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③] 고양이 병사에게

Written by. 조정란   입력 : 2017-09-07 오후 1:18:12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우수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민식아!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을 꽁냥이(?)는 잘지내고 있니?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헤매다가 네가 머무는 부대에 찾아 들어온 그 고양이는 억세게 운도 좋구나. 바로 너 같은 임자를 만났으니 말이다. 틈틈이 꽁냥이를 보살피며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너를 생각하니 너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도 엄마는 버크 라이브러리에서 너에게 보내줄 책을 읽고 있다. 내일 소포를 보내면 아마도 2주일 후에 네가 받아볼 수 있겠구나. 너와 내가 다른 하늘 아래 있게 된 후부터 엄마는 이 도서관에 거의 매일 아침 출근도장을 찍고 있단다. 네가 앉아 공부하던 자리에 앉아 책을 읽노라면 마치 우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오늘은 유난히 평화로운 아침이구나. 네가 공부하며 보았을 창문 밖 풍경들이 책을 읽어 내려가던 나의 눈길을 사로잡고 만다.

 창문 너머 먹이를 찾아 나무사이를 바삐 오가는 버지니아 붉은 새와 잔디밭을 질주하는 토끼를 보면서 가끔 출몰하는 야생동물들을 사진 찍어 간직하던 네가 생각이 난다. 집 잃은 고양이를 보살피는 너에게 선임들이 고양이 병사라는 닉네임을 붙여 주었다는 지난번 너의 편지를 보고 동물사랑이 그곳 군대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에 엄마는 미소를 금치 못하였다.
 
 어느 날 자전거 타고 도서관 가는 길에 커다란 뿔로 맘껏 폼 잡은 숫사슴과 그의 일가족을 만나 그들과 시간 보내느라 너의 본연의 일을 잊어버렸을 너를 생각하며 엄마도 잠시 너와 일심동체가 되어 엄마의 셀폰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너의 셀폰이 이런 풍경들로 바빴듯이... 

 아빠를 출근 시킨 후 엄마는 설거지를 바삐 끝내고 도서실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네가 선물로 주었던 노틀담 로그가 새겨진 텀블러에 가득 채워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그 순간부터 엄마는 마법에 걸리기 시작한다. 책의 세계에 들어서며 너와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네게 해주고 싶었던 구절이 나오면 무릎을 치며 줄을 긋고 중요한 부분에는 별을 달아두기도 하고 때로는 책 모퉁이의 여백에 엄마의 마음을 빼곡히 채우기도 한다. 오늘은 문득 책을 통해 너와의 대화로 하루가 시작하는 이 아침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네가 한글 책을 읽을 수 있고 한국어로 이렇게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구나.

 얼마 전 이웃 한국인 엄마의 하소연을 들었던 터라 그랬을까?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과 언어의 장벽, 정서의 차이로 인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어서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엄마와 네가 한국을 떠나온 지가 7년이 넘어가는구나. 우리 가족은 4년째 이산가족으로 떨어져 살다가 엄마의 명예퇴직과 동시에 아빠와 형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우리 네식구가 함께 살게 되었지. 미국에 살게 된 너는 시차가 적응되기도 전에 동네 아이들과 농구를 같이하고 그 다음날부터 아이들이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 하였을때 형이 신기해 하던 모습이 생각나는구나. 너의 능수능란한 농구 실력 덕분이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자신감에 찬 너의 모습에 그들이 이끌리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에서 시작된 너의 삶은 어쩌면 너에게 어렵고 힘든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이고 성실한 너는 7년여의 시간을 알차게 보낸 덕분에 어느덧 네가 원하는 대학의 대학생이 되었구나. 네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아빠 엄마는 한 가지 숙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이곳 문화에 잘 적응하는 것도 좋으나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관을  확립하는 시간이 너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1학년 봄방학을 맞이해서 네가 집에 머물게 되었을 때 아빠 엄마는 한국 군입대를 권유하기에 이르렀고 아빠는 그때 말씀하셨지. 한국 군대를 가야할 이유 중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를 지키는 것 외에 수만가지 이유가 있다고.

 평소에도 자주 하시던 말씀 기억나니? 군대에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본을 배웠노라고, 일정한 시간에 기상을 하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침대를 정리하고, 책꽂이에 꽂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네모 반듯하게 빨래를 개는 등...그리고 농사를 짓다가 입대한 동기에게 제대로 배운 삽질은 지금도 미국에 살면서 뒷마당에 나무를 심거나 텃밭을 가꾸는데 유용하게 사용하노라고.

 그리고 아빠는 말씀하신다. 인생의 긴 여정에 젊은 날 군대에서 보낸 2년여의 시간은 결코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노라고. 특히 군대에서 배운 정신은 이민자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운 과정들의 큰 버팀목이 되었노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한 것 같구나. 얼마 전 네가 읽고 엄마한테 추천해 주었던 ‘미움받을 용기’ 책 내용 중에 아들러 심리학자가 주장한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주목하라’ 는 구절 혹시 기억하니? 바로 이 구절 한마디로 군대에 가야할 많은 이유를 대신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구절을 몸소 체험하고 훈련시키는 곳이 군대이며 어떠한 한계 상황속에서도 잘 헤쳐 나올 수 있는 정신을 배우는 곳이 군대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너에게 아직까지 부치지 못한 1년 된 편지가 있단다. 갑작스런 입대 권유에 반발을 하던 너는 부모의 설득에도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학교 기숙사에 돌아가 버렸고 그 뒤로 한참동안 우리 사이에 냉전 상태가 지속 되었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너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그 뒤 얼마 후 엄마가 집안에서 일하다가 척추 골절상을 입게 되면서 너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때부터 서로 소통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그 무렵 엄마는 너를 설득하기 위한 장문의 편지를 쓰던 중 이었단다. 사고로 인해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어 거의 다 써가던 편지를 마무리 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어느 날 너로부터 군대에 가겠다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지. 부치지 못한 편지는 아직도 엄마의 노트에 마무리 되지 못하고 그대로 있단다. 

 너를 설득하거나 어떤 목적을 위한 편지가 아닌, 단지 그리움의 편지를 쓸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모의 권유도 있었지만 네가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고 스스로 입대 결정을 내리게 된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군 입대를 결정한 후 그 해 여름방학 때 짐을 싸들고 집에 돌아온 네가 엄마 눈엔 많이 슬퍼 보였다, 전날 친구들과 작별의 시간이 쉽지 않았고 특히 친한 친구와 눈물의 작별을 했노라는 너의 말을 듣고 엄마는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너의 군 입대 결정으로 인한 주변 반응들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들에게 한국 군 입대를 권유한 우리가 비정상적인 부모로 비춰지는 듯 하여 속상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대단한 결정이라며 너를 격려해주시기도 했지. 최근에 몇몇 한국인 부모님이 아들의 한국 군 입대를 위한 조언을 우리에게 요청하기도 했고 또 네 친구 중에 한명은 군 입대를 위해 이미 한국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리더구나. 이곳에서 너는 한국 군 입대의 롤모델이 되어가고 있단다.

 작년 8월 논산훈련소에서 너와 작별하던 날 군 생활 잘하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미국에 들어가라고 신신당부하던 너를 뒤로 하고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이었다. 엄마는 기사님으로부터 6주 훈련 후 수료식 풍속에 대해서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중 수료식 때 부모가 참석하여 태극기 표찰을 자녀의 오른쪽 어깨에 달아줘야 한다는 그 말에 엄마는 차마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였지. 태극기 표찰을 어깨에 달아줄 그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네가 눈에 밟혔단다.

 6주 후 논산훈련소에서 수료식에 엄마가 나타나자 너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커다라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16년 8월 군복에 군화만 신어도 땀이 뒤범벅이 되는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허리까지 아픈 네가 과연 강도 높은 6주 훈련을 잘해낼 수 있을지 엄마는 좌불안석 이었단다.

 훈련 내내 30여명 규모의 중대에서 반장을 맡아 열심히 심부름도 하고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으며 마치 summer camp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재미있고 보람이 있었으며 심지어 아프던 허리도 많이 좋아졌다는 너의 후일담을 전해 듣고 그때 엄마는 너에 대한 걱정 한 자락을 잠재울 수 있었다.

 두어 달 전  전화기 건너편 너의 힘없는 목소리에 엄마는 바짝 긴장을 한 적이 있었단다. 고등학교 때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아마존 근처 오지의 마을 페루 뿌깔파에 가서 의료팀을 돕고 그곳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 평소에 해외 오지에서 하는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던 너는 기회가 되면 해외봉사단체에 가입하여 열심히 일해 보고 싶어 하였지.

 영어 통역병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는 너에게 해외 파병신청은 당연히 너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두어 번 신청하여 번번히 낙방하자 실망이 컸던 모양이다. 아빠께서는 너에게 그러셨지. 학교를 떠나 세상에 나가게 되면 네가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또한 받아 들이고 지금 이순간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보람있는 시간으로 채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빠의 이런 말씀으로 실망스런 마음을 많이 추스렸노라는 너의 말을 듣고 엄마는 또 한번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아들이 많이 성장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연일 들려오는 한반도의 민감한 정세에 엄마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구나. 너의 편지나 전화기 건너편의 너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란다.

 올 1월엔 지금까지 받은 그 어떤 선물보다도 더 좋은 선물을 받았다. 군대에 오기 잘했다는 너의 그 한마디! 어떤 선물이 이보다 더할까? 벌써 입대한지 10개월이 되어가네. 아! 미안, “이제 겨우 10개월이 되어가네”로 정정할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은 군인에게 금기시되는 말이라고 했던가. 이 순간 엄마는 많은 분들을 생각하게 되는구나.

 작년 이맘때쯤 너를 군대에 보내기위해 애쓰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 당시 미국에서 직접 통역병 접수를 하기 위해 워싱턴 한국영사관을 찾아갔을 때 도움을 주시던 영사관 직원, 시간차로 인해 새벽녘에 한국 병무청에 국제전화를 하여야 했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던 병무청 직원,

 그리고 군사령관과 장병들과의 대화 시간에 네가 일어나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해 자세히 답변해 주시며 너를 단상으로 불러내어 칭찬해주셨다던 군사령관님, 너를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선임병들, 그 외에 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분들, 휴가를 나와도 부모집이 바다건너 미국에 있어 국내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너를 재워 주시고 잘 챙겨주시는 친척분들, 이 분들 모두가 너에게 시시때때로 물과 거름과 따뜻한 햇볕을 주신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너의 인생 20년 이제 막 청춘으로 진입한 너에게 2년여의 군생활은 분명 먼 훗날  ‘조국사랑’, ‘청춘예찬’ 이라는 단어들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근사한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만드는데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전하고 싶고, 특히 고양이 병사 원민식 일병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힘들고 지칠 때 한걸음에 달려가 주지 못해 미안하고 한결같이 긍정의 힘을 발휘하는 너에게 감사하다. 너는 나의 영원한 소울메이트이자 자부심이라는 걸 기억해라.

 올 4월초에 우리 집 뒷마당 정자마루가 생명을 틔우기 위한 작업으로 뭔가 부산한 움직임이 있었다. 지푸라기며 마른풀들이 테이블위에 널부러져 있다가 어느 순간 깨끗하게 치워져 있곤 했단다. 엄마는 그저 정자마루를 조심스럽게 배회하는 이방인일 뿐이고 그 순간 생명을 품고 있는 그 이름모를 새가 정자마루 주인이 되었지.

 주말 며칠을 집을 비워 궁금했는데 여전히 그새가 둥지에 앉아 있더구나. 그저 신기하기만 했고 그곳에서 즐기던 엄마의 커피타임이 아쉬어 빨리 비워주기를 고대했었는데 그날 아침엔 경계의 끈을 놓아버린 그 이름 모를 새가 사랑스럽기까지 하더구나. 일주일 전쯤엔가 문득 새끼 한 마리가 둥지를 훌쩍 날아 바닥에 앉아 뒤뚱뒤뚱 걷는 듯 하더니 나무사이로 날아가고 말았다. 엄마는 순간 왜 네 생각이 났을까? 

 오늘 워싱턴발 인천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였다. 이번엔 네 책꽂이에 꽂혀있던 국사책 교과서를 직접 들고 가려 한다. 얼마 전에 네가 원주에 박경리 문학관을 둘러보고 책 ‘토지’를 구해 달라고 했는데 총21권이라 한국에서 빌려 볼 곳을 알아보아야 할 것 같구나. 양이 너무 방대하기도 하고 국사책을 먼저 읽어보고 한국 역사의 흐름을 이해한 후 ‘토지’를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네가 태어난 조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한국을 더 잘 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네가 무척 대견하구나. 엄마는 다음 주에 너와 대면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기대해도 될까? 근육질 몸매 원민식 일병을.
 
2017년 5월 31일 미국 버지니아에서 엄마가

(1군사령부 11정보통신단 일병 원민식 병사 어머니 조정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6.9.28 월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
한반도 안보 지형의 지각변동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첨단 ..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6·25 호국영웅 故한길진 하사 유해 신원 확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호국영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