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찌 해야 하는가?
정국(政局)이 요동친다. 입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두 마디, 입에 거품을 물며 흥분된 어조의 발언도 숨기지 않는다. 평소 묵묵하며 말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던 사람들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입을 열 수밖에 없을 지경이며, 그러다 보니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이 더 이상하게 보이는지도 모르는 게 오늘의 시대 상황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이 촛불로 일렁였다. 소위 ‘2016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3차 민중총궐기 집회 시위다. 서울이 전 세계 이목의 한가운데 서있다. 비교에 차이는 있다 치더라도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 가까이는 2008년 괴담으로 일파만파 벌어진 ‘광우병 촛불’시위에서, 멀리는 16세기 조선 중종 임금시절 기묘사화로 신진사류의 거장 조광조가 사약을 받아 죽자 광화문이 사림파 선비들의 곡(哭)으로 들끓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2002 한일월드컵 시에도 광화문은 국민의 울림으로 진동했었다.
그리고 2016년 11월12일 또 들끓었다. 하지만 지난해 폭력이 난무했던 깽판과는 차이가 있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대규모 인파가 운집해 현 시국(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와 질타의 목소리가 밤하늘을 쩌렁하게 울렸음에도 쓰레기 대란을 연상시켰던 과거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사사로움에서 방식 또한 평화적이어서 걱정과 우려로 촉각을 곤두세운 절대다수 국민을 안심시키며 위기에서 더욱 의연해진다는 우리 국민의 성숙된 단면을 다시 보게 했다.
11월12일 정오가 넘은 12시30분경, 광화문 일대는 서울광장으로부터 경복궁 관문인 광화문 앞에 이르기까지 빼곡하게 경찰 차벽이 형성되었다. 이 날 집회의 안전사고를 우려한 대비였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에 의해 경복궁 방향으로 행진이 허용됨에 따라 오후 차벽은 해제되었지만 서울광장에서 장군 동상에 이르기까지는 이 시각 벌써 각지에서 모여든 단체별 수만 시민들이 세종로 바닥에 앉아 ‘박근혜 퇴진’ 피켓을 흔들며 집회가 시작됐고,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도 대형무대가 설치되고, 광화문 앞에서는 농민단체 주관 문화행사에서 중고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흰색 유니폼 차림에 율동을 춰가며 집회참여를 유도하고 있었다.
광화문광장-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린 이날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100만 명, 경찰추산 25만 명이 모인 것으로 집계해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주최측 70만 참가 주장에 경찰추산 8만명으로 당시 규모를 뛰어 넘어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인파가 운집한 집회이자 촛불집회로는 건국이후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성숙한 시민의식도 돋보였다고 외신과 언론은 평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날 낮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경복궁 내자사거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도심은 그렇게 긴장 속에서 무르익고 있었다. 또한 광화문을 지나는 행인들의 표정에서도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와 고뇌가 무엇인가를 엿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이, 어떤 사유로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선지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닌 그 이유(국정농단 최순실과 그 아류의 전횡)를 발판 삼아 도처에서 국기(國基)를 뒤흔드는 파열음이 커짐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며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 거기에는 진정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며 국민을 위해 끼와 소신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정치인도 있지만 그에 반해 그들만의 야욕을 위한 세력들이 제도권에 파고들어 은밀히 공작하고 있음도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러기에 시쳇말로 ‘꾼’들은 요즘 일생일대 절호의 기회를 만난 듯 날뛰고 있는 형세다. 마치 가뭄에 타들어가는 논바닥에서 다 죽어가던 미꾸라지가 한줄기 소낙비로 흥건해진 논바닥에서 온갖 몸놀림으로 있는 재주 없는 재주 다 부리며 ‘나 봐라’란 듯 트위스트를 춰 흙탕물로 변모시키는 것과 같이 온갖 요설(饒舌)과 말장난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며 국가를 좌지우지하려는 이들 ‘꾼’들이 넘쳐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잘못을 질타하며 죄를 밝혀 단죄케 해야 한다는 것과 그를 빌미로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인(公人)의 말 한마디는 일 범부(凡夫)의 천(千) 마디 만(萬) 마디 말과는 격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597년(선조 30) 9월 명량해전을 목전에 두고 이순신 장군은 선조에게 장계를 올린다. “신(臣)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이 한마디에 선조는 조선 수군을 없애고 육군으로 복무케 한 명령을 거둔다. 장군을 따르던 수군들의 사기(士氣)는 클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330여척의 왜선과 맞선 조선 수군이 그 열배에 해당하는 130여 척을 궤멸케 한 대 전승으로 기록된다.
이는 나아가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적진 앞에 선 장수가 어떻게 해야 부하를 살리고 나라를 구할 수 있게 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최순실이라는 한 사람 아녀자의 국정 농단으로 인해 국가가 지리멸렬되고 있는 상태다. 미국 대선 결과 힐러리 클린턴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할 만큼의 새 판을 짜야 하는 상황에다 사드(THAAD ․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과 냉각되고, 사실상 핵무장 실전배치에 이른 북한 핵 제거를 위한 최고도 국제공조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크게는 희대의 한 사녀(邪女) 농간과 소위 ‘문고리 3인방’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통령의 치세(治世)에서 우선적 문제를 꼬집을 수 있겠지만 이로 인해 한치 앞을 예견키 어려운 국내외적 어려움을 방기한 채 방향감각을 상실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분명코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죄가 있다면 조사 후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애비라도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민주국가이고, 피를 흘려 지켜온 이 나라가가 가야할 길이다. 그런데도 국가야 어찌 되던 말든 교언영색(巧言令色 · 교묘한 말과 알랑거리는 얼굴)으로 나만의 목적 달성이면 그만이라는 사악한 궤변 논리라면 그 마찬가지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맹수가 먹이 사냥을 위해서는 아무리 자기보다 약한 먹잇감이라 하더라도 사력을 다해 뒤좇아 목 줄기에 이빨을 꼽는 격과 마찬가지로 현 시국을 보는 이들의 ‘꾼’들의 눈이 정권 차원에서 보는 행태들인 것 만 같아 가슴 철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던지고 싶다. 앞으로 예견되는 미국 발 영향력에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 동정도 면밀해져야 한다. 언제 감춰둔 발톱을 들이대며 어떤 식의 도발을 자행할지 모르는 북한 김정은 집단에 한시라도 헛눈을 팔아선 더더욱 안 된다.
거기에 더 한 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2014년 해체된 통진당 잔존 세력들이 다시 우후죽순 일어나고 있는 예에서 본바 같이 자유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내부 반국가세력에의 대응이란 점이다. 광화문 대국민 목소리를 겸허히 경청해 받아들이면서 내외부 적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현 정부가 수행해야 할 가장 큰 국민이 부여한 역사 소임이란 사실 잊어선 안 된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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