자가 있었고, 그분들을 돕는 다른 지역의 단체와, 봉사를 원하는 많은 기관이 모여서 매주 하나의 팀이 이루어졌다.

 아침 일찍 마을 경로당으로 어르신을 모시러 가는 자동차, 어르신이 도착하면 안내하는 직원들, 대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공연, 혈압, 당뇨를 체크해주는 보건소까지 매주 많은 분들 이 마을을 위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다. 어르신 분들은 매주 와주어 너무 고맙다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도 모두 감사하다. 고맙다며 우리가 해온 일들보다 너무나 과분한 감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들이 너무나 많다. “밥은 집에서도 대충 먹을 수 있지, 하지만 여기는 밥을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먹으러 오는 거야. 대화를 먹는 거야”

 나는 몰랐다.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가 식사보다 사람이 고프고, 쌀보다 대화가 필요한 것을. 어린 나이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사람과 함께 살기 때문이라고 깊게 느낀 경험들이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은 너무나 길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끝나고 나서는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일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향한 봉사라고 느껴졌고 나는 봉사의 대가보다 더욱 값진 경험을 선물로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꿈이 생겼다.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미래의 교사로서 항상 같은 그림을 그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교사, 수업에 충실하고 아이들의 진로를 굳게 잡아줄 수 있는 교사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윤리인지, 가까이 다가가서는 어떤 것이 도덕인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제는 항상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학생을 가르치는 마음 따듯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가 필요한 곳에 가서 짧지만 깊은 마음을 전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사람이 가장 뿌듯한 때는 자신이 쓸모 있는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일 때 가장 행복하고 힘이 솟음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내 마음이 닿을 수 있도록 나는 내가 겪어온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다. “너희들이 살아가는 것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에 꼭 봉사하고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방식으로 군에 복무하는 2년의 기간은 모든 사회복무요원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나에게 있어서 미래의 길에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하는 해답을 조금이 나마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자신만이 중요한 것보다 주위의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배웠다.

 내가 봉사하는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예쁘고 착한 도시락 학생’일 것이고 이 경험이 나를 이끌어 주었을 때 ‘마음을 나누고 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수 있게 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항상 사랑을 나누는 학생이 되거라.”(konas)

이준혁(서귀포시청 동부종합사회복지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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