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위해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선 추산 김익상 선생
전쟁기념관 헌양 행사, 항일 애국정신 기려
전쟁기념관은 2일 호국추모실에서 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독립운동가 추산(秋山) 김익상(金益相·1895~?) 선생을 추모하는 헌양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유족과 유관단체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헌양 행사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군 대장의 처단을 시도하는 등 독립투쟁에 앞장선 추산 김익상 선생의 항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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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난 선생은 비행사가 되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가 베이징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난 뒤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1921년 총독 암살 밀령을 받은 선생은 조선총독부로 잠입, 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해 총독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온 선생은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가 상하이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또다시 거사를 계획, 1922년 3월 28일 다나카를 저격했으나 암살에 실패하고 말았다.
의거 직후 붙잡혀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 수감됐다가 나가사키로 이송돼 사형을 선고받은 선생은 재판 과정에서 당당하게 독립 의지를 밝혔고 사형 판결에 대해서도 상고하지 않았다.
복역 중 감형돼 1942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일본 고등경찰에 연행된 후 행적이 확인되지 않아 암살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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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황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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