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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⑨] 나의 설익음을 알기까지

Written by. 서원재   입력 : 2017-09-17 오후 8: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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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지독했던 두 가지 질문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아마 참 실없는 질문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저에게 이렇게 물어 보셨다면, 별 고민없이 그렇다고 했을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대답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시답잖은 질문을 여쭙습니다. ‘당신은 어른입니까?’

 성인이 된지는 꽤 지난 나이인데, 더구나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인 저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진 분이 계십니다. 누군가는 참 엉뚱한 질문들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질문들은 참 지독해서 저를 한참동안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답을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물음을 받았던 날부터 ‘좋은 사람’, ‘어른’이라는 두 단어의 의미는 제게 이전과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무를 하면서 즐겁고 기쁘고 슬프고 힘든 날들이 있었지만, 한 어르신의 물음을 받은 그 하루는 유달리 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제가 느꼈던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입니다.
 
고목 사이 심긴 새싹같이

 저희 복지관에는 ‘단골손님’ 분들이 많으십니다. 가장 일찍 복지관에 오셔서 신문을 보시는 어르신도, 매일 주황색 비닐봉지에 책 한 권을 들고 오셔서 종일 책을 읽으시는 어르신도, 그리고 늘 심각한 표정으로 바둑이나 장기를 두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 노부부께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짐없이 손을 잡고 복지관을 찾으시고, 문이 열리자마자 노래방으로 가셔선 문을 닫을 시간까지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시는 어르신들도 계십니다. 흔히 생각하시는 노인복지관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곳은 하루하루 활기가 넘치는 공간입니다.

 단골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저 스스로가 굉장히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70이 넘으신 연세에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시며 어린 아이처럼 즐거운 눈을 하신 어르신들, 땀을 비 오듯 흘리시며 매일 같이 탁구장에서 열정적으로 운동하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한창 열정이 넘쳐야할 젊은 나이에 하릴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도 한심해보여 ‘정신 차려야지’ 하며 마음을 다 잡기도 합니다.

 어르신들은 이따금 한 번씩 당신들의 삶으로 제게 ‘깨달음’이라는 거름을 무심하게 뿌리고 가시곤 합니다. 그렇게 고목이 주는 인생의 교훈은 지난 1년 반의 복무 기간 동안 스물 초 애어른이 자라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많고 많은 복지관 단골 어르신 중 제일을 꼽으라면 누가 뭐라 해도 ‘독고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지-잉’하는 전동 휠체어 소리는 사무실의 모두를 긴장하게 합니다. 이윽고 “언니야!” 혹은 “형아야!” 하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사무실 누구든 부르시는 호칭에 맞는 사람이 “네, 어르신!” 하고 허겁지겁 달려 나가야 합니다.

 류머티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께는 늘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혼자 움직이지 못하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의 조그만 충격에도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관을 찾으실 때는 대부분이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부탁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휠체어에 자리를 고쳐 앉으시기 위해 당신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시거나, 등 뒤의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거나 하는 것들이 바로 그런 일들입니다. 저는 어느 날 할머니의 손이 되기도, 어느 날은 다리가 되어 일하기도 합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가방입니다. 할머니의 휠체어 구석구석에는 작고 큰 가방들이 열매마냥 주렁주렁 걸려 있습니다. 휠체어 팔걸이에는 작은 손가방이 두 개씩 양쪽으로 걸려있고, 등받이에는 검고 빨간 여행용 가방이 앞뒤로 하나씩 걸려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복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물건을 꺼내려 그 큰 가방을 처음 열었던 날, 가방 안에 또 가방이, 그 안에 또 다른 가방이 들어있는 걸 보고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독고 할머니께서는 저의 하루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심과 동시에, 제게 가장 지독한 거름을 한 무더기 뿌리고 가신 어르신이기도 합니다. 

지독한 거름은 나무를 자라게 한다

 그 날은 유독 무더웠습니다. 매미 소리는 어지러울 정도로 고막을 때려댔고, 매일 걷던 출근길은 아지랑이 때문에 본적 없이 구불대고 있었습니다. 더위에 약한 제게는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아지는 중에 있던 허리마저 다가오는 장마를 예감한 듯 지끈대며 오전 내내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끙끙 앓으며 근무를 하던 중, 어김없이 할머니께서 복지관을 찾아오셨습니다. 늘 하시던 대로 저를 부르시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다른 날과 다를 것 없는 똑같은 하루인데, 저만 무엇인가 달랐습니다.

 매일같이 하던 일인데 그날 따라 왜 그렇게 짜증이 나던지, 가방은 더 많게만 보이고, 지퍼는 자꾸만 걸려 열리질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끓는 속을 꾹 참고 말 한마디 없이 가방을 한참 뒤져서 찾으시던 종이봉투를 건네 드렸습니다. 하지만 제 나약한 참을성은 그 다음 이어지는 어르신의 부탁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 좀 들어서 자리에 바로 앉혀줘. 아파 죽겠어.” 새삼스러울 것 없이 똑같은 부탁에 저는 그만 참지 못하고 어르신께 버럭 싫은 소리를 내뱉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매일같이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정말!”
제 짜증 섞인 말투에 어르신은 잠시 놀라신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시고는, 이윽고 이제껏 들은 당신의 목소리 중 가장 아픈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가 아파서 그러잖아.”

 “........” 저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짧은 한 문장에는 그 분의 삶의 무게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제가 하루면 지나갈 작은 아픔에 짜증을 낼 때에, 당신께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그 지겨운 ‘고통’을 견디셨던 걸까. 그 영겁과도 같은 시간 동안 홀로 감내해오셨을 고통의 무게가 갑작스런 큰 파도처럼 저를 덮쳤습니다.

 그렇게 어르신께서는 스물 셋, 건방진 애어른에게 지독한 거름을 들이 부으셨습니다.

더디지만 곧게, 푸르게 익어가자

 한 번도 스스로가 나쁜 사람일 거라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주 좋은 사람은 못 돼도, 악한 사람은 아니라고, 나 정도면 꽤 좋은 사람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합리화하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름날 제가 마주한 저의 모습은 오히려 나쁜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아니, 그보단 버릇없는 어린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함께 아파할 줄 모르고 그저 자신이 아프고 힘든 것만 알아달라고 심술을 부리던 행동은 전혀 ‘어른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때서야 전에는 들리지 않던 할머니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당신께서는 부탁이 끝나고 돌아가시기 전,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라는 말을 한 번도 빼먹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아픔보다 짐이 되는 것이 더 미안하셨던 마음을 당신은 항상 표현하고 계셨는데, 귀를 닫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저 자신이었습니다. 온몸을 뒤덮는 부끄러움에 어디엔가 숨고만 싶은 하루였습니다.

 저는 어느새 다시 다가온 여름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미련하게도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저는 동전을 뒤집듯 하루아침에 새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연거푸 겹치는 날이면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고, 가끔씩은 어르신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피어날 때도 있는 나약한 사람입니다. 그 날의 질문이 저를 바꿔놓은 것은, 스스로 아직 ‘좋은 사람’이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하나입니다.

 하지만 복무 첫해에 푸른빛이 돌던 화단의 나무들이 제가 모르는 사이 가지를 뻗고, 또 그 가지마다 손바닥 같은 잎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걸 보며, 나도 저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른이 되겠거니 하며 위안을 삼곤 합니다. 조급하기보단 무던하게, 답답하지만 천천히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자신이 보기에도 그럴듯한 ‘좋은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제 곁엔 가끔 건방진 마음이 다시금 고개를 들 때마다 애정 어린 거름을 끼얹어 주시는 어르신들이 계시기에 앞으로의 길이 막막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저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혹은 ‘당신은 어른입니까?’라고 물어보신다면, 아직 저는 둘 중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드리기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한 가지는, 저는 오늘도 ‘익어가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서원재(기장군노인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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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미소(pjw3982)   

    애썼소

    2017-09-18 오전 9: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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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1.1.24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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