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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⑩] 소중함을 깨달은 시간들

Written by. 김지훈   입력 : 2017-09-09 오후 1: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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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입선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어릴 적엔 ‘통일이 되어서 군대에 가지 않겠지’, ‘재외국민이기 때문에 안 가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던 나. 군대를 가면 21개월 동안 시간 낭비를 한다, 갈 곳이 못된다 이런 말들을 하던 주위 형들이 있을 뿐더러 가면 진정한 남자가 된다, 배울 것이 많다, 미리 사회생활을 경험 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듣고 많은 생각 끝에 쌍둥이 동생과 같이 2016년 3월 14일 자원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자원 입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과 세상에서 제일로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저희 아버지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장교 출신이시고 쌍둥이 두 아들들이 장교로 임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군 입대를 하기 2달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많은 조언들을 해주셨습니다. 많은 말씀들 중에 제일 많이 생각나는 말씀은 “잘하려고 하지 마라, 군대에서 아프지 말아라, 몸 안 다치고 건강하게 복무 마치고 와라” 지금도 글을 쓰면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때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더 뭉클하셨을까 라는 생각이듭니다.

 2016년 3월 14일 멕시코에서 일 때문에 못오시는 아버지는 제외하고, 당시 몸이 아프셔서 병원 때문에 한국에 계셨던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함께 논산 훈련소로 떠났습니다. 집에서 밖으로 발걸음을 내미는 순간 ‘드디어 가는구나’, ‘이 집은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 라는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논산훈련소에 도착해 심사대로 걸어가는 도중 어머니께서 제 손을 꼭 잡아주셨는데 그때 그 느낌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뭉클했습니다. 서로 ‘괜찮아’, ‘파이팅’, ‘잘 할 수 있어’, ‘아프지 마’ 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심사대에 도착했을 땐, 이젠 2분후면 진짜로 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강한 모습만 보이자는 마음에 괜히 맘에도 없던 행동을 한거 같습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께 빨리 가시라면서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잡으시려고 하시면 이제 가야 한다며 피해서 연병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줄을 서서 땅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계속 저와 제 동생의 이름을 부르시며 아들들 파이팅! 이라고 외치셨지만, 저흰 눈물을 보일 까봐 고개를 들어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며  연병장 한 바퀴를 돌며 지나가는데, 어머니께서 “지훈아, 도훈이 잘 챙기고 우리 아들들 파이팅” 라고 큰소리로 외치셨는데 그 말에 전 참던 울음이 터져 울면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첫날 밤을 군대라는 곳에서 보내는데,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잘 가셨는지 걱정이 되었고, 자고 일어나면 집일거 같았지만 현실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교육과 훈련 끝에 수료식이 다가오고, 수료를 하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저를 생각하니 바보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웠던 거 같습니다. 수료날 제일 보고 싶었던 가족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있는 도중에 핸드폰으로 자대 결정 문자가 왔는데 가면 안 좋은 부대중에 제일 메이커 부대인 27사단 이기자 부대로 결정이 되어 문자가 왔습니다.

 이제 큰일 났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제가 입대하기 결심했던 계기 중 하나가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자였는데, 진짜 남들과 다른 삶을 살수 있을거 같아 기쁘기도 했습니다.

 수료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 기차와 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가는 도중, 남은 군 생활을 보내야하는 곳, 선임들이 있는 곳, 많은 생각에 조그만 한 무서움이 있었지만, 한번 뿐인 인생, 새로운 경험 모두 처음은 힘들지만, 적응하면 편하다 라는 생각에 마음을 조금이 나마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자대에 전입을 가고 적응을 하는 도중, 옆에 있는 제 동생이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매일 밤 힘들다며, 한번은 나쁜 생각까지 했다며 저에게 말을 했을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재외 국민이 자원입대를 하게 되면 원하는 자대로 갈 수 있는 결정권이 있었는데, 저희가 입대를 하고 나서부터 그런 제도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으니 동생은 더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입대 날 어머니께서 제게 동생을 잘 챙기라는 말씀이 문득 떠올라 동생 옆에 꼭 붙어서 적응하는데 도와주었고, 이걸 계기로 원래 단단했던 저희 둘의 우애는 대리석보다 더 단단해 졌습니다.

 자대에 전입간지 1주일이 지나 훈련이 많다고 소문난 이기자 부대는 저에게 첫 임무를 주었습니다. 연대 전술이라는 큰 훈련인 만큼 준비도 철저히 하고 훈련 전날엔 긴장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훈련은 칭찬도 받고, 혼나기도 하면서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훈련을 하면서 내가 조금만 더 준비를 했다면, 여벌의 옷을 챙겨갔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고, 눈치가 더 빨랐더라면 선임들이 무엇을 어떨 때 왜 원하는지 알고 대처 했을텐데 라는걸 느꼈습니다.

 훈련 때 혼난걸 계기로 앞으로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걸 이렇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살아야겠다고 깨달았고, 군대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하던 준비가 철저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일병이라는 계급장을 왼쪽 가슴에 달고 신병위로 휴가를 나갔습니다. 집에 가면 부모님께서 안아주시고 따뜻한 밥을 해주실거 같았지만, 부모님께서는 멕시코에 계셔서 뵙지 못하였습니다. 집에 혼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휴가를 갔다 온 동기들 말을 들어보면 휴가를 나가 집을 가니 어머니께서 상이 부러질만큼 음식을 해주시고 안아주시면서 고생했다고 했던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며 말해준 것이 생각이나 더 슬펐던거 같습니다.

 부모님이 한국에 안계셔서 외할머니 댁에 가려고 준비하던 중에, 입대 날 할머니께서 다 낡으신 신발을 신으셨던 게 기억이나 신발 한 켤레를 사서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할머니께서 절 반겨주셨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삼겹살과 청국장을 끓여 주셨습니다. 훈련 때 나가서 먹었던 밥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있었으며, 외할머니께서 해주셔서 더 맛있었습니다.

 외할머니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서 내가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만약 가지 않았더라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 했을 거 같고  이래서 군대에 가면 철이 든다라고 하는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3.4초라고 불리는 신병 위로 휴가는 어느덧 바람처럼 빨리 지나갔고, 친구들과 만나 나름 뜻 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대 복귀 하는 날 동서울 터미널에 버스를 타러 가는 중, 주위를 둘러보니 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보였고, 그들의 표정을 보았는데 저와 같은 표정,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복귀하기 싫다, 하루만 더 있고 싶다 하는 표정을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산을 하나 하나 지나면서 문뜩 입대 할때가 생각나며, 얼마 하지 않은 군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군 생활을 한다면 시간이 빨리 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특급 전사와 분대장이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 끝에 특급 전사가 되었고, 분대장 교육대에 가서 무사히 수료를 하였습니다. 목표를 이루고 난 후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되돌아보니 국방부의 시간은 흐르고 있으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싶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 끝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렇게 14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군 생활을 열심히 해 휴가도 많이 받아 나가곤 해, 다른 사람들은 저희를 부러워 했었지만, 저는 동기들이나 중대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면 전화를 해서 면회 와 달라 부탁하는 사람도 있고, 부대 개방행사를 하면 부모님이 오셔서 같이 부대 구경도하고, 부모님과 외박을 나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멀어질거 같았지만, 군대에 있고 군 입대를 하고 난 후에는 가족이 더 애틋해진거 같고, 성인이 되어가는 길에 한걸음 더 자란거 같습니다. 부모님이 보고 싶지만 참고, 지금까지 해낼수 있었던건 주위에  있는 동기들, 선임들, 후임들, 그리고 제 동생 도훈이가 있기에 참고 해낼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7개월 동안, 남은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제가 전역하고 난 다음에 제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 저로 인해 피해 받지 않게 하고, 앞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7사단 79연대 2대대 7중대 1소대 1분대 상병 김지훈)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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