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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남파간첩 김동식, “내가 살았다는 이유로 가족 모두 숙청당해”

자유경제원 주최 ‘내가 좌파사상을 버린 이유’에서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환상 버려야...”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7-03-07 오후 5: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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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경제원이 주최하고 있는 연속세미나 ‘나는 좌파였다’ 여섯 번 째로, 1995년 부여간첩사건의 핵심인물 김동식 씨가 자신이 좌파사상을 버린 이유와 이 시대 청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발표했다.

 서울 마포구 마포동 소재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7일 오후 열린 강좌에서 김 씨는 먼저 1981년 1월부터 1995년 10월까지 대남공작원으로 활동했던 기간 동안 2차에 걸쳐 남파되어 수행한 임무와 검거되기 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 자유경제원은 ‘나는 좌파였다’ 연속세미나 여섯 번 째로, 1995년 부여간첩사건의 핵심인물 김동식 씨를 초청해 좌파사상을 버린 이유와 이 시대 청년에게 주는 고언을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konas.net

 그는 1991년 5월 1차 남파시 부여받은 임무가 ▲ 고정간첩 이선실을 접선해 북한까지 대동 복귀하는 것과 ▲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운동권 인사들을 포섭해 노동당에 가입시킨 다음 그들을 중심으로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었다며, 당시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 겸 조국통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손병선과, 1980년 사북사태를 주도한 바 있는 황인호를 노동당에 가입시키는데 성공하고, 이선실․황인호와 함께 북한으로 복귀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5년 후인 1995년 9월 2차로 남파됐는데, 그때의 임무는 ▲ 기존부터 남한에 침투해 활동하고 있던 남파공작원 ‘봉화 1호’를 접선해 안전하게 대동 복귀하는 것과 ▲ 주사파 인사들을 포섭해 지하당조직을 구축하는 것이었는데, 허인회, 이인영, 우상호, 함운경, 정동년, 고은, 황광우 등 7명을 접촉해 포섭을 시도했으나 노동당에 가입시키는데 실패했고, 10월 24일 ‘봉화 1호’를 접선하기 위해 충남 부여 소재 사찰 ‘정각사’에 갔다가 잠복 경찰과 국정원 수사관들과의 총격전 끝에 검거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자신이 사회주의 사상에서 벗어나게 된 동기를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숙청과 북한 정권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남파 공작원들에게 최악의 경우 자폭하거나 자살하도록 교육하는데, 김 씨는 총격전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는 바람에 소지하고 있던 독약 앰플을 먹을 여유가 없어, 살았다는 이유로 30여 년을 노동당에 몸담으며 충성했던 부친을 포함한 가족들이 숙청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1993년 가을 노동당 간부로 현장체험을 하면서 북한은 인민의 지상낙원도, 사회주의 나라도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북한 당국이 사회주의 이론에도 없는 세습을 정당화하는 억지논리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 내에선 사회주의와 관련한 책이나 원서를 구경하기 힘들어 대학 졸업자도 주체사상을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남한 운동권 내에선 주체사상파(주사파)에 의해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북한에 대학원 과정이 설립됐는데, 이는 남한 운동권 인사들을 직접 포섭해야 하는 남파공작원들이 주체사상과 혁명이론을 잘 알아야 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따라 김 씨도 1991년부터 1993년까지 2년간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김정일이 김일성의 아들이라서 후계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 위대하고 특출난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지도자가 된 것’이란 수령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이론, 사회주의 이론에도 없는 권력세습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의심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좌파사상에 빠져 있는 한국 청년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첫째,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환상을 버리라”고 경고했다. 사회주의의 기초는 ‘평등’인데 북한에서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예를 들면 북한은 직급별로 가는 병원도 다른데, 장관급 이상은 김씨 일가의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에 가고, 차관급은 남산병원에서 치료를, 그 밑의 간부들은 직급별로 의과대학병원과 같은 대학병원의 특별과에서 진료를 받지만 일반 주민들은 봉화진료소나 남산병원 정문을 통과할 수도 없는 사회가 어떻게 평등한 사회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어 김 씨는 북한에서는 ‘자유’란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며, 한국에서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누가 선사하거나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씨는 자신이 말한 ‘종북 규명 5가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북한이 한국에 만든 간첩망에 소속된 학자, 정치인, 종교인들이 1990년대 초 자신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발표를 할 때 북한에 대한 비난 수위에 대해 북한 공작부서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하자, 북한은 ‘가급적 북한에 대한 비판을 하지 마라, 어쩔 수 없이 비판을 해야 한다면 양비론적 입장을 견지하라’고 지시했는데, 양비론 중에서도 절대 비판해서는 안될 5가지로 ▲수령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 북한체제를 비판해서는 안된다 ▲주체사상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후계(세습)문제를 비판해서는 안된다 ▲인권문제를 비판해서는 안된다란 지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5가지 Red Line은 북한의 공작지도부가 한국의 간첩조직에 내린 지침인데, 현재 모든 종북세력들이 이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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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ldn4177(didn)   

    피도 눈물도 없는게 공산주의자들 아닌가? 세습을 정당화하는 억지논리에 북한 주민들 다 굶어 죽는다.

    2017-03-08 오전 8: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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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9.30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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