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박정희의 핵개발, ‘자주안보를 위한 궁극적 처방’”
박정희 대통령에 있어 핵개발은 ‘자주안보를 위한 궁극적 처방’이었다고 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이 말했다.
7일 월간조선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주최한 ‘현대화의 국부, 박정희를 다시 본다’ 연속토론회에서 주제강연자로 나선 김태우 前 원장은 “박정희는 북한의 우세한 군사력에 맞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에서 핵개발을 시도했다. 즉, 핵개발을 통해 궁극적인 자주국방을 구현하고자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
이날 김 前 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핵개발을 추진했던 경과를 설명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수립해 실패했지만, 자주국방을 실현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발휘했고, 앞을 내다보면서 과학자를 육성하고 원자력 관련 기술을 연마했다. 한국에 이만한 대통령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핵개발 과정에 대해, 그는 “박정희의 핵개발은 1972년 착수되어 공식적으로는 1977년에 중단됐지만 사실상 1979년 10월 26일 서거 직전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닉슨 독트린과 미 제7사단의 철수는 한국의 핵개발을 부추긴 직접적 요인이었고, 1973년 미군의 베트남 철수 및 이후의 베트남의 공산화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하여금 동맹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고 핵개발 의지를 더욱 불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정희는 대대적인 과학육성 정책과 함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국내 연구기관들을 동원해 핵무기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극비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플루토늄 획득을 위한 재처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국내 연구역량을 취합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前 원장은 “박정희는 독재자였지만 그보다는 미래 개척자였고 애국자였으며, 군인이었지만 그보다는 혜안과 의지를 지닌 지도자”라며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정희 평가에 관한 한 민주화라는 잣대만으로 공과를 논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민주화란 언제나 좋은 것이지만 바람직한 정도는 시대와 여건에 따라 다르다”며 “박정희는 시대적 여건상 국가생존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성장했으며,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강한 한국, 세계속에 우뚝 선 한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진 인물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시대적 차이를 무시한 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서 통용되는 민주화 개념을 박정희 시대에 적용해 박정희를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박정희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좌파들이 쳐놓은 ‘분배정의’라는 덫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前 원장은 “‘경제성장은 서민과 노동자가 이룬 것이지 박정희의 업적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비난을 위한 비난”이라며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에 상륙해 쾌속으로 진군해 유명해졌던 패튼 장군을 생각해보자. 그 부대가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패튼 장군 개인이 총을 들고 싸웠기 때문이 아니라 휘하 장병들이 피흘리고 싸웠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패튼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해야 옳은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조갑제 기자와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조 기자는 “박정희는 자주국방력을 방패로 삼아 전쟁을 막아 평화의 시간을 얻은 뒤 국력을 키우고 그 힘으로 북한정권을 녹여 한민족 전체가 자유를 누린다는 원대한 꿈을 지녔다”며 “정신, 경제, 정치, 군사를 통합한 국가 대전략이었다”라고 평가했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안보칼럼] 한미연합연습 축소에 따른 우리 군의 대책](/img_data/article/110307/110307_3777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